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휘지 왕헌지 형제가 평가한 사마상여(한경제)와 정단(신양후)

왕휘지 형제의 인물 평가, 사마상여와 정단


유효표의 세설신어에 왕자유王子猷 왕자경王子敬 형제의 인물평 이야기가 일부 전해집니다.

어느 날 왕자유(왕휘지 王徽之), 왕자경(왕헌지 王獻之) 형제가 함께 고사전高士傳 속의 인물과 찬을 품평합니다. 왕자경정단井丹의 고결함을 칭찬하자 왕휘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장경長卿(사마상여, 司馬相如)이 세상에 도도했던 것만은 못하지."


이어서 『송나라 유효표가 남긴 주석』을 보면 이렇습니다. 왕휘지 왕헌지 형제는 사마상여 정단 두 사람 중 한 명을 더 좋게 생각한 이유가 보입니다.



[왕희지] 왕헌지의 아들, 치감의 딸이 낳은 아들[왕희지] 왕헌지의 아들, 치감의 딸이 낳은 아들




  • 출처 : 혜강嵇康의 고사전高士傳

정단과 신양후 음취

정단(자는 대춘大春, 신양후에게 시달렸던 인물)은 부풍扶風 미郿 땅 사람입니다. 박학하고 논의에 뛰어나 수도(후한 수도 낙양)에선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오경五經에 통달한 정대춘井大春, 누구에게도 면회를 청한 적이 없다'


북궁北宮의 다섯 왕이 차례로 초빙했지만 한 번도 수락하지 않았죠. 그러나 신양후新陽侯 음취陰就(후한의 개국공신 음식의 동생, 성품이 고집스럽고 오만해 존경받지는 못함)가 초청하자 어쩔 수 없이 갑니다.



[왕휘지] 위진남북조 시대 문인[왕휘지] 위진남북조 시대 문인



신양후 음취는 보리밥에 형편없는 반찬을 대접하고 정단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군후君候께서 좋은 음식을 주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처럼 대접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그러자 좋은 음식을 갖다 주며 일어났습니다.


이에 정단이 웃으면서 말합니다.


"걸桀, 주紂가 사람 수레에 탔었다고 들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사람 수레로군요."


신양후는 곧 손수레를 하사합니다. 정단의 속마음이 어떤지 떠보기 위해 그를 일부러 하대한 셈입니다.



위진남북조 왕휘지 동진 문인위진남북조 왕휘지 동진 문인


정단과 월기장교 양송

정단은 월기장교 양송梁松과도 일화를 남겼습니다. 양송은 조정에서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었는데 정단과 교제하기를 바랐으나 정단은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정단이 돌림병에 걸렸을 때 양송이 의원을 데리고 문병하러 왔었죠. 정단의 병이 낫자마자 양송은 장남 양뢰梁磊를 잃었습니다. 이때 정단은 찾아가 조문했죠. 그때 조문객들이 집안에 가득했는데 정단은 허름한 옷조차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하고 왔으므로 배석했던 사람들은 그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정단은 사방으로 길게 읍하고 주객 간에 인사가 끝나자 한 번 읍하고 즉시 자리에 앉아 입을 다물었습니다. 왕휘지는 이런 정단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리가 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곧 도읍에서 떠났는데 나중에는 은둔하죠. 


혜강은 고사전에 이런 찬을 남겼습니다.


"정단은 고결하여 영화와 부귀를 사모하지 않았다. 다섯 왕에게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고 같은 무리가 아니면 교제를 하지 않았다. 드러내놓고 음씨陰氏의 손수레를 비난하자 좌우 사람들이 안색을 잃었다허름한 옷을 걸친 채 단 한 번 읍했을 뿐인데 그 절의는 모든 사람을 압도했다."'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왕휘지][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왕휘지]


사마상여와 탁문군

사마상여는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이며 자는 장경입니다. 그는 처음 낭郎으로 임명되어 한나라 경제景帝를 섬겼습니다. (문경의 치세를 말할 때의 경제가 맞음)


어느 날, 양梁나라 효왕孝王(경제의 친동생, 한무제의 작은아버지)이 내조하면서 추양鄒陽 등을 데리고 왔습니다. (경제와 효왕 친모 두씨는 효왕을 끔찍이 여겨, 경제에게 태자로 임명하면 안 되겠냐는 상식 밖의 이야기도 한 적이 있음) 사마상여는 그들과 의기투합하여 병을 핑계로 벼슬을 내놓고는 양나라로 갑니다.


그 후 임공臨邛에 있을 때 부호인 탁왕손卓王孫의 딸, 탁문군卓文君을 유횩합니다. 과부가 된 지 얼마 안 된 그녀를 금琴으로 유혹했죠. 탁문군은 음악을 매우 좋아했으므로 넘어갔습니다.



사마상여와 탁문군 한나라사마상여와 탁문군, 한나라 역사



탁문군은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쳤고 두 사람은 성도(사마상여 고향)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어려웠으므로 임공 땅에 돌아가서 술집을 사들입니다. 『탁문군은 술청을 지키고 사마상여는 행주치마』를 걸친 채 시장에서 접시를 닦게 되죠.

사마상여는 말을 더듬었지만, 글을 교묘하게 잘 지었습니다. 벼슬을 하고 나선 고관에 욕심이 없었으며, 언제나 병을 핑계로 공경公卿의 대사大事에 불참했습니다. 이후 사마상여는 성도 임공땅에서 숨을 거둡니다. (왕휘지는 이런 사마상여를 좋아한 듯)


찬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마장경은 세상사에 도도하고 예법을 무시하며 자유분방했다. 행주치마를 걸치고 시장에 있어도 그런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병을 핑계 대며 관직을 피한 채 공경 대신들을 무시했다. 그러면서 대인부大人賦를 지었으니 탁월하여 더할 것이 없었다.""



탁문군 한나라 사랑꾼탁문군 한나라 사랑꾼



세설신어 中, 품조品藻(인물을 비교하고 우열을 가림으로써 품평을 가하는 일)편 80화

세설신어 中, 안길환, 명문당, 457p~459p




사마상여와 정단은 벼슬에 욕심내지 않고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으며, 풍족하지 않지만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능력은 천하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둘은 결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왕자유 왕자경 형제가 둘을 놓고 비교한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결코 틀린말을 하지 않았으며, 올바른 말을 권력자에게도 하는 올곧은 마음 가짐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위진남북조 동진 정치가 왕희지위진남북조 동진 정치가 왕희지


덧글 1. 국민뉴스 - 왕희지(王羲之) 가문의 일화(逸話) [클릭]

덧글 2. 왕휘지의 아버지 왕희지는 치감의 딸과 혼인하여 왕휘지 형제를 얻었습니다. 당시 동진 최고의 권력가 집안의 자식이었다는 점은 이채롭습니다.


왕휘지 형제의 인물 평가, 사마상여와 혜강과 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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