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 쟁탈전 - 유요 근준 석륵 삼국지, 두개의 조나라 [15화]

화북 쟁탈전 - 유요 근준 석륵 삼국지, 두개의 조나라 [15화]


연이어 적국의 황제 두 명을 사로잡은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이에 유총은 이에 더욱더 사치에 힘썼다(?).


수렵하며 술을 마시는 것 외에 그가 즐긴 것은 각 대신의 집을 차례로 돌며 미인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그는 중호군 근준의 집에서 그의 두 딸 근월광과 근월화 모두 미모가 뛰어난 것을 보고 곧바로 귀빈으로 삼았다. 그리고 몇 달 후 근월광을 황후로 세웠다.



315년의 형세도, 유요는 왕미와 석륵을 제어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황제였다315년의 형세도, 유요는 왕미와 석륵을 제어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황제였다




천하가 한나라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렇지만 한나라엔 건국자 유연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여전히 존재했다. 왕준, 석륵 등의 대장군들을 조정에서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문제는 여전히 한나라에게 큰 문제였으며, 결국에 해결하지 못했기에 후조가 탄생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유총은 교만했다.


한나라 내부의 심각한 문제를 깨닫고는 있었던 것일까?

유연이 세운 한나라는 아들 유총이 서진을 완벽히 멸망시킴으로써 그 위세를 천하에 크게 떨쳤다. 이런 한나라도 유총의 교만함과 내부 분열로 곧 망국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유총은 주색을 밝혔으며 중상시 왕침, 곽의와 놀기에 바빠 석 달 동안 한 번도 조회를 치르지 않아 국가 대사는 왕침의 손에 쥐어졌다. 왕침은 붕당을 결성해 반대파를 색출하는 한편 권력에 걸림돌인 황태제 유예 제거를 위한 모의도 꾀했다.

 

이 모의가 성공해 유예는 죽게 됐으며, 유화의 아들인 황태제 유예는 진즉에 사마월의 옛 책사인 노지의 의견을 받아 모반을 꾀했으나 모의로 그친 적이 있다. 노지와 여러 한족 관원들은 여기에 휘말려 죽고 유예도 황태제 자리에서 폐해진 뒤 북부왕으로 임명되 봉지로 이동하던 중 외척 근준에게 살해된다.


이 일로 유총은 더욱더 왕침을 총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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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총도 인가 3년(318) 7월에 사망하니, 유요는 승상, 유경을 태사, 제남왕 유기는 대사도, 유의는 대사마, 호연안은 태보가 된다.


황제 자리는 아들 유찬이 잇는데 이가 마지막 황제 은제이다. 유찬은 황태자 시절부터 권력의 걸림돌인 숙부 유예를 왕침과 모의해 살해했을 정도로 시기심과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었다. 또한 아버지처럼 색을 밝혔다. 황제가 되자마자 아버지 유총의 황후들과 통간했으며 유경, 유기, 유려, 유의, 유령 등의 형제를 죽여 권력을 다졌다. 


이런 행동 뒤에는 외척 근준이 있었는데 근준은 딸을 유찬의 아버지 유총에게도 시집을 보내 대를 이어 외척의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근준은 딸들을 통해 제후왕들을 죽였으며 유총 시절엔 붕당을 결성해 반대파 숙청에 황제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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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유찬마저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니 수완이 굉장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근준도 뜻밖의 행동을 취하니, 바로 유찬을 죽인 것이다. 근준은 이전에 대장군, 녹상서사로 임명되어 군권을 장악했으며, 사촌 동생 근명이 거기장군, 근강을 위장군에 임명시켜 황궁의 금군마저도 장악한 상태였다.


이런 그가 유찬이 벌거벗고 후궁들과 놀고 있던 한창 원년(318) 9월, 친위병을 동원해 유찬을 죽이고 평양성 내의 유씨 성 종친들을 모두 도륙했다. "유씨 남녀는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동시東市로 끌고 가 참수토록 하라." 유총, 유찬 2대에 걸쳐 총애를 받던 근준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 유찬이 어리석은 군주라는 판단.

2. 오랑캐에 대한 반감.


둘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고 둘 다 일 수도 있다.



위진남북조 미인 근준중국 역사 - 위진남북조 시대



어쨌든 근준은 반란을 일으켜 흉노족을 도륙했고, 유연과 유총의 능묘에서 시신을 꺼내 칼로 목을 내려쳤으며 유씨 종묘 또한 불태웠다. 그리고 그는 한천왕漢天王을 칭했으며 동진의 원제 사마예에게 우호를 표시했다.


"유연은 도각 부락의 추물에 지나지 않는다. 진나라의 혼란을 틈타 천명을 멋대로 들먹이며 두 황제를 유폐해 죽였다. 나는 두 황제의 재궁을 반환할 생각이다. 이를 받아 주기 바란다."


이제 천하는 다시 큰 소용돌이에 빠지기 시작했다.




유요, 근준, 석륵의 대립유요, 근준, 석륵의 대립

(출처 : 서진의 패망과 전조와 후조] 2-1)

유찬 피살이 알려지자 갈족 출신의 석륵은 곧바로 근준 토벌에 나섰으며 장안의 유요도 거병했다. 석륵과 유요의 군대 중 석륵의 대군이 먼저 평양에 도달했다. 근준이 속전속결로 권위를 세울 것을 원했기에 석륵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포위만을 지속했으며 같은 해 11월엔 적수천에 이른 유요가 칭제를 하며 한나라 황실의 보위를 이었다.


동시에 석륵을 대사마 겸 대장군, 조공趙公으로 봉했으니 두 개의 조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원인이 된다. 이 시기 석륵은 평양성 공격에 나섰고 주변의 파족, 저족, 갈족 등 10여만 무리가 석륵에게 항복한다.



325년경의 전조와 345년경의 후조325년경의 전조와 345년경의 후조



근준 서진 마지막 황제 은제흉노족 한나라 멸망



근준은 석륵에게 강화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했으며, 반대로 유요의 항복 권유를 무시한다. 마침내 사촌 동생인 근강과 근명이 근준의 목을 베어 유요에게 투항하나, 가까이 있는 자신을 무시하고 멀리 있는 유요에게 찾아간 것을 괘씸하게 여긴 석륵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다.


이때 유요가 평양성 인근까지 진군해 평양성 사녀 1만5천을 성 밖에서 호위하자 평양성을 함락한 석륵은 유요와 군사적 마찰이 생길까 꺼려 평양성을 불태우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유요도 이미 세력이 커진 석륵과의 마찰을 피하는 의미로 그를 조왕趙으로 임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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