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불황제 양무제와 동위 후경의 난 - 위진남북조 84화

이젠 시선을 위진남북조 시대 남쪽으로 돌려보자.

그곳엔 싯다르타 덕후 소연(= 양무제)이 다스리는 양나라가 있다.



당시, 위진남북조 시대의 남조인 양나라 황제와 신하들은 사치스러웠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승려가 되길 원했으며, 일반 백성들은 가혹한 세금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부유했던 강남의 사회가 거의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양무제는 무너져가는 남조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조정에서는 오히려 공덕을 쌓았다(부처에게 돈을 많이 바쳤으니 다 괜찮다~라는 의미). 조정에서 쓰는 것은 모두 정원에서 나온 식물이고 하나의 호박을 변화시켜 수십 종류로 만들었고 하나의 나물을 변화시켜 수십 가지의 맛을 내게 한 것이어서, 변화를 시켜서 많은 것을 만들었으니, 어떤 일에도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

"짐은 3경(23시 ~ 01시)에 나가 일을 처리하면서 일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일이 적으면 오전에 마칠 수가 있었고, 일이 많으면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서야 바야흐로 식사를 했다. 항상 하루 한 끼를 먹었다.  그 결과 옛날에 허리둘레가 10위(1위는 5촌, 10위는 5척)를 넘었는데 지금은 마르고 줄어들어 겨우 2척여인데, 예전의 허리띠가 아직도 있으니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다. (부처에게 공양한 나는 정말 킹왕짱) 누구를 위해 이렇게 했는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직접한건 아닌데 부처가 해줄거니 걱정마셈....헐..ㅠㅠ)"


이에 양무제를 일컬어 영불황제佞佛皇帝 즉 부처에게 아첨하는 황제라 부른다. 황제와 대신들이 불교를 탐닉하며 오묘한 공허함 만을 떠벌이면서 사치의 극을 달렸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개막한 서진 말기 왕연을 비롯해 청담만을 논하고 현실을 외면하던 우매한 지식인들 처럼 굴었다.



양무제 중대동 2년(547) 정월, 소연은 문득 꿈속에서 중원의 관원들이 모두 땅을 들어 투항하자 조정 백관들이 이를 칭송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꿈을 꾸기만 하면 그 꿈이 반드시 현실로 나타났다!"

이후 발암 유발자로 명성을 날리는 주이가 축하한다.

"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우주가 하나로 합치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조짐입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


얼마 후, 동위의 고환이 세상을 떠나고 후계자 고징과 후경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고환은 죽기전 아들 고징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죽은 후에는 네가 그를(후경)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만일 후경이 반기를 들면 모용소종 밖에 대적할 이가 없다. 네(고징)가 그(모용소종)를 발탁하면 사력을 다해 도울 것이다!"

고환 사후, 고징이 지나칠 정도로 후경을 괄시하자 후경은 우문태에게 칭신한다. 그러나 우문태는 후경을 전혀 돕질 않았다. 이에 후경은 양나라로 투항하기로 한다. 이 시기에 고징은 서신을 보내 반역에 뜻을 두지 말 것을 권했으나 후경은 "날 때리려 하면 막을 겁니다"라는 투의 답신을 보낸다.


일이 틀어지자 고징은 후경을 공격하지만 영천 등에서 후경군의 기습을 받아 대패한다. 그러나 기반이 약했던 후경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양무제에게 귀부의 뜻을 밝힌다. 이전에 고징은 겉으로 그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지만 실제로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몇만에 그쳤고 후경이 난을 일으킬 당시 그에게 호응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예주, 광주, 영주, 형주, 양주, 연주, 남연주, 제주, 동예주, 낙양, 북형주, 북양주 등 13개 주를 들어 귀부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13개주 운운은 허풍이었고 실제론 연주 서쪽의 고작 몇 개 군만 후경에게 동조했다.



이에 양무제는 처음 머뭇거렸으나 중서사 주이의 간언을 받아들인다.

"후경이 위나라의 땅을 반이나 떼어 귀부의 뜻을 표하니 실로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바라건대 폐하는 전혀 의심치 마십시오!"

양무제 중대동 2년(547) 6월, 소연은 후경을 하남왕, 대장군에 봉하며 하남, 하북의 군사를 총괄케 했으며 사주자사 양아인 등에게 3만을 맡기며 현호로 가 후경을 돕게 했다.




이전에 후경은 서위에 투항할 요량으로 동형, 노량, 장사, 북형주 등 4개 성을 할양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었는데 서위의 왕사정은 공을 탐내 출병한 상태였다.

"만일 이 기회를 틈타 진격해 취하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우문태가 이필, 조귀 등과 1만여 병사를 영천으로 보냈다.


동위군은 대적키 어렵다 판단하여 업성으로 철군했고 서위의 다른 부대인 이필과 조귀 등은 양나라의 양아인 군대가 여수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역시 장안으로 철군했다. 후경은 왕사정의 군대를 보고 영천을 포기하니 왕사정은 텅 비어있는 영천을 접수한다.



이에 후경은 서위에 화친을 요구하며 인근의 서위군에게 주연을 베풀었지만 우문태는 은밀히 후경 아래의 7개 주 12개 진을 접수했으며, 그에게 부여한 관직을 모조리 왕사정에게 돌렸다. 배신을 반복하고 야심이 많던 그를 우문태는 신뢰하지 않았다. 얼마 후 양나라 양아인의 부대와 현호성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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