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보장왕, 시호인가 이름인가 마지막 왕 궁금증

고구려 보장왕, 시호인가 이름인가 마지막 왕 궁금증


출처 : https://cafe.naver.com/historygall/69914


삼국사기에서는 분명히 고구려 마지막왕 보장왕에게는 시호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 보장왕의 보장이 시호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해 본다.


고구려의 시법에 따르면, 한 예시를 들어보자.




■ 국강상 광개토경평안 호 태왕


고구려는 대(大)대신 주로 태(太)를 썼다. 따라서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물론 이게 황제격 명칭이라는 것은 아니다. 호(好)는 모든 왕에게 붙였다. 마치 중국에서 시호를 지을 때 이을 효(孝 :: 시법에서는 효도 효자가 아니다, 이을 효이다. 당연히 초대 황제는 제외된다) 를 꼬박꼬박 붙이는 것과 같다.


'광개토경평안' 은 시호이다. 업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라를 크게 넓혔으며 국경을 안정시킨 이라는 뜻이다.

국강상은 왕이 묻혀 있는 곳이다. 광개토왕 당시 고구려의 수도는 국내성으로 국강상이란 수도 근처의 언덕을 말한다. 강상은 원(原)과 뜻이 통한다. 따라서 똑같이 국강상에 묻혀 있는 고국원왕은 또다른 국강상왕의 존재로 인해 앞에 옛 고(故)자가 더해진다.


두 왕 다 모두 같은 국내성에 묻혔기 때문에 똑같은 강상(원)이 되기 때문이다. 즉 고국원왕은 옛날에 국강상에 묻힌 왕이라는 뜻이고 국강상왕은 새로이 국강상에 묻힌 왕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전성기 영토고구려 멸망년도 : 668년



자 그러면 후대의 왕의 시호는? 안타깝게도 고구려 왕의 시호는 광개토왕 이외에는 전체의 시호가 밝혀진 바가 없다. 전부 시호의 일부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 20대 장수왕 - 장수 이외의 시호가 밝혀진 바 없다.
  • 21대 문자명치호왕 - 문자, 명치호 5글자만 밝혀졌다. 어디에 묻혔는지 밝혀진 바 없다.
  • 22대 안장왕 - 곧 장황하게 설명할 텐데, 다른 왕들과 시법이 다르다. 여기에 고구려 마지막왕 보장왕 시호의 비밀이 있다. 안장왕은 묻혀 있는 곳이 안장인데, '감출 장' 을 쓴다. 안장왕은(사실상)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 23대 안원왕 - 안강상호왕. 역시 업적에 대한 부분은 밝혀진 바 없다.
  • 24대 양원왕 - 양강상호왕, 향강상호왕. 역시 업적에 대한 부분은 밝혀진 바 없다.
  • 25대 평원왕 - 평강상호왕. 역시 업적에 대한 부분은 밝혀진 바 없다.
  • 26대 영양왕 - 혹은 평양왕.
  • 27대 영류왕 - 장지명인지 폐위로 인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고구려 연개소문 멸망 원인고구려 멸망년도 : 668년


자, 25대 평원왕의 세 아들이자 보장왕의 아버지대의 항렬에 해당하는 세 사람의 이름을 보자.


  • 영양왕 - 대원
  • 영류왕 - 건무
  • 보장왕의 아버지 - 대양


항렬이 대(大)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대양과 태양이 혼용되는 것을 보아 역시 고구려는 대와 태를 혼용하여 썼고 대왕이라 부르던 태왕이라 부르던 상관이 없었음에도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에 항렬이 어디 있느냐고? 당장 여기서만 봐도 영류왕은 항렬을 어겼는데? 하지만 있다. 그다음 대의 항렬이 환(桓)이다.


영양왕의 아들

 환치

 영류왕의 아들

 환권


사촌끼리 같은 환(桓)을 쓴다. 항렬 상으로는 영양, 영류의 조카인 보장왕도 당연히 환(桓)X가 이름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름이 보장이라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장』은 감출 장이다. 안장왕과 보장왕의 장자가 부수가 약간 다르지만, 뜻은 같다. 보장왕도 폐위되었고, 안장왕도 폐위되었지만, 문제는 둘 다 시호를 못 받을 정도로 폐위된 것은 아니다.


안장왕은 어쨌건 동생 안원왕이 시호는 지어 바쳤고, 고구려 마지막왕 보장왕의 경우에는 고구려 멸망 9년 후인 677년 당나라로부터 '요동도독조선국왕' 으로 책봉이 다시 된다. 즉 다시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후에 유배 가긴 하지만...


고구려 동수묘 유적고구려 멸망년도 : 668년


고구려는 진짜 폐위된, 그러니까 시해되고 그 일족도 멸족된 왕들에게도 시호를 지어 바쳤다. 창조리에 의해 폐위된 봉상왕, 그리고 모본왕. 이 둘은 경멸적인 시호도 아니고(물론 진짜 시호가 다 밝혀지는 날에는 이 둘의 시호가 경멸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리라 본다) 장지명에 따라 고구려 전통 시법에 따라 시호를 지어 바쳤다.


그런데 왜 아들이 왕인 보장왕에게는 시호가 없을지?


보장왕이라는 시호는 누가 지어 바쳤냐고? 보장왕의 아들이 어떻게 왕이냐고?


보장왕의 3남 고덕무가 왕이다. 그가 소고구려의 왕으로 책봉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소고구려가 몇십 년에서 길게는 한 세기 이상 지속한 것으로 볼 때, 보장왕의 이름은 환X이고, 비록 중국 측 사서에도 빼도 박도 못하게 고구려왕 장, 삼국사기에 보장왕에게는 시호가 없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도, 보장왕의 보장이 이름이 아니라 시호일 가능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구려 멸망 마지막왕 보장왕고구려 멸망년도 : 668년


Q : 시호라는게 ... 후대에 짓는 건데 고구려 마지막왕 보장왕은 그럴 만한 게 당나라 뿐인데 아님 발해나(....) 약간은 조사가 더 필요할 듯


A : 소고구려 정권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저는 고구려왕 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정식 사서를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퍼시블리티로 열어둔 것일 뿐입니다.


고구려 보장왕, 시호인가 이름인가 마지막 왕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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