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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9

선비족 우문태의 주나라(북주) | 동위(북제) 정복 94화 고환의 동위는 선비족과 한족 간의 갈등이 컸다. 선비족 고관들이 한족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고환의 총애를 받던 고오조는 휘하의 선비족 장병들 속에 한인들이 섞여 있으면 고환에게 요청해 이들을 다른 부대로 이전시키는 등 당시 선비족 대장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일화를 몇 가지 남겼다. 한번은 황하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물에 빠져 죽자, "한 푼의 가치도 없는 한인들은 죽게 놓아두어라!" 라는 말을 했다. 고환도 이를 타개하려 시도는 했지만, 동위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인은 너희 노복이다. 남자는 너희를 위해 경작하고, 여자는 너희를 위해 옷을 만든다. 곡식과 비단을 세금으로 내 너희를 따뜻하게 먹이고 있다. 왜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인가?" "선비족은 너희가 고용한 용병이다... 2020. 12. 31.
서진 말기 화북 농경 지대,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호족 [10화] 서진 말기 화북 농경 지대,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호족 [10화] 발췌 : 중국의 역사 - 위진남북조 - 가와카쓰 요시오, 혜안출판사 중국 본토는 대게 회수淮水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북과 이남으로 크게 나뉜다. 회수 이북은 개활지라 명명되며 건조도가 높아 삼림이 충분히 생육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삼림이 자란다 하더라도 일단 한 번 채벌되면 재생되기 어렵다. 따라서, 회수 이북에는 삼림지대가 형성되기 힘들었고, 이에 『울창한 삼림』에 방해를 받지 않은 화북의 대평원은 전망이 좋고, 공간이 열려 있어 집단의 이동이 쉬웠다. 또한 치수가 어렵기로 유명한 황하의 물을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소규모 관개와 자연의 천수를 주로 이용하는 소위 소관개 천수 농경 지대였다. 뜻밖에 농사에 가혹한 환경에 처한 .. 2019. 3. 29.
고팔부古八部 시절 거란족과 선비족(북위), 거란과 북제 고팔부古八部 시절 거란족과 선비족(북위), 거란과 북제 등국 3년(386년), 북위의 정벌로 인해 고막해와 분리된 거란족은 반세기가 지나면서 안정을 되찾았고 점차 세력을 회복하면서 북위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북위의 세조 탁발도 태연 3년(437)에 거란은 사신을 파견해 공물을 바쳤다. 태평, 진군 연간(440~450)에는 좋은 말을 매년 공납했다. 현조 탁발홍(466~470 재위) 시기에 거란족은 북위와 이미 여러 해 동안 왕래하면서 마침내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 "여러 나라의 말석에 끼여 향응에 참가하는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6세기 중엽까지 거란은 고팔부古八部의 연맹 단계에 해당한다. 고팔부의 명칭과 관련해 위서의 현조기와 거란전 및 책부원귀 요사의 영위지와 세표의 기록이 서로 일치하고 .. 2018.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