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장악한 풍태후(문명태후) : 태무제 암살한 종애 [65화]

측근 종애가 암살한 북위 태무제측근 종애가 암살한 북위 태무제


탁발도가 남정에 나섰을 때 태자 탁발황이 감국으로 있었는데 휘하의 도성이 탁발도가 총애하는 태감인 종애와 반목했다. 종애는 탁발도가 돌아오자 도성 일당의 죄를 날조해 보고했고 탁발도는 이에 도성 일당을 죽인다. 탁발황은 이에 병을 얻어 곧 사망하고 종애는 탁발도가 추궁할까 두려운 나머지 늦은 밤, 영안궁에서 자고 있던 탁발도를 죽였다. 황망한 5호16국 시대 영웅의 죽음이다.


다음 날, 황태자에 이어 황제가 죽자 황제의 손자 탁발준이 보위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 상서좌복야 난연, 시중 화정, 시중 설제는 탁발도의 3남인 북위 진왕 탁발한을 옹립고자 했다. 그러나 종애가 미리 눈치채고 무장한 태감들로 이 세 사람을 죽인 뒤 탁발한 마저도 살해한다. 그리고 조서를 조작해 오왕 탁발여를 보위에 올리며 종애 자신은 풍익왕에 봉해진다.

재위 8개월 후인 승평 원년(452) 10월, 탁발여는 종애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해 권한을 천천히 삭탈코자 했으나 종애가 먼저 선수를 쳐 탁발여마저 살해한다. 두 명의 황제, 한 명의 태자, 한 명의 황실 종친, 그리고 조정 대신 3명이 환관 한 사람의 손에 살해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당시 금위군관 유니가 전중상서 원하에게 이 일을 알렸고 이들은 종애를 먼저 제거한 뒤 탁발준을 옹립했으니, 그가 문성제이다. 문성제는 즉위 후 3세의 탁발홍을 황태자로 삼고 생모 이귀인을 자진케 한다.


4년 뒤인 태안 2년(456)북연의 황제 풍홍의 손녀인 풍씨를 황후로 맞는다. 이후 풍태후(북위 문명태후)는 북위 헌문제 탁발홍을 독살하고 헌문제의 아들 효문제를 직접 양육한다.


안타깝게도 문성제 탁발준은 465년, 26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12세의 헌문제 탁발홍이 보위를 이었으며 풍씨는 태후가 되었다. 당시 북위 거기대장군 을혼이 어지러운 틈을 타 전횡했으나 풍태후가 을혼을 제거하고 수렴청정을 시작했다.



풍태후(문명태후)의 수렴 정치를 보좌한 중신으로는 동양왕 탁발비, 조군왕 목량, 농서왕 원하, 안성왕 만안국 등 호족의 유력자를 비롯한 한족의 고윤, 고여, 총신인 이부상서 왕예, 시중 왕거, 상서좌복야 장우, 상서 포의, 이부상서 왕우, 비서령 이충 등이 있다.


영민했던 헌문제 탁발홍은 권력을 두고 풍태후와 계속해서 마찰을 빚는다.


풍태후의 측근인 이혁의 동생 이부가 뇌물을 받았던 일이 드러나자 헌문제는 그 집안을 도륙냈다. 이후 숙부 경조왕 탁발자추에게 보위를 넘기려고 시도하다, 대신들의 만료로 6세의 어린 황태자 탁발굉에게 선양하였다.


이가 바로 유명한 북위의 효문제이다.

비극으로 끝난 위진남북조 시대 권력 다툼비극으로 끝난 위진남북조 시대 권력 다툼


당시 신하들과 북위 헌문제가 주고받았던 내용은 이렇다. 탁발자추의 동생 탁발운이 이렇게 말했다.


"첫째로 황제 탁발홍은 나라를 융성하고 태평하게 하고 사해를 덮어 군림했으니, 위로는 종묘를 어길 수 없고 아래로는 많은 백성을 버릴 수 없다.


둘째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위하는 것이 오래된 관습이니 반드시 '먼지 나는 일'을 버리려고 한다면 황태자가 마땅히 정통을 계승해야 한다.


셋째로 무릇 천하라는 것은 조종의 천하인데, 황제가 만약 방계의 친족에게 고쳐서 전수한다면 아마도 옛 성인들의 뜻을 그릇되게 하고, 간사하고 난리를 일으키려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될 수 있다.


넷째로 이렇게 되면 이것이 바로 화와 복의 근원이 되니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원하源賀가 이에 동조하며 말을 했다.


"폐하(탁발홍)께서는 지금 황숙에게 보위를 선양하려고 하는데, 신은 소목이 문란하여 후세에는 반드시 역적이 들고일어났다는 비난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임성왕(탁발운)의 말을 깊이 생각하여 주십시오."



동양공 탁발비도 말을 했다.


"황태자가 비록 성덕이 일찍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 어립니다. 폐하께서는 춘추로 보아 넉넉하시고, 처음으로 황제의 업무를 돌아보시는데, 어찌하여 오직 홀로의 선행만을 높이려 하시고 천하 사람들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니 종묘는 어찌할 것이며, 많은 백성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상서 육발도 말을 했다.


"폐하께서 만약 태자를 버리시고 제왕들로 교체할 것을 논의한다면, 신은 청컨대 목을 베고 죽을지언정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습니다."

이러자 탁발홍은 이런 말을 한다.


"그렇다면 태자를 세우고 여러 공이 그를 보필한다면 어찌 안 될 것이 있겠소? 반드시 나의 아들을 보필할 수 있을 것이오."


"짐은 그윽한 옛날을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뜻은 욕심이 없고 깨끗하여 이에 황태자 탁발굉에게 명령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그럼에도 북위 탁발홍은 선양 뒤에도 권력을 잡고 풍태후와 마찰을 빚었다.



연흥 6년(476) 8월, 풍태후가 술에 독을 타 헌문제 탁발홍을 살해한다. 풍태후는 태황태후가 되어 국가 대정을 장악했고 보위에 오른 효문제 탁발굉은 12세에 불과했다.



북위 효문제 탁발굉은 황제가 되어서도 풍태후(문명태후)한테 체벌 당하며 성장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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