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대전 - 100만 대군 막아낸 동진 북부병 [42화]

중국 전진 불안 요소

부씨 일족의 저족은 봉건제의 여파로 전진의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었으나 중원엔 선비, 흉노, 강, 저 등이 섞여 살고 있었다. 으론 부강한 국가였으나 내부적으론 결코 안정적이라 볼 수 없는 불안 요소가 너무나도 뚜렷했다.


비수대전, 전진 100만 대군을 막아낸 동진 북부병 [42화]위진남북조 시대, 5호16국 시기 북방을 통일한 전진 부견은 천하통일을 노리며 100만 대군으로 동진을 향한다



"내가 대업을 이은 지 30년. 사방은 대략 평정되었으나 오직 동남 한구석만은 아직 왕화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에 부견은

  • 모용수 - 관군장군, 경조윤
  • 전연 마지막 황제 모용위 - 신흥후
  • 모용위 동생 모용충 - 평양태수
  • 구지 양통 - 평원장군, 남진주자사
  • 전량 장천석 - 귀의후
  • 강족 요장 - 양무장군에 임명했었다.


비수대전 이후 중국 전진이 빠르게 해체된 이유다. 결국 부견은 왕맹의 간언과는 정반대의 행위를 벌인 것이다. 매우 위험하고 누구나가 우려할만한 조치였다.


중국 전진 100만 대군 동진으로 향하다

친동생 부융도 이런 말을 했다.


"폐하는 선비, 강, 갈족을 총애하여 기내에 살게 하고는 동족은 먼 곳으로 옮겼습니다. 이제 병란이 일어나면 국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도읍에는 약한 병사 수만 명뿐이나, 선비, 강, 갈 등은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적이고 우리들의 원수였습니다."


[위진남북조, 중국 동진 전진의 비수대전] 비수대전 직전 영역[위진남북조, 중국 동진 전진의 비수대전] 비수대전 직전 영역



부융의 지적은 정확했다. 어쨌든, 부견은 동진 정벌의 뜻을 굳혔고 우선 형주로 향하는 길목을 탄탄히 하기 위해 양양을 재차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전진 부견은 60만의 보병과 27만의 기병을 이끌고 강남으로 향하며 동진의 황제를 상서좌복야, 사안을 이부상서, 환충을 시중으로 미리 임명했다.


동진 조정은 사석을 정토대도독, 사현을 선봉도독으로 삼고 사안의 아들 사염과 환이 등을 장수로 삼아 8만 병사로 동진의 대군에 대적토록 했다. 별도로 호빈에겐 수군 5천을 맡겼다. 이때 동원된 병력 대부분이 북부병으로 동진 말기까지 계속 언급되는 중요한 군사 집단이며, 비수대전 당시 전면에 나섰었다.


전진의 부융은 일거에 수춘성을 함몰시켰고 모용수는 운성을 함락시키며 동진 장수 왕태병의 목을 베었으며, 양성도 5만 병사를 이끌고 낙간에 주둔하며 동진군과의 여러 차례 접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동진의 반격

패전이 거듭되던 동진이었지만 용양장군 호빈이 반격을 가하며 전세를 뒤집을 기회를 만든다. 호빈은 양식이 떨어진 척, 지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사석에게 보냈지만 사자는 계획대로 부융에게 붙잡힌다. 부견은 적군의 양식이 떨어진 것으로 착각해 성급히 군사를 몰아 진격하다 용양장군 유뢰와 사석 등의 급습으로 선봉에 나서 승전을 거듭하던 장군 양성을 비롯해 대장 10명을 잃는다.


병사도 1만5천을 잃었으나 이후 전황을 보건대 병사 1만5천보다 대장 10명을 잃은 것이 전진으로선 뼈아픈 피해였을 것이다. 사석 등은 팔공산 위에 풀과 종이로 만든 가짜 병사들을 배치하며 전진의 진군을 조금 더 늦춘다.


[위진남북조, 중국 동진 전진의 비수대전][위진남북조, 중국 동진 전진의 비수대전]



부견이 정말 속았기에 가능했고, 부견은 동진의 급습과 뜻밖에 많은 병사의 수에 당황한다.


"이는 모두 적들이 아닌가? 어찌하여 적들의 숫자가 얼마 안 된다고 말한 것인가?"


이에 양양에서 붙잡았던 옛 동진의 장수 주서를 사석에게 보내 투항을 권유했다. 그러나 주서는 사석에게로 가자 바로 동진의 장수가 되어 중국 전진의 허실을 낱낱이 일러 주었다.


"속히 적들의 선봉과 결전을 치르시오. 선봉을 꺾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크오. 저들의 백만 대군이 몰려오면 감당하기 어렵소."


당시 전진의 장수 장자가 비수 남쪽에서 사석과 대치하며 계속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사석은 주서의 말을 듣고 계책을 하나 생각해낸다.


반전의 계기 = 비수대전

전진 부융에게 이런 서신을 보냈다.


"당신의 대군은 깊이 들어와 수변에 군진을 펼쳤으니 이는 지구전의 계책이 아니오. 당신이 약간 뒤로 후퇴한 뒤 빈 곳에서 쌍방의 전사가 서로 겨루도록 하고 당신과 나는 말을 타고 이를 관전하는 게 어떻겠소?"


이 서신 하나가 대국을 뒤집는 계기가 된다. 어찌 된 일인지 부견과 부융은 사석의 제안을 수락한다. 미루어보건대 부견은 자신이 어떻게 하든 무조건 승리하여 천하 통일할 것으로 착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동진의 군대가 뒤로 물러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서신을 보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짐짓 물러나는 척하며 갑자기 방향을 바꿔 빠른 속도로 추격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사석의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게 패착이었다. 부견의 이 패착은 걷잡을 수 없는 일로 커지게 되나니...

진秦군이 패했다!

[비수대전 당시 전진군 진격로와 동진국 방어로][비수대전 당시 전진군 진격로와 동진국 방어로]


[비수대전] 부견과 모용수 퇴각로, 동진군 추격로[비수대전] 부견과 모용수 퇴각로, 동진군 추격로

(출처 : 삼국지 뒷이야기 - 비수대전[링크])



이해할 수 없는 요구 조건을 들어준 부견과 부융의 전진 군대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던 중 기묘한 말을 듣는다.


"진군秦이 패했다!"


양양에서 거짓 투항한 동진의 옛 장수. 주서의 목소리였다.


위진남북조 비수대전 동진 전진376년 중국 동진 시대, 전진 영토



양양을 함락시킬 당시 동진에서 전진 부견에게 투항한 장수로 전진의 장병들도 모두 그를 알고 있었다. 선비, 강, 갈족의 병사들이 먼저 매우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고 후방의 군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함께 도주했다. 부견 동생 부융은 이들을 저지하려 했으나 되려 병사들에 치이며 말에서 떨어졌다.


부융은 동진군의 화살에도 맞았지만, 기어코 회북까지 도주하여 비수대전 당시 목숨을 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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