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 흑칠 젓가락, 당나라 문학가 왕유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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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 흑칠 젓가락, 당나라 문학가 왕유 에피소드


연암께선 청나라 열하로 이동하는 중 이곳저곳에 들리며, 출처가 불분명한 책에서부터 조선에 알려진 귀한 책을 많이 접하셨습니다. 열하일기를 풍족하게 만드는 많은 이야기는 흥미로운 책이라면 놓지 않고 정독하셨던 연암의 독서량과 비례했다고 봐야겠습니다. 


아래 몇 가지 신기한 이야기는 열하일기의 동란섭필銅蘭涉筆 편에 나온 것으로, 연암께선 다른 책의 기록을 인용하고 그 뒤에 본인의 의견을 적는 것으로 열하일기 신기한 에피소드를 정리하셨습니다.



열하일기 신기한 에피소드 1. 흑칠 젓가락

유양잡조酉陽雜爼 단성식段成式 저著에 보면,


요사이 어떤 바다 사람이 신라로 가는 길에 바람에 밀려서 한 섬 위에 이르니, 산에 가득하게 흑칠黑漆 젓가락이 달린 큰 나무가 많았다. 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젓가락들은 모두 칠나무의 꽃이나 수염들이다.


그는 이내 백여 쌍을 주워서 돌아와서 써 보았더니, 무거워서 쓸 수가 없었다. 뒤에 우연히 이 젓가락으로 찻물을 젓다가 보니, 그대로 녹아 버렸다.



당나라 시기의 흑칠 젓가락당나라 시기의 흑칠 젓가락


하였는데, 이 이야기는 허튼소리만 같다. 우리나라 남쪽 섬 속에 만일 이런 나무가 있었다면, 어찌 듣지 못했을 이치가 있으랴.


이렇게 연암 박지원께선 재밌는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책에 남기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구전들은 참 재밌어요.



일본 흑칠 젓가락일본 흑칠 젓가락




열하일기 신기한 에피소드 2. 당나라 문학가 왕유


단청기丹靑記(저자 미상)에 이르기를,


왕유王維(당唐의 문학가)가 기왕岐王(미상)을 위해서 큰 돌을 한 개 그렸는데, 붓 가는 대로 휘두르고 보니 아주 천연天然의 운치가 있는지라, 기왕은 보물로 여겨서, 때로 처마 밑에 홀로 앉아 온 정신을 모아 바라보며 산중 생각을 하노라니,


유연悠然(침착하고 여유가 있다)히 넘치는 운치가 있었다.



당현종 열하일기열하일기에 나온 당현종


그 뒤 몇 해를 지나니 그림에 더욱 정묘하며 아름다운 빛깔이 돌았는데, 어느 날 아침 폭풍우가 몰아치고 뇌성벽력이 함께 일어나면서 갑자기 돌이 날려 가고 집도 함께 무너졌다. 웬 영문인지 모르다가 뒤에 보니, 그림 두루마리에 빈 종이만 남았으므로 이에 그림에 있던 돌이 날아간 것을 알았을 뿐이다.


당나라 헌종憲宗(재위, 805~820) 때 고려에서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모년 모월 모일에 큰 풍우가 일고 신숭산神嵩山(개성開城의 송악) 위에 웬 이상한 돌 하나가 날아와 떨어졌는데, 왕유라는 글자가 박혀 있으므로 중국서 날아온 돌인 줄을 알고 감히 그대로 머물러 둘 수 없어서 사신을 보내어 가져다 바칩니다’


했다. 황제가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왕유의 수적手蹟을 가져다가 비교해 보았더니 터럭만큼도 틀림이 없었다.


황제는 비로소 왕유의 그림이 신묘한 것을 알고 국내에 두루 그의 그림을 찾아 궁중에 간직하고 땅바닥에 닭과 개의 피를 뿌려 돌이 날아가지 않도록 예방했다.


하였으니,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 제해齊諧(괴담怪談을 수록한 글)의 기록들이 허탄하고 틀린 것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문학가 왕유당나라 문학가 왕유



중국이 고구려를 고려로 부르는 것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고구려는 당 고종高宗 영휘永徽 연간에 망했은 즉, 헌종 때에 어떻게 사신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인가.


또 왕씨의 고려는 송악산松岳山 밑에 도읍했고, 송악을 신숭神嵩이라 불렀는데, 만약 이것이 왕씨의 고려였다면, 고려 태조가 나라를 일으킨 것은 주량朱梁(주전충朱全忠이 세운 후량後梁) 우정友貞(후량의 말제末帝)의 정명貞明 4년(918년)이니, 헌종보다 1백여 년 뒤 연대이다.


왕유는 또 당 명황唐明皇 때 사람인즉 헌종보다 1백여 년 앞섰으니, 그 돌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는 본래 황탄하고 기록도 또 심히 틀렸으니, 이는 필시 왕월王越의 시권 이야기를 희미하게 본떠 만든 이야기일 뿐이다.




☆ 왕월王越의 시권詩券 이야기


왕월은 명나라 대종~효종 때의 문신입니다.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을 역임하며 환관 왕직 등과 결탁해 권세를 누렸습니다.


매사냥과 동물을 사랑하던 조선 성종 때 경복궁으로 바람을 타고 그의 시권詩券(시집, 여러 편의 시를 묶은 책)이 들어오자, 주년사奏年使 편에 부쳐 돌려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명나라 권신 왕월명나라 권신 왕월


☆ 연도 계산

  • 고구려 멸망 - 668년
  • 발해 건국 - 698년 (멸망 926년)
  • 고려 건국 - 918년
  • 당 헌종 재위 기간 - 805년~820년


읭? 고구려 멸망 연도와 고려 건국 연도의 차는 250년입니다. 9세기 헌종이 고려 사신을 영접했을 리가 없죠.


소설을 조금 쓰자면, 발해가 대외적으론 발해와 고려를 혼용했는데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억측에 불과하네요.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바르다고 봅니다.


열하일기 - 흑칠 젓가락, 당나라 문학가 왕유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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