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림을 제압하고 황제가 된 진패선 - 양나라 멸망 [103화]

양나라 마지막 황제 양경제 소방지

양경제 소태 원년(555) 말, 왕승변의 잔여 세력인 두감과 왕승지가 거병해 북제의 군사를 이끌고 건강성 인근까지 다다르지만 양나라 진패선이 출격해 북제의 군사까지 대파하는 큰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조카 진현랑을 북제로 보내며 화친을 요구한다.

 

양경제 태평 원년(556) 4월, 북제의 소궤, 동방로, 임약이 10만 대군으로 공격에 나서지만 진패선의 대장 황업이 양산에서 대파하며 양군은 대치전에 이른다. 북제가 먼저 퇴각의 뜻을 갖고 소연명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지만 건강을 나서던 도중 등창이 나서 죽는다. 누가 봐도 양나라 진패선이 손을 쓴 것임에 틀림없었다.

 

화가 난 북제군은 무호에서 출발해 건강으로 진격했지만 후안도의 군사가 북제의 의동삼사 걸복무로 등을 생포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후 강북으로 탈주한 북제의 군사가 5분의 1에 불과했다. 이에 북제 문선제 고양은 인질로 와있던 진패선의 조카 진현랑을 죽인다.

 

양경제 태평 2년(557) 3월, 진패선이 상사로 모셨던 소발이 기병했으나 소발은 부하에게 피살됐고, 6월엔 왕림이 기병했다. 왕림 역시 양나라 말기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도적 집단을 흡수해 자신의 막하에 합류시켰었다. 9월엔 양나라 조정이 승상 진패선에게 황월을 더해주었고, 10여 일 후 진공에 봉해지며 구석이 다시 더해졌다.

 

진나라 건국한 진패선 (진고조)

그로부터 3일 후 진패선은 양경제 소방지를 폐하고 보위에 오르니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 마지막 국가 진나라가 세워진다. 소방지는 강음왕에 봉해졌으나 진패선이 보낸 병사들에 의해 살해된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다! 진패선이 나를 보위에 앉히더니 이제는 다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인가?"

당시 왕림은 아직 제압당하지 않았는데 공격에 나선 후안도는 전쟁의 명분이 사라지자 이같이 탄식했다.

"출병의 명분이 없어졌으니 패할 공산이 커졌다!"

졸지에 황실을 지키는 보황군이 된 왕림은 원래 계책에 뛰어난 자였다. 영주에서 왕림과 맞붙은 진나라 진패선의 후안도, 주문육, 서경성, 주철호는 이내 패배하고 포로로 잡혔다.

 

진무제 영정 2년(558) 봄, 왕림이 양무제의 손자인 일곱 살의 소장을 황제로 옹립했다. 10만의 병사로 백수포에 주둔한 채 진나라 진패선 토벌을 준비했다. 이때, 후안도, 주문육 등이 탈출했다.

55세에 황제가 된 진패선

 

진나라 2대 화제 진문제 진천

영정 3년(559) 8월, 진패선이 중병에 들어 사망했으며 장남 진창이 장안에 포로로 잡혀있자 진패선의 조카인 진천을 후안도 등이 옹립했으니 그가 진문제이다.

 

진패선이 사망할 당시 장황후는 내부에 적통 후사가 없고 경험 많은 장수가 외부에 주둔하자 몰래 임천왕 진천을 불러들이며 발상을 늦춘 후 후안도의 건의로 그를 보위에 올렸다.

 

"지금 사방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찌 멀리 갈 여가가 있겠소? 임천왕은 대공을 세운 바 있으니 응당 그를 옹립해야 하오!"

 

왕림이 이 소식을 듣고 진천의 천가 원년(560) 3월, 책구로 진격한다. 그러나 진나라 후진의 화공에 북제 군사의 공격까지 받은 왕림은 대패하고 간신히 측근 수십 명과 북제로 망명한다. 이후 웅담랑, 주적 등이 반란을 일으키나 제압당해 진천의 보위는 굳건해졌다. 당시, 위진남북조 시대 서위(북주)는 진나라에 내분을 일으킬 요량으로 진창을 돌려보낸다.

 

"태자(진창)가 돌아오면 나(진천)는 한 지역의 번왕이 되어 편히 살 생각이오"

 

"자고로 천자를 대신하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후안도는 안륙으로 가 진창을 살해한다. 그리고 서위에 인질로 잡혀있던 진천의 친동생 진욱은 땅을 베어 주는 조건으로 송환받는다. 진천은 진욱을 시중, 중서감, 중위장군에 임명하여 안성왕의 자리에서 문무대정을 총괄케 했다. 양나라 말기에 강릉의 양나라 종실 및 속관들이 포로가 되어 서위의 도성인 장안으로 끌려갈 때(554년) 진욱도 함께였었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근 10년 만에 귀향했다.

 

진문제 천가 4년(563) 6월, 진문제 진천이 후안도를 제거한다. 후안도 일가의 권력이 비대해진 까닭이다. 후안도의 장수들이 위법 행위를 해도 정위들은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으며, 자신이 보위에 올린 것을 시도 때도 없이 황제인 진문제에게 상기시켰었다. 그럼에도 진문제는 후안도만 죽이고 그 일가에 처벌을 내리진 않았다. 이 때문인지 수나라, 당나라 시기엔 양나라, 진나라 황족들이 관료로 대거 등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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