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 vs 오나라 - 유수오 전투, 강릉(면구) 대치

 

조비의 남정과 관련한 2개의 전투로 첫 번째 동구 전투, 두 번째 남군 전투에 대해선 아래 글을 먼저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참고] 조비(위나라)의 손권(오나라) 공격 - 동구, 남군 전투

 

4. 유수오 전투 < 조인, 장제 (상조, 조태, 왕쌍) vs 주환 >


조비는 1차 남정 때 세 갈래로 군을 내려보냈는데, 바로 동구, 남군, 유수오다.

동구와 남군은 1편에서 다루었고, 2편에서 다룰 곳은 유수오다.

 

유수오는 오나라 손권 시절에 여몽과 장흠이 합비 공략의 전초기지로 사용하려고 만든 것으로 합비 아래의 큰 호수인 소호와 장강과 소호가 연결되는 유수 둘을 기지화시킨 것이다. 유수는 '오나라의 합비 공략의 전초기지'이기도 하지만, 빼앗긴다면 '위나라의 건업 공략의 전초기지'가 되기에 조조 역시 장료, 장패, 손관 등을 이끌고 남하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전투는 비로 인해 대치만 하다가 끝난다. 물론 서성이 진삼국무쌍을 보여주기도 했다만..)

 

어쨌든 조비는 위나라 최고의 장수 조인(+장제)을 합비로 내려보낸다. 원래 유수오독은 오나라 주태. 그가 죽은 건 단지 황무 연간이라는 것뿐이지만, 유수오독이 신임받던 주태에서 갑자기 비장군 주환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볼 때 그때 즈음에 주태가 죽었다거나 병이 들었다고 가정하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조인과는 별개로 장제는 군사를 이끌고 선계를 급습한다. (문제는 장제전에 그 이후 장제가 선계에서 뭐했는지 기록이 없다.)

 

한편 한 싸가지 하시는 주환은

 

"양쪽 군댁 교전함에 있어서 승부의 관건은 장수에게 있지 병사들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오. 여러분들은 조인이 병사를 쓰고 지휘하는 것이 나와 비교하여 어떻다고 들었소? 병법에, 공격하는 쪽은 배가 돼야 하고 수비하는 쪽은 절반이면 된다고 하는 것은 쌍방의 군대가 모두 평원에 있고 성벽이나 못의 수비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또 쌍방의 병사들을 용감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똑같음을 말하는 것이오.

현재 적군의 장수에게는 지혜도 없고 용감하지도 않으며, 게다가 사졸들은 두려워하고 있으며 또 천 리를 걸어왔으므로 병사와 말은 피곤한 상태이오. 나와 각 부대가 공동으로 높은 성을 차지하고 남쪽으로는 대강에 임하고, 북쪽으로는 산과 구릉을 등지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병사들로써 피곤한 적군을 기다리도록 하는 것은 수비 쪽에서 공격 쪽을 제압하는 것이며, 이것은 백전백승의 형세인 것이오. 비록 조비가 직접 왔을지라도 걱정할 것이 못되거늘, 하물며 조인 등임에랴!"

 

진교로부터 천재(天才)라고 칭송받은 조인을 지혜도 없고, 용감하지도 않으며,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은 조인 따위 뭐 그렇게 두려워하냐라고 말한다.

 

그는 일부로 기치와 북을 다 뉘어놓고, 깃발을 쓰러뜨려 겉으로는 허약하게 보이게 하였다. 조인 입장에서도 보면은 오나라 군대는 실적도 하나 없는 무명 하급 관리가 새로 부임한 곳이니, 군사들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제장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고 봐도 충분하다. 깃발도 말려 있고, 북도 안 올려 있고 이런데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조금 더 이상하지...


어쨌든, 위나라 조인은 재미있는 작전을 생각해내는데, 아들 조태로 하여금 유수성을 치게 하고는 부장 상조와 왕쌍을 나누어 파견하여 유선 (소가죽을 입히고 기름칠을 하여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도록 만든 일종의 쾌속선이지만, 적들의 표적이 되기도 쉽다.)을 이용하여 별도로 중주를 습격케 하였다.

 

즉, 역사에 많이 쓰이는 성동격서, 양동작전인데, 장제는 이에 "적들이 서쪽 강 언덕을 점거하고 배를 상류에 늘어놓았으니 병사들이 중주로 들어간다면 이는 스스로 지옥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위태롭고 망하는 길입니다. "라고 하며 반대해보지만, 조인은 이를 좇지 않고는 스스로 1만명을 거느리고 탁고에 주둔해 조태의 후원세력이 되었다. 조태는 죽을힘을 다해 공격했겠지만, 당연히 주력이 아니니 막아내기 쉬울 수밖에 없다.

 

덫을 놓았던 오나라 주환은 별장을 수로 쪽에 파견해둔다.

 

주환은 조태와 힘껏 싸웠다. 그러자 조태는 군영을 불태우고 후퇴하였다. 조태가 조인에게 합류하기도 전에, 유선으로 자잘 자잘 넘어 오던 군사들은 오군의 습격을 받는다. 이에 상조는 전사하고 왕쌍은 생포되었다. 그리고 이때 진지에 다가섰다가 피살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1천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유수오에서도 실패. 조비가 가후, 유엽 등 군사계 핵심인물들의 간언도 무시한 채 야심 차게 준비했던 남벌은 세 곳 모두 실패하면서, 결국 조비는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막을 내린다.

5. 면구 대치 < 문빙 vs 손권 >


하후상이 강릉을 공략할 때에 문빙은 면구로 가서 주둔했다고 한다.

 

면구는 황조가 주둔한 곳이라고도 하는데, 황조가 주둔한 곳은 하구이니 면구 = 하구인 듯한다.(아닌가?) 즉, 위나라 문빙이 조비의 1차 남정 때 무창 (강하) 근처까지 내려갔다는 건데, 석범에 숙영 하며 스스로 일대를 이끌고 적을 막아 전공을 올려 후장군에 영전되었고 신야후에 봉해졌다고 한다. (석범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는 게 함정)

 

어쨌든 면구라하면, 당시 손권이 무창에 주둔해 있었으니, 손권과 직접 대치했다는 것인데, 이는 문빙이 굉장한 임무를 행했다는 것이다. 즉, 문빙의 임무는 지원으로 보내지는 적병 격파나 주변 정리 정도가 아닌 손권의 본대를 견제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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