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송 무쌍!! 동진 유의, 촉 초종, 후진 요홍 공격 [49화]


무리수를 둔 유의

유유와 함께 환현을 토벌했던 유의는 처음에 유유와 대등한 위치였으나 이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유의는 이에 조정 내부에서 힘을 기르고자 끊임없이 더 많은 군권을 요구했다. 물론, 유유가 없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유유가 노순의 반란을 제압하고 입경하니 조정 내부의 분위기는 다시 한번 전환된다.


의희 8년 (412), 형주자사 유도규가 노환을 이유로 퇴임하자 유의는 형, 영, 진, 옹주 4개 주의 군사를 총괄했고 이후에도 자신의 측근들을 요충지의 대장으로 계속해서 임명한다.

유의는 이미 형주의 군부를 장악해 북으론 한수, 서쪽으론 파촉, 남으론 영남으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요충지를 점거한 상태였다. 유유가 계속 유의의 이런 청을 들어준 건 자신감의 표시이기도 했으나 함께 환현을 토벌했던 의리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런 유유도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새롭게 형주자사가 된 유의가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관원들을 멋대로 인사 조치했으며, 사촌 동생 유번을 형주의 부수로 삼은 것이다.



유송 무제 무쌍 1. 유의 공격

의희 8년 (412) 10월, 유유는 왕맹의 손자 왕진악과 함께 강릉으로 향한다. 유의 휘하엔 건강 출신 사병이 많았는데 유유 휘하의 사병들관 친인척 관계여서 순순히 뒤로 물러나며 유유의 군대를 맞이했다.


위진남북조 413년 형세도. 촉을 얻은 동진413년 형세도. 촉을 얻은 동진 [위진남북조 시대]


이들은 오히려 유의를 떠나 유유가 보낸 장병들과 함께하며 유의를 위해 교전하기를 피했다. 이에 유의는 우목불사까지 도주했으나 그곳 승려가 거절했다.


"전에 사부가 우리 절로 도망쳐 온 환울을 숨겨 주었다가 유의가 보낸 군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적이 있소.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소!"


유의는 살아날 수 없음을 깨닫고 목을 매달아 자결했으며 유의의 동생을 비롯해 일족도 주살된다.


이어 유유는 조정의 제갈장민을 없앤다. 탐욕스러웠던 그는 유유가 자신을 탄핵할까 두려워 거병도 시도했지만, 유경선 등이 유유에게 미리 알리는 바람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유경선은 제갈장민이 회유하려던 인물이기도 했다.


제갈장민이 선수를 칠지도 몰라 초조했던 유유는 강릉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건강으로 돌아와 돌아온 유유는 제갈장민 일족을 주살한다. (지쳤는지 어쨌는지) 의희 9년(413) 년엔 후진에 칭신하던 파촉에 "초종 토벌군"을 보내 성공한다. (직접 가지 않고 부하를 보냈다. 거의 처음으로)


유송 무제 무쌍 2. 파촉 초종 공격

안제 의희 원년(405), 익주의 장령들은 동진의 내란을 틈타 촉 땅의 대족인 초종을 옹립해 성동왕으로 삼고 할거했다. 이어 후진에 칭신했고 환현의 사촌 동생 환겸과 연합해 동진의 변경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유가 보낸 주령석이 성도를 함락시키자 초종은 목을 매달아 자결한다.


의희 11년(415) 초, 유유는 형주의 종실 사마휴지를 공격해 일족을 주살한다.


아마도 선행을 베풀고 군민을 잘 다스리던 그가 권력의 걸림돌로 판단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더는 권력에 걸림돌이 없었던 유유는 태부 양주목에 오르고 3남 유의륭은 공작, 동생 유도련은 형주자사에 임명된다. 강릉의 사마휴지를 제거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유유는 남방, 서방의 적과 내부의 적을 완전히 토벌하였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전장터를 달려온 유유.


이제 그의 두 번째 북벌이 시작된다.


유유의 2차 북벌 진격로유유의 2차 북벌 진격로 [위진남북조 시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타이콥)

유송 무제 무쌍 3. 후진 공격

의희 12년(416) 3월, 후진의 요흥이 병사하자 태자 요홍이 형제들을 척살하고 보위를 잇는다. 부견을 죽이고 정신병에 걸렸던 요장의 손자다. 당시 후진은 요홍의 형제 4명이 각기 황위를 노리고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북쪽의 대하 혁련발발이 국경을 공격하는 등 내우외환으로 위기 상황이었다.


이런 시기에 ㅠㅠ의 두번째 북벌이 일어난다. 목표는 후진이었다.


416년 동진군의 진격로416년 동진군의 진격로 [위진남북조 시대]


 허창 낙양 노선

 왕진악, 단도제

 관중 노선

 심전자, 부홍지

 황하 노선

 심전자, 유준

 사수, 제주 노선

 왕중덕


미래의 송나라 황제 유유가 이끄는 총 4개 노선이었다.


왕진악과 단도제는 항성과 허창 등지를 점령하고, 무리하게 영격에 나선 낙양의 요광을 패퇴시킨 뒤 낙양성을 함락한다. 이에 유유는 왕홍을 건강으로 보내 구석을 요구했으니 아마도 환온이 3차 북벌에서 원했던 모습일 것이다. 좌장사 왕홍은 환온을 견제하며 끝까지 동진의 사마씨 황통을 지켜낸 왕도의 증손자로 증조부완 다른 길을 택했다.


의희 13년(417), 조정이 유유를 상국에 임명하며 양주목을 겸하게 했다.



함께 송공宋에 봉하며 10개 군을 봉지로 내렸으니, 구석을 더함으로써 제후왕보다 높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즈음 왕중덕의 수군은 황당하게 북위의 영토를 얻게 되었는데, 이는 유유의 의도완 벗어난 결과였다. 활대를 지키던 북위의 위건이 동진의 군사를 보자마자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도망쳐버렸다.


북위의 원제 탁발사는 유유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고, 북위와의 관계를 고려한 유유는 이같이 답장한다.


"낙양은 진나라의 옛 도성입니다. ... 지금 우리는 길을 빌려 저들을 정벌하려는 것뿐입니다. 실로 위나라를 적으로 삼고자 한 게 아닙니다."


위건은 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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