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문소황후 일가, 발해 고씨인가 고구려 고씨인가?

북위 문소황후 일가, 발해 고씨인가 고구려 고씨인가?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북위 문소황후(고조용)의 5대조인 고고高顧, 고무高撫 형제가 영가의난에 고구려로 피난한다. 그 후 북위 헌문제獻文帝 때에 고무의 손자 고잠高潛은 돌아가 요동에 거하게 되고, 고고의 4세손인 고양, 고승신도 효문제 때에 북위로 들어간다. 고양의 딸과 손녀는 북위의 황후가 되고, 고양의 아들 고조와 손자 고맹은 부마가 된다.


고구려 후손 문소황후 북위[북위 선비족 고구려] 역사 관계와 후손


고조는 당시 상서령의 지위에 있으며 조야의 전권을 행사한다. 고고, 고무의 친족은 여러 대에 걸쳐 고구려에 살았다. 그중 일부는 북위로 갔으며 일부는 고구려에 남게 되었다.


이 기록은 대다수의 학자들이 위서나 북사 속의 고구려 관련 자료를 인용할 때 흔히 이용하는 자료이다. 이 기록에 근거하여 일반적으로 북위 문소황후 일가를 고구려 출신의 인물들이라고 간주한다. 필자(민경삼 백석문화대학)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다만 서병국은 북위 문소황후 집안의 중원 진출에 대해 발해 고씨가 영가의 난에 안정을 위하여 잠시 고구려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가 중원이 안정을 되찾게 되자 이역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되돌아간 '발해 고씨'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북조 시기 중원에서 활동한 고구려 고씨의 예로 고림高琳 일가를 들고 있다.


고림 일가는 6대조인 고흠이 모용외에 의하여 인질로 끌려가 모용연의 사환仕宦을 지내다가, 5대조인 고종이 다시 북위로 전향하여 중원에 진출하게 된 고구려 고씨라 할 수 있다. 북위에서는 고종에게 제일영민추장第一領民酋長을 제수하고 우진씨羽眞氏란 성씨를 하사한다. 고종의 손자 고명과 증손 고천도 북위에서 현달한다. 고천의 아들이 바로 고림이다.


북위 문소황후 일가, 발해 고씨인가 고구려 고씨인가[북위 선비족 고구려] 역사 관계와 후손


리핑은 문소황후가에 대해 본래 '발해 고씨'가 아닌 '고구려 고씨'라 주장하였다. 위서의 행간에 담긴 의미로 해석하여 북위 문소황후가를 발해 고씨로 기록한 위서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 즉 "문소고황후의 5대조는 진나라 말기 영가의난에 고구려로 피난한 고고高顧"라고 기록한 위서의 내용을 부정하고 고구려 출신의 고씨라고 주장하였다. 그 근거로 여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 번째, 서진 영가 연간 고가의 동천으로부터 북위 효문제 초기 고가가 고구려에서 다시 요서 지역으로 서천하기까지의 기간은 160년이 넘고, 당시 조혼이 일반적인 사회적 풍토였기에 고고가 효문소황후 고씨의 5대 선조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위 효문제 문소황후 고조용[북위 선비족 고구려] 역사 관계와 후손


두 번째, 효문소왕후고씨전과 고조전에 문소황후의 고조, 증조, 조부 3대에 관한 성명이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위서를 지은 위수는 북위 문소황후의 자손들과 동시대인으로 문소황후 일가의 5대조의 이름을 알았다면, 가까운 조상인 3대의 이름과 사적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문소황후 가계에 허구적인 요소가 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세 번째, 문소황후 가계의 기록에 허구적인 면이 있다면 고조에 의하여 단서가 제공되고 위수는 단지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 근거로 고조전에 나오는 "스스로 본래 발해수인이라 하였다"의 "스스로"란 표현은 위수가 결코 고가가 발해 수인蓚人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네 번째, 문소황후 일가의 출신은 위서의 고조전에 수록되어 있는 제고현전의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황후의 형제 고현은 고구려대중정을 역임하였다. 대중정은 일반적으로 현지에서 추천된 현임 관원이 담당하는 것으로 중정을 담당한 관원의 관적은 반드시 그 중정의 지역과 일치해야 한다. 따라서 이 기록은 북위 문소황후 일가가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다섯 번째, 문소황후의 부계 성인 고씨와 모계 성인 개씨蓋氏는 모두 고구려의 저명한 성씨였으므로, 이것도 하나의 증거가 된다.


고구려 고씨 북위 영가의난[북위 선비족 고구려] 역사 관계와 후손


여섯 번째, 효문소황후고씨전에 문소황후가 어려서 꿈에 본 태양과 위서, 고구려전에 기록된 주몽의 탄생설화의 유사성이 문소황후 일가가 고구려 출신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고곤묘지명에 비추어 보면 문소황후의 모계 성은 개씨가 아니라 여남汝南 원씨袁氏이고, 북위 문소황후의 꿈 이야기가 주몽의 탄생설화를 고구려 계통의 공통분모로 삼기에는 다소 견강부회인 측면이 있으므로 위의 가설들 중 일부는 적당하지 않다.


필자는 리핑의 가설에 전반적으로 타당성이 충분하므로 동의한다. 또한 사서의 표면적인 기록에 따라 문소황후 일가가 영가의난에 고구려로 피난한 고고의 후예라는 입장을 견지할지라도 고구려에서 160여 년간 체류하며 생활했다는 점에 비추어 혈통과 정체성 면에서 중원의 발해 고씨가 아닌 고구려 고씨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북위 문소황후 고조용 가계도[북위 선비족 고구려] 역사 관계와 후손


따라서 그 출신이 본래부터 고구려였다고 가정하든, 영가의난에 고구려로 피난한 고고의 후예라고 주장하든 두 경우 모두 결론은 고구려 계통의 유민이라는 것이다. 그림은 오늘날까지 발굴되어 보고된 비문, 묘지명, 사서의 기록을 근거로 필자가 구성한 문소황후 가계도이다.


북위 문소황후 일가, 발해 고씨인가 고구려 고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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