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11 북제 영웅 난릉왕, 곡률광 죽다 - 잔인한 황제 고담 고위 [97화] 북주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 북제도 남조 양나라처럼 은행恩幸 세력이 대두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화사개가 있는데, 그는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무성제에게 향락을 권유하였다. 여느 위진남북조 시대 황제처럼 ... "예로부터 여러 왕도 결국은 죽어 타고 남은 재가 되는 것입니다. 요순걸주도 다를 것이 없었으니 폐하께서도 젊을 때 마음대로 즐기고 국사는 대신들에게 나누어 맡겨 스스로 고생을 피하십시오." 고담은 화사개를 좌복야, 조언심에겐 인사, 원문요에겐 재정, 당옹에겐 군사 문제를 위임하며 3~4일에 한 번 조정을 살필 뿐이었다. 남조 양나라처럼 전통적인 귀족 사회가 무너지고 한문 출신들이 크게 기용되었다. 군공을 많이 세운 자들이 황제가 되거나 새로운 명문 귀족으로 떠오르는 공통점이 북조에서도 나타.. 2021. 3. 16. 선비족 우문태의 주나라(북주) | 동위(북제) 정복 94화 고환의 동위는 선비족과 한족 간의 갈등이 컸다. 선비족 고관들이 한족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고환의 총애를 받던 고오조는 휘하의 선비족 장병들 속에 한인들이 섞여 있으면 고환에게 요청해 이들을 다른 부대로 이전시키는 등 당시 선비족 대장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일화를 몇 가지 남겼다. 한번은 황하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물에 빠져 죽자, "한 푼의 가치도 없는 한인들은 죽게 놓아두어라!" 라는 말을 했다. 고환도 이를 타개하려 시도는 했지만, 동위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인은 너희 노복이다. 남자는 너희를 위해 경작하고, 여자는 너희를 위해 옷을 만든다. 곡식과 비단을 세금으로 내 너희를 따뜻하게 먹이고 있다. 왜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인가?" "선비족은 너희가 고용한 용병이다... 2020. 12. 31. 우문선비 우문태의 주나라(북주周) | 서위 건국 과정 [93화] 이하 글은 아래의 3개 자료에서 발췌. 1.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 가와카쓰 요시오, 임대회 옮김2. 위진남북조사, 이공범3. 동북아역사재단총서, 중국 정사 외국전 우문宇文흉노를 조상으로 하며 특히 (우문태는) 남선우의 후예이다. 본래 음산陰山 지역에 거주하였다가 1세기경 요동 일대로 이주하면서 점차 선비화 되었고, 마침내 우문선비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서위를 건설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북주의 지배집단을 형성하였다. 위진남북조 3세기 후반에 이주한 이들은 유목을 주업으로 하고 수렵, 농경, 약탈을 부업으로 삼아 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종족과 혼합하여 거주하게 되었는데, 구심력이 있는 정치체제를 갖춘 우문 집단은 이미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 종종인 선비족을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정.. 2020. 12. 17. 북량 멸망 - 형주 파촉을 얻어낸 서위 우문태 [92화] 위진남북조 중기 - 양원제 승성 2년(553) 10월, 왕승변은 건강, 진패선은 경구에 주둔케 했다. 승성 3년(554) 4월, 서위의 사자를 북제의 사자보다 홀대했다는 이유로 우문태가 11월에 출병을 명한다. 우근, 우문호, 양충 등이 한수를 넘어 강릉에서 4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황화에 이르렀다. 왕승변을 대도독으로 삼고 진패선에겐 양주로 군영을 옮기게 했다. 소역은 밤에 봉황각에 올라가 천문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객성(혜성처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별)이 형초의 영역으로 들어왔으니 우리가 필히 패하겠구나!" 강을 건너는 서위 군을 왕포, 호승우, 주매신, 사답인 등이 영격했지만 모두 패했다. 목책을 두고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 양나라 장수 호승우가 유시에 맞아 전사한다. 서위군은 여세를 몰아 목책.. 2020. 10. 13. 서진 말기 화북 농경 지대,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호족 [10화] 서진 말기 화북 농경 지대,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호족 [10화] 발췌 : 중국의 역사 - 위진남북조 - 가와카쓰 요시오, 혜안출판사 중국 본토는 대게 회수淮水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북과 이남으로 크게 나뉜다. 회수 이북은 개활지라 명명되며 건조도가 높아 삼림이 충분히 생육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삼림이 자란다 하더라도 일단 한 번 채벌되면 재생되기 어렵다. 따라서, 회수 이북에는 삼림지대가 형성되기 힘들었고, 이에 『울창한 삼림』에 방해를 받지 않은 화북의 대평원은 전망이 좋고, 공간이 열려 있어 집단의 이동이 쉬웠다. 또한 치수가 어렵기로 유명한 황하의 물을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소규모 관개와 자연의 천수를 주로 이용하는 소위 소관개 천수 농경 지대였다. 뜻밖에 농사에 가혹한 환경에 처한 .. 2019. 3. 2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