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 무제 우문옹 중국 북방 통일 완성하다 [99화 북제 멸망]

북주 군대가 홍동과 영안을 함락시킬 때, 고위는 진주를 버리고 사냥을 떠나던 중이었다. 당시, 북제의 군사가 우문흔, 하란표자 등의 북주군을 패퇴시키며 평양성 성벽을 무너뜨려 승세를 이어가고자 했으나, 고위는 풍숙비와 승전의 기쁨을 나눈다며 진격을 중지토록 한다. 풍숙비가 진주 서쪽에 성인聖人의 흔적이 있다며 조심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북주의 군사들은 그 시간 동안 성벽을 수리했고 평양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한 줌 정도의 도적은 말 위에서 베고 붙잡아서 분수 속에다 내던져 버릴 뿐입니다!"
"저들도 역시 천자이고 우리 또한 천자입니다. 저들은 오히려 멀리에서 왔는데 우리가 어찌 해자를 지키고 약한 것을 내보입니까!"
 

멀쩡한 군대를 놔두고 후퇴하는 북제

장군들의 진격 건의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우승상 고아나굉은 어이없는 말을 한다.

"우리 병사가 비록 많으나 전투를 감당할 사람은 10만을 넘지 않고 병들고 다쳤으며, 성을 둘러싸고 나무하고 불을 때는 사람이 다시 3분의 1입니다. 예전에 북주의 옥벽을 공격했을 때 그들의 원군이 오자 아군이 즉시 물러났었습니다. 지금의 장수와 병사들이 어찌 신무 황제(고환) 때보다 우수하겠습니까! 싸우지 말고 물러나서 고량교를 지키는 것만 못합니다!"

고위는 고아나굉의 의견을 따랐다.

 

이때 평양이 위험하다 판단된 북주의 무제 우문옹(북주의 명군)은 친히 8만 병사로 친정에 나섰고, 곧 반격을 개시했다. 고위는 풍숙비와 함께 말 위에서 이를 관전하고 있었는데 문득 동쪽 진영에서 퇴각하는 소리가 나자 풍숙비가 매우 놀라 소리쳤다.

"군대가 패했다!"

원래 겁이 많고 병법이라곤 전혀 모르던 고위는 지레 겁을 먹고 무작정 도주했다. 북제의 병사들도 이를 따라 도주에 나서 1만여 명이 목숨을 잃는 대패를 당한다.

"반쯤 나아갔다가 반쯤 물러나는 것은 전투에서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지금 병사의 무리가 온전히 정돈하여 있고 아직 무너지고 다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군대가 집결하기를 끝냈고 아주 완전히 정돈되었습니다. 성을 포위한 병사 또한 움직이지 않습니다. 황제께서는 의당 진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개부의동삼사 해장과 무위 장상산이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이없는 황제 북제 고위 - 위진남북조 시대 흔항 황제?

비정통 황제 안덕왕 고연종

576년 12월 13일. 북주 고위는 이후 겁에 질려 안덕왕 고연종에게 진양을 지키도록 하면서 본인은 삭주로 피난을 간다. 고위는 이 와중에도 태감을 시켜 황후의 예복을 갖고 오도록 하여 도주 중 풍숙비를 황후로 봉한다. 진양에 남은 고연종이 간곡히 간했지만, 소용없었다.

"폐하는 사직과 강산을 위해 절대 떠나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폐하를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면 능히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위가 돌궐이 있는 쪽으로 달아나자 수행 관원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영군장군 매승랑이 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간해서야 겨우 고위는 10여 기만을 데리고 업성으로 되돌아온다. 고연종은 병주자사에 임명되어 산서 일대의 군사를 총지휘하게 되었지만 은행인 목제파와 하발복은 등은 북주에 투항할 것을 권했다.

 

이때 진양을 지키던 장수들이 고연종에게 보위에 오를 것을 간청하자 576년 12월, 안덕왕이 보위에 올라 조령을 내린다.

"(고위는) 문지기를 베고 달아나 현재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왕공과 경사들이 거듭 간해 지금 보위를 잇게 됐다."

고연종이 보위에 오르자 북제의 수많은 군민이 진양으로 몰려들었고 결사 항쟁을 다짐했다. 북주의 무제 우문옹이 진양을 공격하여 동문을 깨뜨리고 진입했으나, 고연종이 반격에 나서 북주의 병사 2천여 명이 몰살한다. 이에 동쪽 성문이 막혀 사람들의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구사일생 우문옹 (북주 무제)

우문옹도 진양에 입성했다 간신히 도주했기에 지레 겁을 먹고 철군하려 했다. 그러나 종실인 우문흔과 우문헌이 재차 진격할 것을 권했고, 고위의 총신으로 있다가 투항한 단창도 진양성이 텅 비어있다고 고했다.

 

북주 무제 우문옹은 재차 동문을 공격하자 승리에 취해 연회를 하던 북제군은 막지 못했다. 당시 황제를 칭하던 고연종도 포로로 붙잡힌다.

 

진양이 무너지자 북제로선 황제 고위가 지키는 수도 업을 필사적으로 지켜야만 했다. 곡률효경이 고위에게 친히 장병들 앞에 나서 군심을 고취할 것을 권하며 병사들의 의기를 분발케 하는 내용의 연설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고위는 십여 만 명의 장병 앞에서 연설하던 도중 대목을 잊고 크게 웃어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마침 궁내의 점복관이 천문에 이상이 생겼다고 고하면서 왕조와 보위가 바뀔 조짐이라고 풀이했다. 고위는 부황인 무성제 고담의 전례를 좇아 태자 고항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이 되었다. 이 어린 고항이 북제 유주幼主이다.

 

고위는 북주의 군사들이 이르기도 전에 처자 등을 이끌고 제주로 달아났다. 고작 백여 기만 그를 따랐으며, 청주에 이르렀을 땐 남조 진나라로 달아날 생각을 했다. 이때 고아나굉은 그를 산 채로 잡아 북주에 넘겨 공을 세우고자 했다. 이에 북주의 추병이 아주 멀리 있다고 고위를 속여, 급히 달아날 필요가 없다고 회유했다.

북방을 통일한 북주

한편,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업성의 북제군은 북주군을 막지 못했고, 고위는 도주하던 끝에 남등촌에서 북주의 추병에 사로잡혔다. 당시 북주의 제왕 우문헌은 고연종을 비롯해 임성왕 고개와 광녕왕 고효형 등을 생포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결국, 북제의 50개 주와 162개 군, 33만 호가 북주의 것이 되었다. 부견의 전진이 379년 북중국을 통일했으나 비수 대전 이후 북중국은 다시 분열되었다. 이후 198년만인 577년에 북중국이 다시 통일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마지막 통일)

고위는 장안으로 끌려가 온공에 봉해졌고, 후에 풍소련을 돌려줄 것을 청해 허락받았다. 나중에 북주 무제 우문옹이 연회에서 고위에게 춤을 출 것을 명하자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날듯이 뱅뱅 돌며 춤을 췄다. 북주의 군신 모두 절묘한 선비족의 춤사위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오호십육국 시대를 거쳐 위진남북조 시대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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