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령(톄링) 주은래(저우언라이) 가족 전시관, 할아버지, 아버지 2

철령(톄링) 주은래(저우언라이) 가족 전시관, 할아버지, 아버지 2


중국 철령시(톄링)엔 중국 공산당 2인자였던 저우언라이 기념관이 있습니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이곳엔 저우언라이와 관련된 여러 사진,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사진이라 즐겁게 재밌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저우언라이 가족 특별 전시회[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이 전시관은 중국 요녕성 톄링시(철령)에 있는 은풍서원, 저우언라이(주은래) 기념관 안에 있습니다. 기념 전시관은 주제별로 나뉘어 있고 총 4개가 있습니다.


저는 중국 역사 전시관은 처음 가봤는데, 일반적으로 왼쪽부터 돌아야 합니다. 제 경우엔 가는 곳마다 왼쪽으로 도는 게 일반적이더라고요. 심양고궁에서도 그랬고, 톄링(철령) 주은래 기념관에서도 그랬네요. 사진 찍을 땐 오른쪽으로 돌아서 연도가 거꾸로 ... 힝 ...


주은래 집안 내력[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주은래 집안 가풍에 대한 사진전입니다. 생전에 자식이 없어서 그런가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고 사람들에겐 서른 전에 무조건 결혼해서 애 낳으라고 강조했다네요.

그래서 현대 중국에 인구가 많은 건가?


주은래 공산당 혁명 투쟁[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저우언라이는 중국 공산당 1세대로 마오쩌둥에 이은 2인자였습니다. 마오쩌둥보다 저우언라이를 존경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선 엄청난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도운 우리나라 원수이기도 합니다. 압록강까지 연합군이 치고 올라갔을 때, 미리 준비해둔 28만의 중국 병사도 주은래가 준비했던 겁니다. 아무튼, 한국전쟁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참 미운 사람입니다.


김일성에겐 미군이 참전하면 전선이 밀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 조언했죠. 김일성이 듣지 않자,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압록강에 무려 28만의 병사를 배치합니다. 이 병사들이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의 14후퇴를 유발한 병력이죠.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칭찬[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중국 공산당 1세대로 전지적인 입지를 세운 사람이라 덩샤오핑도 그를 존경해 마다하지 않았죠. 큰 변화가 생기는 시대에 그가 생활 품격과 행동들은 중국 인민들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향을 미쳤다 ... 뭐 그런 뜻이라네요. 제 친구가 은유적으로 이해하랍니다.


저우언라이 가족들 사진 단체 1996년[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1959년과 1961년에 찍은 저우언라이 가족사진입니다. 저우언라이는 5형제로 모두 해외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다들 수재였습니다.


1965년 저우언라이 아내 딸[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저우언라이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과체중이었던 아이를 낳다가 몸을 상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죠. 대신에 그는 모든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로 했다네요. 그래서 교육과 육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답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양반 팔방미인이라 인천상륙작전까지 예상할 정도로 똑똑했어요. 천재들은 관심 분야도 넓은 데 관심 가졌다 하면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하잖아요. 저우언라이도 그런 유형입니다.


저우언라이 1956년 인민의 행복[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저우언라이 기념관에서는 그가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학생들과 찍은 사진도 많았죠. 아마도 그가 학생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으므로 후대에도 그런 사진이 많이 주목받나 봅니다. 스스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죠.


저우언라이 인민 활동 1964년[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주은래 가풍 1964년 중국 모범[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주은래는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집무실도 낡은 가구와 허름한 장식이 전부였다죠.


주은래 부부가 쓰던 사무실 20세기[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아래는 저우언라이와 아내 덩잉차오 부부의 사진입니다. 국내 신문 기사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사진입니다.


주은래 1950년 아내와 함께[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대게 저우언라이를 검색하면 주로 나오는 사진입니다. 중국에서도 이 사진이 유명한가 봐요. 부부는 평생을 서로 아끼고 청렴하게 살았으며,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사치를 부린 적이 없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하던 1930년대는 유럽 마피아, 일본 조폭에 하여간에 세상 살기 참 힘든 시기였죠. 상해 임시정부를 둔 우리 조상님들도 백범일지를 보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우언라이는 그런 광저우 일대에서 결혼했습니다.


기념관 정중앙에는 소년 주은래 동상도 서 있습니다.


소년 주은래 동상[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사실 주은래가 철령에 머문 시간은 고작 6개월입니다. 그래도 그걸 어떻게든 기념하려고 이런 전시관을 짓는 걸 보면, 저우언라이를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 느껴집니다.


주은래 일가와 그의 형제는 중국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가풍을 지닌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1938년 주은래 부모님 청나라 황족[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주은래의 아버지와 어머니 양씨杨씨도 훌륭한 아들을 키운 덕택에 위인으로 칭송받네요. 근데, 저우언라이 아버지는 부모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애들 내팽개치고 지혼자 살겠다며 다른 동네로 도망간 사람이라 ... 먼저 세상을 뜬 주은래 어머니가 자기 남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주은래 동생 할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맨 위는 주은래 8번째 숙모婶母 양씨杨(1877-1956)입니다. 주은래를 9~12살까지 키웠습니다.


가운데 왼쪽은 4번째 숙부 주이갱貽赓(1872-1933)으로 심양에서 저우언라이를 돌봤습니다.

가운데 오른쪽은 4번째 숙모 양씨杨(1891-1944)입니다. 남편과 심양에서 주은래를 돌봤습니다.


아래 왼쪽은 주은보溥(1899-1945)입니다. 저우언라이의 둘째 동생입니다.

아래 오른쪽은 주은수寿(1904-1985)입니다. 저우언라이의 셋째 동생입니다.


주은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왼쪽 위는 주은래 아버지 주이능(1874-1942), 오른쪽 위는 주은래 어머니 만씨(1877-1907)입니다.


왼쪽 아래는 주이감貽淦(1878-1898)으로 저우언라이의 의붓아버지(嗣父 = 继父)입니다. 사실 그는 작은아버지지만 주은래의 친부 주이능은 무능하여 집안 식구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없던 작은아버지에게 양자로 입적한 게 주은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오른쪽은 주은래의 양어머니 천씨입니다. 문장과 그림에 뛰어나 어린 주은래의 스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주은래 증조 할아버지가 쓴 책[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주은래의 고조 할아버지 주원당元棠이 지은 책으로, 22세에 이미 134수의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고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 모두 뛰어난데 이상하게 저우언라이 아버지만 좀 ... 그랬어요.


주은래 어린 시절 사진 1939년[중국 여행, 박물관 유적 볼거리]


저우언라이 집안은 대대로 관직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번번이 낙방하다가 나중엔 아들들 버리고 다른 동네로 튀었다네요. 참으로 무책임한 사람에게서 공산당 2인자가 나왔다니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흔히들 "개가 호랑이를 낳았다"라고 표현하죠.


주은래 할아버지들[중국 관광] 공산당 역사 유적지


왼쪽 위는 고조 할아버지 주원당元棠, 오른쪽 위는 증조 할아버지 주초수樵水, 왼쪽 아래는 할아버지 주반룡攀龙, 오른쪽 아래는 둘째 할아버지 주준앙骏昂입니다.


철령(톄링) 주은래(저우언라이) 가족 전시관, 할아버지, 아버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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