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당시 삼국지 조조 100만 병사, 화용도 관우 및 당시 인구

적벽대전 당시 삼국지 조조 100만 병사, 화용도 관우 및 당시 인구


적벽대전 삽화油画 赤壁之战[적벽대전 삽화油画 赤壁之战] 적벽대전을 상기해 보자면, 우리가 해방을 위해 치렀던 전쟁에 못지않았습니다. (1937~1945년까지 이어진 중일전쟁을 의미)


조조는 북방에서 백만 대군으로 남하하며, 손권에게 이런 편지를 쓰죠.


"나는 백만 병사와 천명의 장수 인솔하고 강하에서 그대와 사냥을 하고 싶네. 유비를 물리치고 그 땅을 나눠 갖곤 오랜 결맹을 맺음세."


손권은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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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권, 주유, 제갈량 만남

노숙은 오에서 조조에 대항하기 위한 손님을 모셔오는데, 그가 바로 제갈공명입니다.


제갈공명은 조조의 "백만 병사" 라는 말을 운운하며,


"조조에겐 청주군 20만, 원소를 평정하고 얻은 5, 60만, 중원의 병력 3, 40만이 있습니다. 지금은 형주를 얻어 2, 30만이 더해졌으니, 계산해보면 대략 150만에 달하는 병사가 있습니다. 이 량이 보건대, 동쪽 땅에 겁을 주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오 땅에는 고작 몇만의 병사뿐이었죠.



중국게임 적벽대전 속 제갈량중국게임 적벽대전 속 제갈량



제갈공명은 조조에 항거하기 위한 담판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고, 후에 주유는 조아만에 대적해야 한다며 항복론자들을 설득합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주유에게 5만 병사만 주신다면, 적들을 격파하겠습니다."


다른 설창문학说唱文学(강창講唱문학이라고도 하며, 노래唱와 말講로서 구현하는 행위)에선 조조가 "83만 강병"과 함께 강을 건넜다고도 합니다.

◆ 적벽대전 100만 대군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해 사람들은 "70% 사실(삼국지), 30% 허구(삼국지연의)"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삼국지 속엔 삼국지연의는 없고, 그와 비슷한 이야기만 담겨있을 뿐입니다. (연의 속엔 삼국지가 있지만, 삼국지 속엔 연의가 없다) 또, 제갈량이 삼고초려로 유비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조조는 곁에 백만의 인재를 가졌으며,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합니다..."


개괄적인 시야에선 옳으나, 결코 백만의 군사가 있다고 해석할 순 없으며, 은유적으로 많은 백성들이(백만) 그를 지지한다는 뜻입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조조는 4, 5만 정병으로 7만의 원소군을 관도대전에서 전멸시킵니다. 그리고 원소의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키죠. 이후 적벽에선 20만 병사로 남하하여 손권, 유비 연합의 5만과 대적합니다.



불타는 적벽불타는 적벽, 위나라 조맹덕 패배



조조는 빠르게 공격하려 했으나, 이미 많이 지친 병사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았고, 수전에 취약한 약점을 극복하지 못해, 화공火攻을 받고 패배합니다.


이후 삼국이 정립三足鼎立(삼족 정립, 정鼎은 세발 달린 솥, 솥의 세 발처럼 서다)하는 국면으로 전환되죠. 100만, 150만, 83만 등은 분명히 예술적 과장입니다. (소설의 한 소재일 뿐) 예술 속에서 (정량적) 숫자는 애매해지고, 큰 전쟁을 묘사하기 위해 허구의 공간을 예술적으로 묘사합니다.


◆ 적벽대전 대패로 도망가는 조맹덕

조조가 도망칠 때 18명의 패잔병과 장수만이 곁을 지킬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18명입니다. 작가들이 좋아할 만한 또 하나의 소재죠.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 관우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 관우


희극 "화용도"에선 관우의 외침을 추가하며 18이란 숫자를 멋지게 꾸밉니다.


"조조야, 조조야, 너의 패잔병 18명과 항복해라, 관모와 매서운 호랑이 18명이 무섭지도 않으냐?"


겁을 내지 않을 수 없겠죠. 그렇죠? 조조는 무서워하는 한편 관우에게 많은 말을 쏟아내며 그의 동정심을 자극합니다. 관우와 곁의 두 장수는 측은지심과 의기 때문에, 초라하게 방황하는 조조를 그만 놔주게 됩니다. 이렇게 한번 놓아주니, 이 한 번의 이야기는 삼국 시대를 다루는 좋은 이야기 소재 중 하나가 됩니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좋아했던 이야기로, 누구도 정확한 숫자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고 이야기에 빠져 즐겼을 뿐입니다.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음 仰格丫子看三国——怒气冲天)


◆ 중국 역사, 삼국시대 정립과 당시 인구

역사적으로 삼국 시대는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동한 말년의 전란을 지나, 위, 촉, 오 삼국이 대립하는 시기에 이르면, 전국인구는 서한 시기 2,100만에서 760만으로 급감합니다. 오늘날 대도시 인구에 지나지 않게 되죠. 삼국 시대가 종결된 서진 시기가 되어서야 1,600만으로 오릅니다.



손오 연합군의 조조군 공격 루트손오 연합군의 조조군 공격 루트



치열한 이 시기에도 활발하게 발전한 문학은 매우 생생하게 그 시대를 기록했고, 읽는 사람들은 마치 그 시대에 빠져든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극 중에서도 제일 많은 77편이나 만들어졌어요.


자연히 난세 속 인물들은 문학가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소재로 잘 활용되었죠. 조조, 제갈량, 주유, 조운 등 그들의 지혜, 계모, 용맹함은 역사 속 최고의 인물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평범한 일화는 이런 인물을 거치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꾸준히 이야기 소재로 쓰이다 보니 그들을 닮는 것이 하나의 영광이 되었고, 그들의 총명함은 생각의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간사하며 속이 좁았던 주도독(제갈량을 시기한 주유)이란 이야기가 창작된 건 유감이지만요.

삼국시대 실제 인구는 위나라 443만으로 오늘날 50개 현과 같습니다. 오나라는 230만, 촉나라는 94만으로 삼국을 합치면 767만입니다.


자 생각해보죠.


위나라 인구 443만에서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몸이 약한 사람을 빼면 최대 200만이 됩니다. 과연 이들 모두를 병사로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조승상은 무슨 재주가 있길래 150만 강병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10만이나 20만이라면 비슷한 숫자라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100만 강병 이야기는 허황한 이야기일 뿐이죠.


오, 촉이 몇만이라고 하는 부분은 사실에 부합하나,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이 적벽대전에 동원된 촉나라 병력을 몇만이라 적고 있습니다. (아마도, 유비의 병력 또한 과장되었다는 부분을 지적하는 듯)


ⓒ 출처 - [삼국지 이야기] "조조의 백만 정예 병사"에 대해서 ([说三国]苗得雨:话说"曹操雄兵百万" (2013年11月26日 今晚报) [클릭]

- 본문은 2013년 11월 26일 금만보今晚报에 업로드된 ydcyj1님의 글입니다.

적벽대전 당시 삼국지 조조 100만 병사, 화용도 관우 및 당시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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