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제 시대 오초칠국의 난, 전한 한무대제 인플레이션 픽션

한경제 시대 오초칠국의 난, 전한 한무대제 인플레이션 픽션


예전에 중국 사극 한무대제 봤었습니다. 오초칠국의 난 벌어지기 직전, 오왕 유비가 조정이 민심을 잃도록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장면이 나왔었습니다.


한경제는 진상 조사에 나섰고 곧 진모가 드러납니다. 오왕 유비는 생산한 위조지폐를 수도와 인근에 많이 뿌렸습니다. 오나라에서는 고의로 화폐 유통량을 늘려서 시장 경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역사적 사실인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오초칠국의 난 당시 인플레이션은 있었을까?



■ 자치통감

오왕(吳王)과 등통(鄧通)이 주조한 돈이 유행하다 


是時(시시) 太中大夫鄧通方寵幸上欲其富(태중대부등통방총재상욕기부)

賜之蜀嚴道銅山使鑄錢吳王?有豫章銅山(사지촉엄도동산사주전오왕비유예장동산)

招致天下亡命者以鑄錢東煮海水爲鹽(초치천하망명자이주전동자해수위염)

以故無賦而國用饒足於是吳鄧錢布天下(이고무부이국용요족어시오등전포천하)



오초칠국의 난 양효왕 (1)오나라, 초나라는 경제의 친동생 양왕 유무를 먼저 공격하나 막힘



태중태부(太中大夫) 등통(鄧通)이 바야흐로 총애를 받아서 황상이 그를 부유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촉엄도(蜀嚴道)의 구리 광산을 하사하여 주고 그로 하여금 돈을 주조하게 하였다.


※ 오왕 유비 = 한고조 유방 조카, 형의 아들


오왕(吳王) 유비(劉?)는 예장(豫章)에 구리 광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천하의 망명한 사람들을 불러서 돈을 만들게 하였다.


또 동쪽에서 바닷물도 끓여서 소금을 만들었으니, 이 때문에 세금을 없애고도 나라의 쓸 물자가 넉넉하였다. 이에 오(吳)와 더불어 등통(鄧通)의 돈이 천하에 두루 퍼졌다.


위조지폐라기보다는 동전의 주조권을 이용해 경제 인공부양책을 썼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한경제 시기, 위조를 통해 난을 준비한 것이라는 해석은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 아닐까요.

일단 한나라 고조(= 한고조 유방) 당시 위조지폐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화폐 주조권 민간 이양된 상태였죠. 이 부분은 한무대제에 언급되진 않습니다.


한경제 시대 오초칠국의 난. 관련된 기록을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 자치통감

가의(賈誼)가 화폐제도를 간했으나 받아 들이지 않다.



주아부 오초칠국의 난주아부. 명장이었으나 양효왕 계략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음



初秦用半兩錢(초진용반량전)

高祖嫌其重難用更鑄莢錢於是物價騰?(고조혐기중난용경주협전어시물가등용) 

米至石萬錢夏四月更造四銖錢除盜鑄錢令(미지만석전하사월경조사수전제도주전령) 

使民得自鑄賈誼諫曰法使天下公得雇租鑄銅錫爲錢(사민득자주가의간왈법사천하공득고조주동석위전)

敢雜以鉛鐵爲?巧者其罪?然鑄錢之情(감잡이연철위타교자기죄경연주전지정)

非?雜爲巧則不可得?而?之甚微爲利其厚(비효잡위교즉불가득영이효지심미위리기후)

今令細民人操造幣之勢夫事有召禍而法有起奸(금령세민인조조폐지세부사유소화이법유기간)

因欲禁其厚利微奸各隱?而鑄作雖?罪日報(인욕금기후리미간각은병이주작수경죄왈보) 

其勢不止乃者民人抵罪多者一縣百數(기세부지내자민인저죄다자일현백수)

及吏之所疑?笞奔走者甚衆夫縣法以誘民(급리지소의방태분주자심중부현법이유민)

使入隱?孰多於此又民用錢郡縣不同(사입은정숙다어차우민용전군현부동)

或用輕錢百加若干或用重錢平稱不受(혹용경전백가약간혹용중전평칭불수)

法錢不立吏急而壹之乎(법전불립이급이일지호)

則大爲煩苛而力不能勝縱而弗呵乎(즉대위번가이력불능승종이불가호)


처음에, 진(秦)은 무게가 12수(銖)인 반량전(半兩錢)을 사용하였는데 고조(高祖) 유방이 무겁고 사용하기 어려운 것을 싫어하여 다시 화폐를 고쳐서 무게가 8수(銖)인 협전(莢錢)을 주조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물가가 올라서 쌀이 1석(石)에 만 전(錢)이나 되었다.

여름 4월, 다시 무게가 가벼운 사수전(四銖錢)을 주조하고 은밀히 화폐를 만드는 ‘도주전령(盜鑄錢令)’을 없애고, 백성들에게 스스로 돈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그러자 가의(賈誼)가 간하여 말했다.


"법에는 천하의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고용하여 구리와 주석을 주조하여서 돈을 만들게 하고 있지만, 감히 납과 철을 섞어서 다른 기교를 부리는 자는, 그 죄를 얼굴에 뜸질하는 경형(?刑)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만드는 사정은, 잡된 것을 섞어서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 이익을 얻을 수가 없게 되고 이를 아주 조금만 섞어도 그 이익은 매우 많게 됩니다.



오초칠국의 난 양효왕 (2)경제는 친동생 양나라 효왕 유무를 총애. 하지만 탐욕스러웠기에 멀리함



양효왕 한경제 동생 유무[탐욕스러웠던 양나라 무왕 양효왕 유무]


무릇 일에는 화(禍)를 부르는 것이 있고 법에는 간사한 것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있는데 이제 영세한 백성들이 화폐를 만들게 하는 형세를 조종하게 되니, 각기 숨기고 가리면서 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이 많은 이익을 보려고 조그만 간사한 짓을 못 하도록 하려고 한다면, 비록 매일같이 경형(?刑)을 범한 사람이 보고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형세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근래에 백성들 가운데 죄에 저촉되는 자가 많으면 한 현(縣)에서 수백이나 되고, 관리가 의심하여 체포하고 태장을 치도록 하니, 도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무릇 법을 걸어 놓고 백성들을 유인하여 함정에 들어가게 하는 것으로 어느 것이 이보다 많겠습니까?



한나라 경제 문경의 치세전한 전성기, 문경의 치세를 이끈 경제. 한무제 아버지



또, 백성들이 전(錢)을 사용하는데 군현(郡縣)마다 같지 않습니다.


  • 가벼운 돈을 사용하고
  • 백에 얼마간을 더하거나
  • 혹은 어떤 것은 무거운 돈을 사용하면


표준을 저울질해 보고는 받지를 않습니다. 법으로 정한 돈이란 것이 자리를 잡지 못하니, 관리가 이것을 급히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크게 번거롭고 복잡하여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인데, 멋대로 하는 것을 내버려 두고 이를 꾸짖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사극 한무대제 묘사된 한경제 시기, 오왕 유비의 인플레이션 작전은 작가의 픽션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추가로 위진남북조 시대 양무제 소연이 다스리던 양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겨 사회적 문제가 되었었습니다. 이 화폐 주조 문제는 시대가 흘러도 고대에는 잘 정착되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한경제 시대 오초칠국의 난, 전한 한무대제 인플레이션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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