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 정앵도 - 조나라 석호 황후 (석수 석준 어머니)

정앵도(~349년)는 후조 무제 석호의 황후입니다. 후세의 사서에는 미소년으로 적히기도 했습니다.



석호와의 만남

원래는 서진의 용종복사 정세달(冗従僕射 鄭世達)의 집에서 시중을 들던 기녀(妓女)였습니다. 외모는 아름다웠지만 질투가 많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경위는 알 수 없지만, 후에 석륵(후조(조나라) 황제) 세력 밑에 편입되어 석륵의 창기(娼妓 : 노래와 춤과 몸을 파는 기생(妓生). 여랑(女良))가 됩니다.

어느 날, 석륵의 종자(従子 : 조카. 형제자매의 자식)인 석호가 수많은 기녀 중에서 정앵도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석호는 석륵의 어머니 왕씨에게 그녀의 미모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했고, 왕씨는 그녀와 혼인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렇게 정앵도는 석호와 혼인하고 총애를 받아 석수(石邃), 석준(石遵) 두 아들을 낳았으며, 후에 황후가 됩니다.


※ 십육국춘추(十六国春秋)에서는 석선(石宣)도 그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위진남북조 시대 폭군 석호위진남북조 시대 폭군 석호


질투심

312년, 석호가 중산(中山)을 공략할 때, 석륵은 조나라 정북장군(征北將軍) 곽영(郭榮)의 동생을 석호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지만, 서로를 공경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정앵도는 질투심에 곽씨를 참언하여 끝내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 후 후조 석호는 청하(清河) 출신인 최씨의 딸을 아내로 맞습니다. 정앵도가 남자아이를 낳자 최씨는 그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기를 수 있도록 요구합니다. 하지만 정앵도는 거절합니다.


얼마 후, 한 달여 만에 아이가 병으로 죽자 정앵도는 최씨를 원망하여 석호에게 참언합니다.


"최씨는 많은 호인(胡人 오랑캐) 노복(奴僕 : 남자 하인)을 기르고 있습니다" (해석하면 오랑캐 남자 하인들을 성생활 도구로 이용한다는 뜻)


이때 석호는 정원 뜰에 앉아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는 격노하여 활과 화살을 찾았습니다. 최씨는 석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곤 맨발로 뛰쳐나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공(석호)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부디 첩(최씨 본인)의 말을 들어주세요"


이렇게 애원하자 석호는 대답합니다.


"자리로 돌아가라. 경이 논할 일이 아니다"


최씨는 이 말을 듣고 도망치려 했지만, 석호가 뒤에서 화살을 쏴 허리에 맞아 사망합니다.



조나라 황후

333년 8월, 석호가 위왕(魏王)에 책봉되자 정앵도는 위왕후(魏王后), 그녀의 아들 석수는 세자로 세워집니다.


337년 1월, 석호가 천왕(天王)에 오르자 정앵도는 천왕후(天王后), 석수는 천왕 태자(天王太子)로 세워집니다.


천왕후 정앵도 - 위진남북조 시대를 풍미한 여성천왕후 정앵도 - 위진남북조 시대를 풍미한 여성


7월, 석수가 하간공 석선(河間公 石宣)을 죽이려 하자, 정앵도는 석수를 타이릅니다. 이를 중재하려고 사람을 보내자 석수는 되레 화를 내며 어머니가 보낸 사람을 죽입니다. 후에 석수는 석호의 노여움을 사 주살되고, 정앵도는 동해태비(東海太妃)로 강등됩니다.


349년 4월, 석호가 승하하자 황태자 석세(皇太子 石世)가 뒤를 잇습니다. 5월, 정앵도의 아들인 석준(石遵)이 석세를 폐하고 제위를 찬탈하자 정앵도는 황태후(皇太后 줄여서 황후라고도 함)로 세워집니다.


염민에게 주살되다

349년 11월, 석준은 조나라 의양왕 석포(石苞), 낙평왕 석감(石鑑), 여음왕 석곤(汝陰王 石琨), 회남왕 석소(淮南王 石昭)를 소집해 정앵도 앞에서 회의합니다.


"민(석민)은 점차 교만해지고 있다. 이젠 그의 신하로 있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지금이 그를 주살할 기회라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석준이 묻자 석포 등은 대답합니다.


"그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 황태후는


"이성(李城)에서 군사를 돌려보냈을 때, 극노(棘奴 석민의 아명)가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 것이네! 조금의 교만은 용서하게. 왜 지금 죽이려 하는 것이요!"


라고 반대합니다. 석준 일행의 주살 계획 또한 무산됩니다. 그 후, 석감이 염민에게 이 사실을 고발하자, 석준은 붙잡혀 처형되고 정앵도 또한 주살됩니다.


※ 염민 관련 위진남북조 시대 황당한 일화 :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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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정앵도는 남자? 여자?

당나라 시인 이기(李頎)는 "정앵도를 위한 노래(정앵도가 鄭桜桃歌)"란 시를 지어 정앵도가 미모로 후궁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모습을 읊었습니다.


※ 정앵도가 전체 가사

石季龍,僭天禄,擅雄豪,美人姓鄭名桜桃。 桜桃美顔香且澤,娥娥侍寝専宮掖。後庭卷衣三万人, 翠眉清鏡不得親。官軍女騎一千匹,繁花照耀漳河春。 織成花映紅綸巾,紅旗掣曳鹵簿新。鳴鼙走馬接飛鳥, 銅馱琴瑟随去塵。鳳陽重門如意館,百尺金梯倚銀漢。 自言富貴不可量,女為公主男為王。赤花双簟珊瑚床, 盤龍斗帳琥珀光。淫昏偽位神所悪,滅石者陵終不誤。 鄴城蒼蒼白露微,世事翻覆黄雲飛.


능력자 분들 번역해 주세요. ㅎㅎㅎ


또한, 후세의 일부 사서에는 정앵도를 미소년으로 기록했는데, 이것은 진서(晋書 : 사마씨 진나라 역사서) 등에 기재되어있는 "우동(優童)"이라는 말이 아름다운 남자라고 착각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석호는 동성애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앵도의 직업이 우동(優童)이었는데 이는 광대란 뜻입니다.


※ 풍몽룡(馮夢竜 :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학자)이 쓴 정사정외류(情史情外類)에는 정앵도가 남자이며 이기의 시는 잘못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문법도 함께 변하는데, 과거의 용어를 잘못 이해해 전혀 다른 사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서진 왕연을 가리키던 영형아입니다. (관련 글 영형아의 의미)


석호 동성애설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앵도를 남자로 인식하는 사람은 현대에 거의 없음석호 동성애설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앵도를 남자로 인식하는 사람은 현대에 거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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