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 총리의 외교 [철령 기념관] 등소평, 모택동, 닉슨 7

저우언라이 인물 풍경화[중국 근현대사 존경하는 인물, 말년에 방광암으로 고생한 공산당 총리]


저우언라이 총리의 외교 [철령 기념관] 등소평, 모택동, 닉슨 7


중국 철령(톄링)에 있는 주은래 기념관 은강서원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주은래는 중국의 초대 총리로 마오쩌둥(모택동)과 말년에는 홍위병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았으나, 어쨌든 둘은 중국 공산당의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미국 출발 저우언라이 총리[중국 지도자, 초대 총리, 공산당 역사를 만든 인물]


주은래(저우언라이 총리)는 외교에도 뛰어난 성과를 냈습니다. 미국, 영국, 인도, 중동, 일본, 동남아시아 등 활발한 외교를 펼치며 중국의 이익을 최대한 끌어냈죠. 특히, 몽골, 신강 문제로 러시아와 충돌하자 영국을 한 달간 방문하며 국제적인 우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외교관으로 훌륭 중국 공산당 저우언라이[중국 근현대사 존경하는 인물, 말년에 방광암으로 고생한 공산당 총리]

진짜 좋은 외교의 본보기가 될만합니다. 비록, 공산당 총리 저우언라이지만 좋은 건 배워야죠. 북한 외교에 올인하며, 유럽, 남미, 동남아(공산국가 베트남 빼고), 중동엔 관심도 없는 우리나라 대통령과는 많이 다르네요. 저우언라이 총리가 괜히 공산당 위인은 아닌가 봅니다.


인도 아시아 동남아시아 외교관 주은래[중국 지도자, 초대 총리, 공산당 역사를 만든 인물]


주은래 아시아 회의 중국[중국 근현대사 존경하는 인물, 말년에 방광암으로 고생한 공산당 총리]


1955년, 저우언라이 총리가 중국 정부 대표단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1973년 주은래 프랑스 대통령 회담[중국 지도자, 초대 총리, 공산당 역사를 만든 인물]

1972년 프랑스(法國) 대통령(总统) 특사 에드가 포레(富尔)와 회담. 닉슨과 마오쩌둥 회담은 당시 큰 사건이었습니다. 1971년 미국과 중국 탁구 경기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저우언라이 등 외교관들이 물밑 작업을 하여 두 나라 정상이 회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냉전은 종료되었습니다.


1971년 키신저 미국 대통령 안보 보좌관[중국 근현대사 존경하는 인물, 말년에 방광암으로 고생한 공산당 총리]


1971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비밀 특사 헨리 키신저(亨利 基辛格)를 만나는 주은래. 키신저는 당시 국가안보 담당 보좌관으로 핑퐁외교(위에 설명)를 성공하기 위해 파키스탄 - 인도를 거쳐 중국에 입국합니다. 냉전을 종료하자는 뜻이 같았던 두 사람은 우호를 확인하며 결국 최선의 결과(마오쩌둥 닉슨 회담)를 이끌어 냅니다.


주은래 영국 몽골 러시아 협상[중국 지도자, 초대 총리, 공산당 역사를 만든 인물]


1960년 저우언라이 총리, 영국의 버나드로 몽고메리(蒙哥马利 勋爵) 훈작과 만남. 마오쩌둥은 산업혁명으로 경제가 성장한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대약진 운동을 시작하지만 ... 실패합니다.


7년 안에 영국을 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 - 마오쩌둥


이를 위해 1960년 저우언라이가 영국을 방문하여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 받길 원했고, 영국은 이에 흔쾌히 수락합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농업 집단화, 제사해 운동(참새 때려잡았다가 해충으로 사람 굶어 죽은 그것), 공포 운동 등을 알려주진 않았을 겁니다. 의욕만 앞서고 준비되지 않은 공산당 간부들이 사이비 정책 추진했다가 망한 것이죠. 요즘의 소득주도성장이란 사이비 정책도 생각나네요.


주은래 일본 수상 다나카 가쿠에이[중국 근현대사 존경하는 인물, 말년에 방광암으로 고생한 공산당 총리]


1972년 9월 29일 중국 일본 정부 연합 협상 베이징[중국 지도자, 초대 총리, 공산당 역사를 만든 인물]

1972년 일본 수상 다나카 가쿠에이田中 角栄를 만나는 저우언라이 총리. 1970년대엔 중국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이 냉전을 끝냈고, 일본과도 우호를 가지려 했습니다. 주은래와 다나카 가쿠에이의 만남으로 두 나라는 중일연합성명을 체결하여 역시,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알립니다. 속빈 강정 가지고 외교적 성과라 자랑하는 간경화인지 강경화인지는 주은래한테 배울 게 많습니다.


이 회담 결과로 1972년 9월 29일, 베이징에서 연합성명을 발표하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끝났음을 전 세계에 알립니다. ICBM 겨누는 놈들 보고 "쟤네 우리랑 친해" 이러는 놈들은 제정신인지 모르겠네요. 이때 일본과 중국은 대외적으로 상호 비방을 멈췄고, 오히려 교류를 늘렸습니다. ... 얼마 전 북한놈들이 우리나라 욕했죠 ... 욕먹어도 좋다는 건 호구 인증인가?


중국 공산당 진의 추도식 주은래[중국 근현대사 존경하는 인물, 말년에 방광암으로 고생한 공산당 총리]


1972년 1월, 천이(진의 陈毅)의 추모식에 참석한 저우언라이. 진의는 주은래처럼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1941년 신사군 총사령관을 역임하고 국공내전 이후엔 상해 시장, 외교 부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저우언라이 마오쩌둥 1974년 마지막 악수[중국 지도자, 초대 총리, 공산당 역사를 만든 인물]


1974년 5월 30일,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이란 두 위인이 마지막으로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주은래는 1976년 1월 8일 사망했고, 모택동은 1976년 9월 9일 사망합니다.


1974년 당시엔 저우언라이가 77세, 마오쩌둥이 82세였습니다. 1974년엔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저우언라이 총리와 마오쩌둥 사이가 조금 소원해졌지만, 둘은 공산당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했습니다.


저우언라이 중국 합동 특별 대표단[중국 근현대사 존경하는 인물, 말년에 방광암으로 고생한 공산당 총리]


질병으로 투병 중인 주은래가 제6차 특별회의에 중국 대표로 출석하는 덩샤오핑(등소평 邓小平)을 환송하는 사진. 1974년 4월, 경제 개발을 주제로 한 유엔 총회에는 덩샤오핑이 저우언라이를 대신해 참석합니다. 고령에 병까지 얻은 주은래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죠.


주은래는 자신이 방광암에 걸린 것을 인지하고 난 뒤로는 많은 업무를 덩샤오핑에게 넘겼습니다.


저우언라이 총리의 외교 [철령 기념관] 등소평, 모택동, 닉슨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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