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선제 시기 下 곽광 지나친 욕심으로 멸족 당하다

한나라 선제 시기 下 곽광 지나친 욕심으로 멸족 당하다


한나라 선제 유순소제가 열여덟 살이 되어 관례를 치르게 됐는데, 곽광이 그 의식을 주재했다


전한 소제는 스물한 살에 이르러 병사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유하劉賀(폐위된 창읍왕昌邑王)가 즉위했는데, 방탕하여 도무지 군주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조야 안팎으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곽광이 여러 대신의 위탁을 받고, 또한 양창 등과 연계하여 조회 때에 갑자기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상관 황후의 명의를 빌려 유하의 죄상을 열거하고는 왕으로 강등시키고 식읍 2천 호를 주어 창읍에 살게 했다. 그리고 유하의 졸개들 2백여 명을 모두 저잣거리에서 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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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한 선제 즉위

어떤 이가 크게 외쳤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화를 입고 말았구나!"


애당초 곽광을 죽이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는 뜻이었다. 군주를 세운다는 것은 커다란 일이었다. 어떤 이가 제안했다.


"무제의 증손자인 유병이病已가 민간에서 살고 있는데, 예의 바르고 학문에 통달했으며 재능도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나이가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능히 군주로 세울 만합니다"


일설에는 그해에 태산의 큰 바위가 스스로 일어서고, 상림원의 큰 버드나무 잎을 벌레들이 먹어 글이 나타났는데, 식별해 보니 '공손병이립' 모양이었다고도 한다.



무제 유조 받았던 곽광무제 유조 받았던 곽광



이 모두가 민간에서 황제가 나올 징조였다. 곽광이 직접 유병이를 영접하였으니, 그가 바로 전한 선제였다.


당시 곽광이 선제의 곁에 앉아 대신 마차를 몰고 조상의 사당으로 가 제사를 올렸는데, 나중에 선제가 당시를 회고하며 말하기를, "마치 바늘 끝이 등을 찌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후 장안세의 마차로 바꾼 뒤에야 비로소 안심했다. 사실 이는 한편으로는 곽광의 권위가 컸음을 반영하는 것이요, 또 한편으로는 곽씨 집안 몰락의 복선이 되기도 했다


◆ 황후가 된 곽광의 딸

선제가 아직 황후를 세우지 않자, 당시 많은 사람은 곽광의 딸을 황후로 세우려 했으나, 선제는 옛날 검을 찾는 명령을 내렸다. 그 뜻은 분명했다.

선제가 어려울 때 사귀었던 여인을 잊지 못해 하는 수없이 민간에 살 때 맞았던 여인인 허씨를 황후로 세웠다. 관례에 따르면, 허씨의 아비를 후로 책봉해야 했으나, 곽광은 그가 이미 궁형을 받았으므로 미천한 자라 여기고 후로 봉하지 않으려 했다. 선제가 끝까지 고집을 피우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선제가 즉위한 지 2년이 되었을 때, 곽광은 황제가 삼가고 겸손한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아 은퇴하기를 청했다. 그러자 선제는 이를 윤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우선 곽광에게 결재받은 뒤, 자신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곽광 동상 전한 신하곽광 동상 전한 신하



이때 곽광의 아들 곽우 및 곽광 형의 손자인 곽운, 곽산 및 외손자 등이 연이어 관직을 얻어 조정에서 점차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선제는 이를 상당히 시기했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선제는 곽씨 집안의 세력이 너무 커져 장래에 변이 일어날까 두려워 차츰 곽우 등의 군권을 거두어들였다. 곽씨 집안은 자신들의 상황이 좋지 않음, 특히 자신들을 탄핵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허 황후를 독살시켰다는 말이 점점 더 무성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곽운과 곽산 등은 곽현을 찾아 방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 몰락하는 전한 공신

곽현이 독살에 관한 일을 알려주자, 그들은 깜짝 놀랐고, 유일한 길은 곽씨 및 여러 사위와 더불어 난을 일으키고 상관 태후의 명의로 선제를 폐위시켜야 후환을 없앨 수 있다고 여겼다.



전한 선제 유순전한 선제 유순



벽에도 귀가 있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마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밤중에 몰래 다른 사람과 이 일을 의논했는데, 그 친구가 이 말을 듣고는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선제에게 밀고했다. 곽씨 집안의 역적모의가 이로써 누설되고 말았다.


선제는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여기고는 병사들을 파견해 곽씨 일족을 몰살시켰다. 곽산과 곽운은 독을 마시고 자살했고, 곽현과 곽우는 허리가 잘려 죽었으며, 곽씨 집안의 사위나 외손자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


ⓒ 출처 - 권도, 역사에 권력을 묻는다, 펑신, 김문, 승병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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