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경의난 발발 - 양나라 무제와 실패한 화폐 정책 [86화]


양무제 태청 2년(548) 9월, 반란 준비를 치밀하게 준비하던 후경이 마침내 수양성에서 반기를 든다. 양나라에선 그전부터 후경의 반란 조짐이 있다는 상소가 꾸준히 올라왔었지만 간신 주이가 이를 모두 불태우거나 숨기는 바람에 양무제는 정작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느닷없는 후경의 반란 소식을 접하곤 매우 놀랐다.


후경은 먼저 회하 일대의 양아인에게 함께 거병할 것을 권했지만 양아인은 사자를 체포해 건강으로 보냈다. 후경은 이에 양아인 살해와 강서 일대의 할양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시 민월(복건 일대)을 치겠다고 위협했다. 그런데도 양무제는 비상식적인 답신을 보낸다.

"빈궁한 집도 5명 또는 10명의 빈객을 맞아들여 사람들을 기쁘게 만든다. 짐에게 그대는 단 한 명의 빈객에 해당한다. 원망의 말을 듣는 것은 짐의 실책이다."

양무제는 후경에게 사과를 했다. 사과를 했다... 양무제가 후경에게... 사과를...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고 협박성 서신을 보냈음에도 양무제는 사과의 뜻을 전하며 비단과 전포로 후경을 위로했다.


이듬해인 태청 3년(549) 9월, 후경은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양나라 조정은 소정표, 유중례, 배지고, 소륜으로 후경을 토벌케 했는데 후경의 책사 왕위는 수적 열세를 쉽게 뒤집을 수 없으니 경기병으로 건강을 치며 소정덕과 접선할 것을 건의한다. 이에 동쪽으로 진군하며 역양을 함몰시키고, 투항한 역양 태수 장철의 계책을 받아들여 채석을 점령하여 지리적 우위를 차지한다.



당시에도 양나라 조정은 채석을 먼저 방비할 것을 권했으나 주이가 이를 반대하며 거점지를 고작 8천 병사에게 허무하게 내줬다.

"후경은 틀림없이 도강할 뜻이 없을 것입니다."

채석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태자 소강의 두 아들이 소정덕과 관문을 지켰고 장군 양간이 40여 년간 전쟁 없이 시간을 보내던 양나라 장병들을 안정시켰다. 당시 양나라 장수들은 말도 타지 못했고, 말 울음소리에 놀라 말을 호랑이로 부를 정도였다.

"저건 호랑이다. 왜 말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소강은 후경군이 주작항을 건너 도강을 시도할까 우려해 부교를 끊도록 했으나 몰래 내응하던 소정덕은 이를 반대했고 어리석은 태자 소강은 이를 받아들인다. 주작문을 지키던 동궁학사 유신은 후경군이 당도한 줄도 모르고 한가롭게 사탕수수나 까고 있다가 화살이 중문의 기둥에 꽂히자 매우 놀라 도망쳤다.


후경군은 몰래 도강하여 주작항 인근을 모두 점령하고 소정덕과 접선해 건강의 외성을 점거한다. 그러자 석두성, 백하의 장병들이 두려워 도망치니 후경은 너무나도 손쉽게 건강성 인근의 거점들을 차지한다.


기세를 몰아 대성臺을 공격하지만, 명장 양간은 후경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다. 후경은 이에 외부와 완전히 차단해 스스로 무너지길 기다렸다.


양간의 아들 양탐을 포로로 잡아 회유 시도도 했으나 통하지 않았으며 휘하의 장철 등이 이탈하는 등 상황은 조금 악화하였다. 양간은 유송, 북위를 거치며 전장터에서 경험을 쌓은 노련한 장수로 당시 양나라에서 병법을 아는 장군은 양간이 유일했다.

"나는 온 집안을 기울여 주군에게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 한인데 어찌 자식 하나(양탐)를 애석해할 것인가? 일찍 죽이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같은 해 12월, 후경이 소정덕을 황제, 소견리를 태자로 삼자 소정덕은 집안의 금은재보를 털어 휘하 장병들에게 상으로 내렸으며, 얼마 후 동부를 쳐 양나라 장수 동포후 소추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대성은 소추의 목으로도 회유되지 않았다. 후경은 양나라 군민 중 노비가 된 자를 모두 양민으로 면천시켜 주겠다는 명을 내린다. 그러자 3일 이내에 대성에서 빠져나와 후경에게 투항한 노복의 수만도 무려 수천 명에 이르렀다.



애초 양나라는 실패한 화폐 정책으로 빈부의 격차가 매우 커졌었다. 긴축정책의 여파로 양무제 소역은 이미 민심을 잃었었는데, 이는 위진남북조 시대 중기인 484년, 무제의 황자 경릉왕 소자량의 서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화폐는 귀해지고 물가는 하락하여, 지금 물가는 이전보다 대부분 반값으로 떨어졌다. 농민은 고생고생하며 생산에 주력해도 현금 수입은 적다.


그나마 손에 쥔 화폐는 깎여나간 질 나쁜 화폐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기적으로 세금을 거둘 때 양질의 화폐로 내도록 강요하고 있다. 악질의 화폐는 받지 않고 규정대로 양질의 화폐로만 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민간에는 좋은 화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결국, 농민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기들이 가진 나쁜 화폐 두 닢을 좋은 화폐 한 닢으로 바꾸어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 가난한 농민들이 가진 나쁜 화폐는 액면가가 같더라도 값은 반이므로 그들이 받는 고통은 더욱더 심해진다. 반대로 양질의 화폐를 가진 부자는 점점 더 큰 부자가 되어 간다."

화폐 정책의 실패로 농민들은 도시로 흘러들거나 상인들의 말단으로 모여들었다. 일부는 깡패 집단이 되어 약탈을 일삼는 자들로 변질했다.




댓글(2)

  • 1234
    2018.11.25 02:21

    다른 채권들은 몰라도 국채는 무조건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나라 돈 찍어내는 기관에 돈 더 찍어서 주라고 하면 되니까요.
    물론 채권을 다른 나라 화폐로 사서 타국의 화폐로 돌려줘야 한다면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는 있으나 그것도 잠시동안 채무불이행이 되는 거지 언젠가는 받습니다.
    근데 디폴트 선언해버리면 답없는거고.
    그런데 위 글에서 나온 시나리오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모라토리엄까지만 선언해도 그 나라는 반쯤 망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을 어디에 투자했던 원화가 그리 가치있을 것같진 않네요.

    • 2018.11.25 09:51 신고

      CMA 통장에 돈 넣었다가 손해 본다는 이야기 정도로 읽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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