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를 공유한다. 사마예 동진 건국 [27화]

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를 공유한다. 사마예 동진 건국 [27화]


이 직전에 『진민제는 한나라(흉노 유연이 세운 국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해 장안 함락 전 사마예에게 이런 친서를 보낸다. 


"짐은 지금 궁지에 몰려 성에 유폐돼 온갖 걱정이 든다. 만일 하루아침에 붕괴하는 날이면 승상이 가히 만기를 통섭해 낙양을 되찾고 종묘를 수복으로써 이 치욕을 설욕하기 바란다."


사마예는 사마업이 포로로 잡히자 보위에 오르진 않았지만 진민제 건흥 6년(317)에 진민제가 피살되자 유곤, 단필제, 단진, 소속 등의 상표로 보위에 올랐다.



(사마예, 중국 동진 건국)(사마예, 중국 동진 건국)



사마예가 동진의 창업주 진원제元帝이다.



동진 건국 이전에 이미 왕씨들이 강남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상태였다. 왕돈은 호북, 호남을 비롯한 양자강 중류, 왕도는 양자강 하류를 자신의 손에 넣었으며 왕씨 일가는 요직을 차지했다.


이에 당시엔 이런 말이 떠돌았다. "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를 공유한다." 이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인물이 바로 왕도다. 



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롤 공유한다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롤 공유한다



하비에서부터 사마예를 보필했고 강남으로 이동해선 지역 군벌의 반란을 제압하고 오랜 명문가들을 위로해 사마예의 휘하로 끌어모은 인물로 사마예에 대한 충심이 강했던 인물이다.


이후 벌어질 왕돈의 반란을 직접 진압할 정도로 가문보단 사마씨 일가의 동진 정권에 충성을 바쳤던 인물이기도 하다.



왕도 - 정치인, 왕횡 - 문장가, 사마예 - 황제왕도 - 정치인, 왕횡 - 문장가, 사마예 - 황제



그러나 초기엔 강남의 실권을 장악하기엔 낭야 왕씨의 힘도 부족했다.


왕도는 강남의 원조를 얻기 위해 명족 육씨 일가의 육완과 혼사를 맺자고 청했으나, 육완은 노골적으로 거절했다.


"작은 언덕에서는 송백松栢이 나지 않습니다. 향초香草와 취초臭草는 같은 그릇에 들어가지 않고요, 나는 보잘것없는 자입니다만 질서를 만란케 할 혼담은 결코 응할 수 없습니다."


내 아무리 바닥까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 같은 부류와는 절대 섞이지 않겠다는 강남 호족들의 당대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면 강남 호족들은 북방에서 이주한 명문가들의 얼굴조차도 몰랐었다.


명망 높던 저부가 오 땅의 금창정에 이르렀는데, 호족들이 한 정자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호족들은 그가 누군지 모르고 찻물만 계속 부어주며 떡을 먹지 못하게 했다. 저부가 찻물을 다 마시고 나서 천천히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말했다.


"저계야(저부) 올 시다!"


좌중의 사람들이 매우 놀라 도망가거나 허둥댔다고 한다. 이처럼 『왕도를 비롯한 중원의 이주 세력』은 강남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사마예를 비롯한 황족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왕도는 꾸준히 이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한다.

사마예는 동진 건립 후 왕씨 일가를 크게 기용했다. 낭야 왕씨 일가 중 한 명인 왕도에 대해선 신임이 깊어져 중부(仲父, 작은아버지)라 부르며 한고조 유방의 건국 공신 소하에 비유했다.



위진남북조 동진위진남북조 동진



사마예는 보위에 오르는 즉위식에도 황제로서의 감각이 없는지, 왕도에 대한 신임이 너무 깊었는진 모르겠으나 왕도에게 같은 위치의 의자에 함께 앉을 것을 권했다.


"만일 태양이 만물과 같은 위치로 내려앉으면, 창생을 고루 내리쬐는 햇볕의 덕을 어찌 바랄 수 있겠습니까?"


감히 황제와 나란히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후 형주목에 임명된 왕도는 영가의 난으로 중원의 난민들이 강남으로 내려오자 이들을 위로하는 한편 형주와 양주 일대를 크게 발전시킨다.


당시 건강 동쪽의 경구 일대는 손권이 대규모로 개간한 일종의 광대한 둔전 지대에 속하는데, 북방에서 피난해 들어오는 유민집단의 정착지(오塢라 지칭)로 사용되었다.



중국 동진 건국에 한 몫했던 조적중국 동진 건국에 한 몫했던 조적



이곳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건 유민집단의 통솔자인 오주塢主 조적이었는데 그는 유민 중 거친 자들을 소집해 회수 일대로 올라가 석륵의 후조 군대를 방비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병사했고 동생인 조약이 이 집단을 통솔했다.


이후 등장하는 치감, 소준, 곽묵 등도 조적, 조약 형제처럼 유민을 모아 군벌로 성장한 경우이다.


사마예가 보위에 오르자 왕씨들은 크게 기용됐으나 유외, 조협 등은 황권 강화를 구실로 왕씨들의 비대해진 권력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했다.


왕도는 이를 알고 본인의 위치를 지키며 황권 강화를 위한 왕씨 일가의 배척을 받아들였으나 왕돈은 이에 격렬히 반대한다. 왕돈은 여러 차례 왕씨 일가의 배척을 중지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번번이 왕도가 상서를 되돌려 보내며 왕씨 일가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중국 동진 건국하여 황제가 된 사마예중국 동진 건국하여 황제가 된 사마예




진원제 대흥 3년(320), 왕돈은 비어있는 상주자사 자리를 자신과 가까운 심충에게 임명할 것을 요청했다. 원제는 초왕 사마승을 불러 말했다.


"왕돈의 간사한 속셈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소."


왕돈은 이전에도 친형 왕함이 여강 태수로 부임한 뒤 탐욕을 부린 까닭에 평판이 안 좋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강의 인사』들이 모두 칭송하고 있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때 자리에 함께했던 왕돈의 주부 하충은,


"저는 여강 출신인데, 제가 듣고 있는 바와는 다릅니다."


라며, 왕씨 일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심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당시 강남 호족들의 속마음이기도 했다.


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를 공유한다. 사마예 동진 건국 [27화]

 written by yowon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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