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 시대 모순 - 북위 한화정책 남제 은행 [68화]

북위 효문제 모순 - 한화정책


효문제 태화 19년(495)엔 제나라 공격을 감행했으나 무덥고 습한 날씨에 군수품 조달이 늦어지면 소득 없이 귀환한다.

이해 7월, 북위는 5호 16국 국가들이 행해오던 호한분치를 버리고 한화漢化를 공식적으로 천명한다. 물물교환 방식을 버리고 태화오수전을 주조해 화폐 개혁을 시도했고, 낙양에 국자감, 태학, 사문소학을 두었다.


"오늘 짐(효문제 탁발굉)은 선비어를 포함한 모든 북방어를 금지하고 한어로 통일해 쓰기로 했다. 30세 이상의 관원은 이미 오랜 습관이 된 까닭에 서서히 바꾸는 것을 윤허하나 조정에서 오랫동안 봉직한 30세 이하의 관원은 선비어로 말하는 것을 금한다. 이를 어길 경우 곧바로 강등과 면직 조처를 취할 것이다."


북위 태화 20년(496), 탁발씨를 원씨元로 바꾸는 등 선비족의 성씨를 일제히 바꿨다. 그리고 범양 노민, 청하 최종백, 형양 정희, 태원 왕경의 4대 성씨 딸들을 받아들여 후궁으로 삼으며 효문제도 동생들에게도 한족 대성의 딸들과 새로이 혼인할 것을 명령한다.


이에 선비족 8대 성은 한족 4대 성과 함께 최고의 성씨가 되었다.


  1. 목씨(穆, 구목릉丘穆陵)
  2. 육씨(六, 보륙고步六孤)
  3. 하씨(賀, 하뢰賀賴)
  4. 유씨(劉, 독고獨孤)
  5. 누씨(樓, 하루賀樓)
  6. 우씨(于, 홀뉴우忽忸于)
  7. 해씨(奚, 흘해紇奚)
  8. 울씨(尉, 울지尉遲)


이후 문무 관직을 새롭게 정비하고 율령을 개정해 잔인한 거열형과 요참 등의 혹형을 없애고, 연좌제 등도 없앴다.



이후엔 북위 풍태후 시절 시행된 균전제가 자리를 잡아가며 국고도 충실해졌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태자 원순은 이런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동궁에선 항상 호복을 입었다.

태화 20년(496) 10월엔 평성으로 가고자 했다가 붙잡혀 폐위되고 이후 모반을 꾀하다 사사된다. 선비족 훈신인 목진과 육예 등도 한화 정책에 반대해 양평왕 원이를 옹립코자 했으나 제압당했다.


그래도 가장 큰 문제는 북위 6진이었다. 상무 정신을 버리고 농업 국가로 전환되며 무장들에 대한 처우가 낮아진 것이다. 6진의 선비족 장병들은 국인國人이란 숭고한 지위를 점차 잃어가며 불만이 계속 쌓이다 결국 크게 터지고야 만다. 위진남북조 시대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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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 제나라 모순 - 은행

전통적인 문인 귀족들이 군권을 잃고, 가산을 잃고, 관직을 잃었다. 제나라에서 이들을 대체한 건 미천한 가문 출신의 군인과 소수의 문인이었다. 이런 시기에 일어난 일화 두 가지를 살펴보자.


1. 사교 謝僑

라고 하는 사람은 원래 제일류의 고귀한 가문 사람이었으나, 어느 날 쌀이 떨어졌다. 그의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한서漢書를 저당 잡히고 돈을 빌립시다."


"설사 굶어 죽는다 해도 책을 밥값으로 쓰겠느냐."

2. 세설신어 5편 방정方正편, 58화

왕문도(왕탄지)가 환공(환온,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인물)의 장사였을 때, 환공은 아들을 위해 왕문도의 딸에게 청혼했다. 왕문도는 아버지 왕남전과 의논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왕남전은 매우 노하여 왕문도에게 말했다.


"네가 이처럼 어리석은 줄 몰랐다. 군인(환온) 따위에게 어찌 딸을 주겠느냐?"


왕문도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저의 집에서는 이미 혼처를 정해두었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알겠네. 이 일은 그대의 춘부장(남의 아버지를 지칭)이 승낙하지 않았음이 분명해."



위의 일화와 반대되는 세설신어 일화도 하나 살펴보자.


당시 전통적인 문인 귀족들은 자신 가문의 위대함을 겉으로 노골적으로 표시하였는데 이는 위진남북조 시대 집안의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왕랑의 아내였던 명문 사씨의 한 여성은 남편의 가문을 무시하며 이같이 말했다.


"(사안이 말하길) 왕랑은 왕의지의 아들로서 인품도 나쁘지 않다.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편치 않으냐?"


"우리 사씨네 일문에는 숙부에 아대阿大(사안?), 중랑中郞(사만?)님이 계시고, 종형제로는 사봉호(사소?), 사알말(사연?)님 등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왕랑과 같은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랬던 남조 제나라 전통 귀족들은 의식과 생활에서 점차 많은 것을 잃어갔다. 권력자에게 아부하여 신임을 얻은 무리 또한 미천한 가문 출신들이었다. 미천한 출신의 이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가 강해 야심많은 황족들을 부추기기도 했으며, 권력 강화를 위해 군권을 회수할 필요성을 황제에게 간언하기도 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비정상적인 시대에 일족 도륙이라는 비정상적인 사건이 계속 반복되었다.


당시엔 은행恩倖이라 불리는 "(돈도 많고) 권력자에게 아부하여 신임을 얻은 무리"가 활개를 쳤다. 



"인편이 있으면 연락해주세요,

격해지는 마음은 더할 뿐,

우물에 가라앉은 두레박과 같은,

날개 잘린 참새 흉내는 싫어요."


어용 상인들의 제나라 궁중과 정부기관 출입이 빈번해지며 궁중에까지 위와 같은 유행가가 흘러들어 갔다. 


저 노래는 떠나간 상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연가이다. 상권과 부를 축적한 이들은 돈을 빌미로 권력을 얻으려 했고 자연스레 그러한 상인들은 은행이 되었다.


가난한 귀족들이 부유한 상인들보다 나은 게 없는 시절이 대두한 것으로 강남의 농업 생산력 증대와 화폐유통이 증가하며 상인들의 조정 진입은 더 빈번해졌다. "돈이 곧 신이다!" 서진 말기와 같은 혼란한 시대가 남조의 유송 - 남제에 걸쳐 벌어졌으니 비정상적인 시대의 비정상적인 사건들은 그 시대, 위진남북조 시대만의 특성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북조 북위, 남조 제나라엔 커다란 모순이 있었다. 이 모순을 기점으로 두 나라는 각기 다른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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