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글자와 복식 문화 등 일상 생활과 한주漢州 중심부 9주 5소경

신라 한문체, 의복 문화와 중심부 한주 9주 5소경 

신라의 문자와 예술


신라의 문자 문화는 6세기 들면서 진일보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신라의 한문자 사용수준은 유려한 문자를 작성했다기보다는 신라만의 고유명사를 한자로 표기하는 정도였다.


지배계급에 한정되어 사용된 문자는 6세기 중엽 이후 경주 밖으로 퍼져 지방에서도 한문자를 사용하는 계층이 점차 늘어나면서 문자 사용 수준도 높아졌다. 신라 초기에는 예서와 해서를 주로 쓴 고졸한 서체와 이두식 표현이 많이 있었으나 진흥왕순수비를 기점으로 문장이 유려한 한문체로 바뀌어 갔다.


신라 경기 하남 이성산성 벼루신라 경기 하남 이성산성 벼루


이후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된 비석의 형식과 문체는 중국 당나라 문화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 있다. 한강 유역의 신라 산성에서는 글자가 있는 목간, 토기, 기와 등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성산성 목간의 무진戊辰, 오두산성 기와의 원천元泉, 천정泉井, 상초上草, 초하草下, 남한산성 기와의 촌주村主, 아차산성 기와의 북한北漢, 한漢, 한산○漢山○, 북북北北, 수受, 해蟹, 관官 등이 대표적인 명문이다.


호암산성에서는 잉벌내력척내말仍伐內力只內末이 새겨진 청동 숟가락이 출토되었다. 잉벌내仍伐內는 고구려 때의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에도 옛 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구로구 천왕동 유적. 통일신라서울 구로구 천왕동 유적. 통일신라


통일신라 사발과 병통일신라 사발과 병


이러한 신라의 문자문화와 함께 예술 수준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이성산성에서 출토되었다. 유물 가운데 신라의 복식문화와 조각문화를 보여주는 예가 있다.


복식문화는 나무인물상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몸에 옷과 목걸이 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옷은 목 부분이 둥글게 파여 있고, 허벅다리까지 내려오는 포삼의 형태이며, 허리에는 폭이 넓은 띠를 두르고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는 낮은 복두 같은 것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출토된 나무인면상은 신라의 조각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얼굴만 새겨져 있다.


왼쪽 머리 부분은 결실된 상태이나 둥근 타원형의 얼굴 전면에는 각 부분이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조각품은 실제 가면처럼 사용하기에는 소형이므로 의례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널고리통일신라 널고리


통일신라 항아리와 사발통일신라 항아리와 사발



신라 사람의 일상생활


신라가 한강 유역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여러 성 가운데 이성산성은 여러 차례 발굴 조사되어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성산성은 포곡형의 석축산성으로 한강 유역을 방어하는 요충지에 위치한다. 성벽은 둘레 1.6km, 높이 약 4~5m이며, 두 차례에 걸쳐 축성과 개축이 있었다.


신라 이성산성 성벽신라 이성산성 성벽


산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다양한 구조물과 나무제품, 토기, 철기, 석기, 기와류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나무제품으로는 자, 방망이, 톱, 빗, 배, 팽이 등이 있다. 나무자는 발굴 당시 가운데가 부러진 채 뻘층에서 출토되었다. 측면에는 9개의 눈금이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져 있고, 눈금의 간격은 1치 2.9cm이며 폭도 1치로서 눈금 이외의 글씨는 없었다.


연꽃무늬 수막새. 통일신라연꽃무늬 수막새. 통일신라


통일신라 금귀걸이, 청동고리통일신라 금귀걸이, 청동고리


통일신라 널못통일신라 널못


또한, 나무로 된 팽이가 출토되었는데, 이 팽이와 유사한 팽이가 익산 미륵사지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일반적으로 팽이치기는 중국 당나라 때 성행하여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팽이가 출토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팽이치기가 신라 시대부터 유행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밖에도 호, 시루, 동이, 고배, 완 등의 토기와 어골문, 격자문, 선조문 등의 기와류가 많이 출토되었다.




통일 신라의 중심부 9주 5소경과 한주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을 9주州로 나누고, 군사, 행정상이 요충지에는 5소경小京을 설치하여 각 지방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였다.


주 아래에는 군郡과 현縣을 두었으며, 각 주에는 지방군을 1정停씩 배치하였다.


지금의 서울은 한주漢州로 편제되었다. 한주는 9주 가운데 관할범위가 가장 넓어 북쪽으로는 예성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남한강 일대에 이르렀다. 북쪽의 발해와 가까운 국경 지대인 한주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다른 곳과는 달리 특별히 남천정南川停과 골내근정骨乃斤停 등 2개의 정이 설치되었다.


서울 아차산성 신라 보습서울 아차산성 신라 보습


한주가 위치한 한강 유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면서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신라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여러 산성을 쌓았다. 대표적인 산성으로는 아차산성, 행주산성, 오두산성, 남한산성, 이성산성, 계양산성, 대모산성, 호암산성 등이 있다. 이 산성들에서는 다양한 생산도구와 일상생활용품이 출토되었다.


한강 유역의 행정구역명 변천


 명칭

 연대

 신주新州

 553 (진흥왕 14)

 북한산주北漢山州

 557 (진흥왕 18)

 남천주南川州

 568 (진흥왕 29)

 북한산주北漢山州

 604 (진평왕 26)

 신주新州

 611 (진평왕 33)

 한산주漢山州

 619 (진평왕 41)

 남천주南川州

 661 (문무왕 1)

 한산주漢山州

 664 (문무왕 4)

 한주漢州

 757 (경덕왕 16)



신라의 9주 5소경신라의 9주 5소경


한성백제박물관은 8호선 몽촌토성역과 5호선 올림픽공원역 사이에 있습니다. 위치는 전철역에서 가깝다 보니 걸어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백제 한성 박물관

신라 한문체, 의복 문화와 중심부 한주 9주 5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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