북제 영웅 난릉왕, 곡률광 죽다 - 잔인한 황제 고담 고위 [97화]

북주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 북제도 남조 양나라처럼 은행恩幸 세력이 대두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화사개가 있는데, 그는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무성제에게 향락을 권유하였다. 여느 위진남북조 시대 황제처럼 ...

"예로부터 여러 왕도 결국은 죽어 타고 남은 재가 되는 것입니다. 요순걸주도 다를 것이 없었으니 폐하께서도 젊을 때 마음대로 즐기고 국사는 대신들에게 나누어 맡겨 스스로 고생을 피하십시오."

고담은 화사개를 좌복야, 조언심에겐 인사, 원문요에겐 재정, 당옹에겐 군사 문제를 위임하며 3~4일에 한 번 조정을 살필 뿐이었다. 남조 양나라처럼 전통적인 귀족 사회가 무너지고 한문 출신들이 크게 기용되었다. 군공을 많이 세운 자들이 황제가 되거나 새로운 명문 귀족으로 떠오르는 공통점이 북조에서도 나타났다.

 

막장 황제 고담 (북제 무성제)

하청 3년(564), 고담은 남조의 황제들처럼 막장이었다. 형수 이씨를 강간하려 시도했을 때 이씨가 저항하자 아들 고소덕을 죽이겠다 협박해 고담의 아이를 배었다. 훗날, 회임한 사실이 부끄러워 아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고소덕이 알게 되자 이씨는 이내 유산을 했다. 고담은 화를 내며 네가 내 딸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며, 이씨 앞에서 고소덕의 목을 벤다.

 

열네 살의 조카 낙릉왕 고백년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칙勅 글자를 썼는데 이게 못마땅해 마구 폭행하고 거의 다 죽게 되자 칼로 베어 죽이고 시체를 발로 차 연못에 빠뜨렸다. 큰형인 고징의 아들 하남왕 고효유가 호황후에게 화사개와 악삭 놀이를 하지 말 것을 권하자 독주를 마시게 해 죽였다.

 

하청 4년(565) 4월, 혜성이 출현하자 태자 고위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으로 물러나지만, 여전히 권력은 그의 것이었다.

행복하게 살았던 막장 황제 고담 무성제

북제 마지막 황제 고위

천통 4년(568), 고담은 태상황이 된 지 4년 만에 친형 효소제처럼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이에 당시 황제였던 고위의 망나니 기질도 함께 깨어나니, 북제의 멸망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고담이 죽기 바로 직전, 고위의 동생 고엄이 반란을 일으켰다. 우선, 조정을 문란하게 만들던 은행 세력들을 대거 도륙했다. 그는 애초에 부정으로 재물을 축적한 화사개만 죽일 생각이었으나, 수하들이 고위까지 제거할 것을 권했다. 고위는 놀라 호태후에게 읍소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영원히 이별하게 될 것입니다!"

호태후가 급히 대신 곡률광을 부르자 그가 건의했다.

"이들은 존비를 가리지 않고 칼을 함부로 휘둘러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폐하가 얼굴을 내밀면 이들은 곧 흩어질 것입니다."

고담은 생전에 장남 고위를 황태자로 삼았지만 고엄을 총애했었다. 자신을 대신해 많은 업무를 그에게 맡겼고 많은 조정 대신들도 고엄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며 크게 두려워했다.

 

이런 고엄이 아버지가 죽기 직전 반란을 일으켜 황위를 빼앗으려 했다. 황제인 고위가 반란군 앞에 서자 반란군들은 황제의 앞이라 감히 대들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에 고위는 고엄을 때리고 풀어주었다. 친모 호태후는 고위가 고엄을 죽일까 걱정해 자신의 궁 안에 두고 그를 보호했다. 그러나 어머니 호태후가 잠을 자는 사이 몰래 데려가 그의 아들을 포함해 일족 모두를 도륙한다.

 

입만 열었다 하면 ... 위진남북조 시대 막장 황제

고위의 동생 고엄이 죽인 은행 세력의 빈자리는 다른 은행들로 채워 훈귀 세력과 대척하게 하였다. 은행들은 권력을 원했기에 겁이 많은 고위를 이용해 대신과 황족들을 많이 죽였다. 조정에 충심을 보이거나 북주를 막아설 유능한 장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제 영웅들의 억울한 죽음

북제 후주 무평 원년(570), 북제의 곡률광을 위시한 북제군이 분수와 황하 일대에서 북주군을 몰아내며 영토를 확장한다. 곡률광 등은 분수와 황하 일대를 따라 백곡성柏谷城, 옥벽성玉壁城, 정양성定阳城, 요양성姚襄城, 곽영성郭荣城 등을 수리하며 기반을 다져놓을 채비를 마친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황제 고위는 대신 곡률광, 고징의 4자인 난릉왕 고장공, 맹장인 황족 고사호 등을 죽였다. 권력에 위협이 되리라 판단했던 것으로, 북주의 우문옹은 매우 기뻐하며 북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조금씩 영토를 넓혀갔다.

570년 상황, 분수 동쪽에서 진격한 북제군은 북주군을 서쪽으로 밀어낸다
571년 상황, 북제군은 황하와 분수 일대를 따라 기반을 다진다

고위는 이후 수양성(위진남북조 이후로도 요점지)이 함몰되자 그제야 두려워했지만, 은행인 목제파의 말을 듣고 평소처럼 노는데 열중했다.

"설령 우리가 황하 남안을 모두 잃을지라도 여전히 구자와 같은 나라를 꾸릴 수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아 행락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왜 스스로 수심에 잠기는 것입니까?"

당시 남조와 북조엔 은행恩幸들이 부를 쌓아 마침내 권력까지 얻게 되었는데, 북제에는 화사개, 한장란, 고아나굉, 목제파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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