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고환. 6진 장병을 얻고 태원왕 이주영 세력 제압 [78화]

(75화는 74화 상세 설명에 해당합니다)

유연 남침과 6진의 난

북위 효명제 정광 4년(523), 유연이 남침한다. 회황의 군민들은 양식이 없어 굶게 되자 도리어 위나라 관료들을 죽이며 반란을 일으킨다. 위진남북조 시대, 북위 조정도 어쩔 수 없이 공격을 감행한 유연과 함께 이들을 제압해 버린다. 그리곤 포로가 된 20만의 군민을 하북으로 이주시켰지만 두락주, 선우수례, 갈영 등이 반란을 일으키며 하북 일대는 아수라장이 돼버린다.


기후가 좋지 않은 척박한 땅에 천대와 멸시를 받던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포로의 신분으로 이주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유연도 내분으로 일족 일부가 북위로 망명한 상황이었기에 저런 일이 가능했었습니다)

이들을 제압한 것이 이주영이고 제압한 공로로 위대장(친위도독)에 임명되었으나, 이미 북위 조정은 하북 일대를 포함해 6진과 이주영을 제어할 힘을 크게 상실한 상태였다. 이후 이주영이 정권을 장악하고 살해될 때까지, 6진의 군민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고 제압당했다. 이전에 이주조는 고환에게 자문해 이런 말을 들었다.

"6진의 투항병들이 반란을 그치지 않고 있으나 이들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왕은 심복을 보내 이들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러고도 다시 반란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장령에게 물으십시오. 매번 병사들을 도륙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고환은 위진남북조 시대 북위 6진의 장병들을 얻는다.



이주조

조정의 대권을 장악했던 이주조는 이주영을 6진의 투항병을 총괄케 했고 야심에 가득 찼던 고환은 내심 크게 기뻐했다. 후경을 의심했던 고환처럼, 이주영도 고환의 재능 때문에 그를 계속 의심했었으며, 일족에게도 고환을 경계하라 일렀었다.


이주영 사후, 하루는 고환이 꾀를 내어 이주조의 의심을 풀게 하였다. 이주조가 몇몇 장군들이 군영에서 회의하는 중, 하북 일대로 출병할 장수로 누가 좋을지 물었다. 하발윤이 고환을 천거하자 고환은 크게 화를 내며 하발윤을 쳤다.

"태원왕(이주영)이 살아 있었을 때는 뭐라고 말해도 됐다. 그러나 지금 태원왕이 죽어 천하가 모두 이주조 왕의 명을 들으며 행하고 있다. 너는 도대체 어떤 자인가? 대왕이 말씀하기도 전에 주둥이를 놀리는 것인가?"

이주조는 크게 감동 받아 6진의 투항병 통솔을 고환에게 맡겼으나, 고환에겐 계획된 연출에 불과했다. 6진의 양식은 이전부터 크게 부족했기에 고환은 이주조의 허락을 얻어 산동으로 병력을 이끌고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고환이 이주영의 부인 북향장공주의 말 3백 필을 빼앗는다.

이주조는 고환이 반란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해 병력을 이끌고 양원에서 고환과 만난다. "머리가 없는" 이주조는 고환의 연극에 속아 그를 풀어주었고, 고환은 마침내 산동 일대에서 이주씨 일족의 장병들에게 핍박을 당하던 6진의 투항병들의 추대를 받아 거병한다. 동시에 북위 종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발해 태수 원랑을 황제로 삼는다.

"반기를 드는 게 부득이할지라도 과연 누구를 두목으로 삼을 것인가?"

"(고환을 추대하며) 생사를 모두 맡길 것입니다!"

광하 결전

북위 중흥 2년(532), 처음으로 광하에서 이주씨와 격돌해 이주조를 대파하자 반목하던 이주씨 일족이 합심해 20만 대군으로 한릉의 고환군을 포위한다. 고환의 군마는 2천 필이 안 됐고, 병사 역시 3만 명에 불과했다.


고환은 소와 나귀를 묶어 자기 군사들의 퇴로를 막아 필사의 결의를 다졌다.

"(고환) 나는 본래 너희와 함께 황실을 보필코자 했다. 그러나 지금 황제가 어디에 있는가?"

"(이주조) 영안왕(효장제의 즉위 전 봉호)이 태원왕(이주영)을 죽인 까닭에 복수한 것이다!"

"전에 우리는 함께 이주영의 휘하에 있었다. 네가 그에게 반란을 부추긴 사실을 나는 훤히 알고 있다. 하물며 제왕이 대신을 죽인 것을 두고 무슨 보복이란 말인가? 오늘 너와 나의 은의는 모두 끊어졌다!"

고환은 수적, 지리적으로 불리했지만, 좌군을 맡은 대장 고오조가 1천여의 기병으로 이주조의 본군 측면을 돌파했고, 곡률돈이 군대를 돌려 후방을 치자 이주조의 본진은 무너졌다. 고환이 승기를 잡았다. 승세를 몰아 추격전을 펼쳐 낙양까지 함락시키니 이주씨 일족은 사방으로 흩어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한다.



고환은 처음 옹립한 안정왕 원랑이 황통에서 거리가 먼 것을 깨닫고 평양왕 원수를 옹립하니 이가 효무제다.


이듬해인 영희 2년(533), 이주조가 옛 본거지인 수용군에서 패한 뒤 자진하니 위진남북조 시대에서 이주씨 일족의 위협은 사라졌다. 이전에 고환은 낙양 입성 후 위란근에게 절민제의 풍채를 알아보게 시켰다. 위란근은 정신과 풍채가 뛰어나니 이주씨가 옹립했다는 명분으로 제어하기 힘든 그를 폐하라 권했다.


낙양에서 이주씨 일족을 도륙했던 곡사춘은 고환의 권력이 너무 커지자 이에 불만을 품고 남양왕 원보거, 무위장군 원비, 산기시랑 왕사정, 하발악, 하발승 형제와 효무제에게 고환 제거를 권했다. 그러나 함께 맹서했던 사공 고건의 변심과 고건의 동생 고오조의 도주로 밀모 내용을 고환이 알게 된다. 


외전. 북위 효무제의 일생


나는 북위 황제 원수. 자는 효칙. 사후 효무제가 된다. (출제란 호칭이 있는데 쪽팔리니깐 효무제라 불러)




요즘 운동선수처럼 체격도 좋고 힘도 셌지만, 성격이 급했지.




나 때문에 위나라는 534년.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게 되었어.

근데, 이걸 내 탓만 하기엔 너무 억울하지. 영태후 할매가 원인 제공자라고.




어쨌든, 고환을 제거(?)하고 싶었지만 실패했어. 그래서 관중의 우문태에게 몸을 맡겼지.




근데 이런 holly shit ... 534년 12월 15일. 우문태는 내가 걸리적거린다며 나와 와이프를 독살했지.




나라가 반으로 쪼개진 것도 슬프지만, 마지막 목숨도 이리 슬프게 잃다니.




그래도 우문씨는 마음의 죄책감이 있는지 내 무덤만큼은 잘 꾸며줬지.

근데, 그것도 잠시였어. 내 후손들 나중에 작살나거든 ... 궁금하면 연재 글 끝까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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