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나라 권력을 장악했던 후경은 자신도 연이어 패배하고 전선의 휘하 장수들의 패전 소식이 계속 전해오자 온종일 술을 마시며 간문제의 딸인 율양공주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당시 율양공주와 왕위는 서로를 후경 앞에서 헐뜯었다. 사태가 불리하게 흐르자 왕위는 간문제를 제거하고 속히 보위에 오를 것을 권했다. "자고로 새 왕조가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폐립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위세를 보여 줄 수 있고, 양나라에 대한 백성들의 헛된 기대를 끊을 수 있습니다." 이즈음, 전투에서 패해 포로로 붙잡힌 안지추는 양나라 건강으로 끌려와 당시의 참상을 이렇게 술회했다. "포로가 되어 옛 땅 건강에 돌아와 보니, 이곳은 오랑캐 놈에 짓밟혀 있다. 선조의 사당을 보니 폐허가 된 수도를 마음 아파하는 옛 서리의 시가 ..
태청 3년(549) 8월, 양나라 서강독 진패선이 후경에게 투항하려던 광주자사 원경중을 습격해 살해하고 정곡후 소발을 광주자사로 삼는다. 상동왕 소역의 세자 소방이 조카인 하동왕 소예에게 기습을 받아 살해당하자 왕승변과 포천에게 명해 소예를 공격한다. 신주자사 포천은 하동왕 소예에게 승리를 거듭하며 장사에서 그를 포위하자, 소예의 동생 악양왕 소절이 소역의 근거지인 강릉을 공격한다. 이에 양나라 소역은 왕승변의 계책을 받아들여 소절의 근거지인 양양을 공격하니 소절은 왕비와 세자를 서위에 인질로 보내며 구원을 청한다. 우문태는 양충에게 명해 형주 일대 15주의 군사를 총지휘하는 한편, 경릉을 지키며 소절을 위협하던 유중례와 대치하도록 명한다. 소릉왕 소륜은 소역이 조카인 소예, 소절이 서로 다투고 서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