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역사217 고구려 역사 = 중국사? 동북공정을 자극하는 유사역사학(=환빠) 어느 중국 네티즌의 글을 번역했습니다. 제 중국어 실력이 짧아서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조 : 좀 봐봐. 야비한 한국인들의 짓을 (한국인의 중국 역사 왜곡) [링크] 고구려는 중국 역사이며 한국과 일부 중국 학자들이 역사 왜곡 한다는 주제의 글입니다. 화딱지 나는 중국 네티즌의 글 하나 함께 읽어보시죠. 동북공정 정말 열받습니다. 중국 사람의 글을 번역한 겁니다.오해하지 마세요.제 주장이 아닙니다. 고구려 역사 = 중국사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한국인 - 고구려 역사는 한국 역사 아니다 2003년 6월, 광명일보光明日报엔 "시론试论 : 고구려 역사 연구의 몇 가지 문제점" 제목의 글이 발표되었는데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고구려 정권의 성질 (동북공정 논리임) 중원 왕조의 제약을 받음중국의 지.. 2021. 1. 21. 공조냉동기계기사 / 산업기사 전기제어공학 요점 정리 pdf 공조냉동기계기사 중 전기제어공학 2012~2017 요점 정리된 pdf 파일을 소개합니다. 일단, 간단히 맛보기로 일부 내용을 소개하고요. 전체 내용은 글 맨 아래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공조냉동기계기사 / 산업기사 전기제어공학 요점 정리 맛보기 시작합니다. * 전동기 1. 동기전동기 1) 정속도 전동기이다 2) 저속도에서 효율 좋다 3) 난조가 일어나기 쉽다 4) 기동장치가 필요하다 * 물리적인 제량이 전기적인 신호로 처리되는 변환 장치의 정적 특성 1. 정밀도 2. 분해능 3. 반복성 * 시정수 1. 어떤 회로, 어떤 물체, 혹은 어떤 제어대상이 외부로부터의 입력에 얼마나 빠르게, 느리게 반응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2. 시정수는 크면 클수록 과도현상은 오래 지속된다. * [추치제어].. 2021. 1. 13. [덕수궁 중명전] 김옥균과 갑신정변의 흔적 (관람안내) 덕수궁 중명전 德壽宮 重明殿Jungmyeongjeon Hall of Deoksugung Palace 중명전과 예원학교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다가 1897년에 경운궁(현 덕수궁)을 확장할 때 궁궐에 포함되었다. 경운궁 본궁과 이 일대 사이에 이미 미국 공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별궁처럼 사용되었다.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1899년에 지어졌다. 처음에는 1층의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화재 이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중명전 외에도 환벽정, 만희당을 비롯한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 이후 중명전 이외의 건물은 없어졌다. 중명전은 고종이 1904년 경운궁 화재 이후 1907년 강제퇴위 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이기.. 2021. 1. 12. 선비족 우문태의 주나라(북주) | 동위(북제) 정복 94화 고환의 동위는 선비족과 한족 간의 갈등이 컸다. 선비족 고관들이 한족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고환의 총애를 받던 고오조는 휘하의 선비족 장병들 속에 한인들이 섞여 있으면 고환에게 요청해 이들을 다른 부대로 이전시키는 등 당시 선비족 대장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일화를 몇 가지 남겼다. 한번은 황하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물에 빠져 죽자, "한 푼의 가치도 없는 한인들은 죽게 놓아두어라!" 라는 말을 했다. 고환도 이를 타개하려 시도는 했지만, 동위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인은 너희 노복이다. 남자는 너희를 위해 경작하고, 여자는 너희를 위해 옷을 만든다. 곡식과 비단을 세금으로 내 너희를 따뜻하게 먹이고 있다. 왜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인가?" "선비족은 너희가 고용한 용병이다... 2020. 12. 31. 우문선비 우문태의 주나라(북주周) | 서위 건국 과정 [93화] 이하 글은 아래의 3개 자료에서 발췌. 1.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 가와카쓰 요시오, 임대회 옮김2. 위진남북조사, 이공범3. 동북아역사재단총서, 중국 정사 외국전 우문宇文흉노를 조상으로 하며 특히 (우문태는) 남선우의 후예이다. 본래 음산陰山 지역에 거주하였다가 1세기경 요동 일대로 이주하면서 점차 선비화 되었고, 마침내 우문선비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서위를 건설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북주의 지배집단을 형성하였다. 위진남북조 3세기 후반에 이주한 이들은 유목을 주업으로 하고 수렵, 농경, 약탈을 부업으로 삼아 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종족과 혼합하여 거주하게 되었는데, 구심력이 있는 정치체제를 갖춘 우문 집단은 이미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 종종인 선비족을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정.. 2020. 12. 17. 용두사지 철당간 - 충청도 청주 여행 명소 [유형문화재 유적지]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용두사지 철당간이 서 있는 곳은 고려 시대 청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자리이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사찰의 건립과 함께 많은 수의 당간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대부분 당간을 받치고 있던 지주만이 남아있다. (용두사지 철당간도 마찬가지) 용두사지 철당간은 화강석으로 지주를 세우고 그사이에 둥근 철통 30개를 연결하여 세운 것인데, 현재는 20개만이 남아 있다. 이 중 밑에서 세 번째의 용두사지 철당간 철통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다. 철당기에는 용두사지 철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과 건립 연대, 그리고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관직명이 적혀 있어, 당시 지방 경영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용두사지 철당간 철당기 끝에는 962년 준풍3년에 주성하였다고 하여, 고려 광종 때.. 2020. 11. 25. 이전 1 2 3 4 5 6 7 ··· 3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