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경으로 인해 양나라 많은 지역이 동위와 서위에 편입되었고 각지의 군웅들은 할거하여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에 황제가 된 소역(양원제)이 다스릴 수 있는 지역은 많지 않았다. 이보다 앞선 7달 전, 파촉의 친동생 무릉왕 소기가 스스로 칭제하여 세자 소원조를 황태자에 봉했고, 같은 해 8월엔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내려왔다. 태자 소원조는 처음에 후경에 소역이 패했다 거짓말을 해 아버지와 동으로 왔고, 서위가 철기 1만으로 병사가 거의 없는 성도를 포위하자 이번엔 강릉 일대를 함락시키자 제안한다. 그러나 병사들은 고향인 촉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말뿐인 포상만을 들어온 데다 군량마저도 떨어져 전투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이에 소역에게 강화를 요청했으나 소역은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양원제 승성 2년(553)..
양무제 태청 2년(548) 9월, 반란 준비를 치밀하게 준비하던 후경이 마침내 수양성에서 반기를 든다. 양나라에선 그전부터 후경의 반란 조짐이 있다는 상소가 꾸준히 올라왔었지만 간신 주이가 이를 모두 불태우거나 숨기는 바람에 양무제는 정작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느닷없는 후경의 반란 소식을 접하곤 매우 놀랐다. 후경은 먼저 회하 일대의 양아인에게 함께 거병할 것을 권했지만 양아인은 사자를 체포해 건강으로 보냈다. 후경은 이에 양아인 살해와 강서 일대의 할양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시 민월(복건 일대)을 치겠다고 위협했다. 그런데도 양무제는 비상식적인 답신을 보낸다. "빈궁한 집도 5명 또는 10명의 빈객을 맞아들여 사람들을 기쁘게 만든다. 짐에게 그대는 단 한 명의 빈객에 해당한다. 원망의 말을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