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02. 팔왕의난을 유발한 서진 황제 사마충 [사마유 억울함]

위진남북조02. 팔왕의난을 유발한 서진 황제 사마충 [사마유 억울함]


귀가 얇았던 진무제 사마염의 실수는 크게 아래와 같다. 이 실수로 위진남북조 시대(팔왕의난)가 시작되었다.


1. 사마염은, 부부의 금실이 좋아 양황후의 말만 듣고 사마충을 후계자로 선택했으며, 가남풍을 내치지 않았다.

2. 사마염은, 귀가 얇아 가남풍을 맞아들이고 사마충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애써 무시했다.

3. 사마염은, 사마휼에게 큰 기대를 했는데, 그 이유로 가남풍이 사마휼을 타락하게 만든 뒤 죽였다.

4. 사마염은, 훗날의 정쟁을 예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마충이 황제가 되면 사마염 생전처럼 가씨와 양씨는 손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드라마 삼국지 속 사마염[동양 중국 역사] 드라마 삼국지 속 사마염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동생 사마유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일이다. 총명하며 가뭄이 들면 스스로 반찬을 줄이며 구휼에 앞장서던 사마유를 조정 중신들이 모함했다. 천성이 곧고 바르며 당시 명망도 높던 그를 황제인 사마염은 귀가 얇아서 억울하게 죽도록 만들었다. 만약 사마유가 살아남아 사마충을 보필했다면 위진남북조 시대가 시작되었을까?


이 이야기는 팔왕의난 이후, 동진에서도 화자가 되었는데, 진무제가 제왕 사마유를 밖으로 내보낸 것과 혜제 사마충을 세운 것은 어느 쪽이 더 심한 실책이었는지를 논했다. 당시 대부분 사람은 혜제를 세운 것이 더 중대한 실책이었다고 했다.

사마휼 논란


사마휼에 대해선 조금 논란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사마충의 아들이 아니라 형제라는 것이죠. 그나마 똑똑하고 나이도 제법 부자 관계를 맺기에 적당했던 사마휼을 사마충의 아들로 삼은 건 아닐까...라는 것이죠. 이런저런 자료를 봐도 딱히 이를 뒷받침할만한 것은 못 봤습니다.


위진남북조를 유발한 팔왕의난


팔왕의난에 참여한 이들의 구성은 이렇다.


사마염의 아들 3

사마염의 조카 1

사마염의 숙부 2

사마염의 당숙 1


아들, 조카, 숙부, 조부(사마월은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규의 손자)까지 가담한 유례가 없는 대혼전이었다. 거기에 지역 군벌과 가남풍까지 합치면 팔왕의난은 단순히 팔왕의난으로만 이해할 문제가 아니다.


양준. 진무제의 양황후 친아버지[동양 중국 역사] 양준. 진무제의 양황후 친아버지


한나라 경제 시기의 오초칠국의 난처럼 결과적으로 두 세력의 전쟁이라면 모를까, 여덟 명의 왕들이 토너먼트 하듯이 하나둘 도전과 실패를 통해 통일 왕조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대사건이라 딱히 어느 왕조의 어느 사건과 비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서진의 팔왕의난은 특이하며 치명적인 대사건(위진남북조 시대를 개막)으로, 팔왕 중 가장 먼저 목숨을 잃은 건 여남왕 사마량과 초왕 사마위이다.


이번 편과 다음 편의 주인공 역시 사마량(사마의의 5남)과 사마위(사마염의 5남)가 되겠다.


사마유 대신, 사마충을 일찌감치 후계자로 삼은 진 무제 사마염의 병세가 깊어질 무렵 양황후의 부친인 시중 양준이 옥새 보유를 빌미로 황제처럼 권력을 휘둘렀다. 내궁의 시위를 자기 사람으로 교체했고 친왕과 대신들의 입궁은 허락했으나 황제의 병문안을 막아서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사마염이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주변의 시위들이 모두 바뀐 것을 보고 양준을 의심해서일까?


경성에 머물던 숙부 여남왕 사마량을 불러들여 양준과 정사를 함께 돌보도록 했다. 그러나 이 조서는 곧 사마유를 모함했던 양준의 손에 들어가 사라졌으며 얼마 후 사마염은 죽음을 맞이한다. 사마충은 곧 황제의 위에 오르고 흉포한 가남풍은 황후가 되었으며 사마량이 두려웠던 양준은 장군들을 선동해 조금씩 황실 내부에서 내란의 싹을 틔워나갔다. 이 사건이야말로 위진남북조 시대를 개막한 팔왕의난 시발점이다.


이것도 모자라 양준은 황후인 가남풍의 심기를 건드리고야 만다. 조정 대소사에 모두 관여하길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으며, 사사로이 재물을 모으고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권력에 방해가 되는 사마씨 제후들을 수도인 낙양에서 쫓아내려 혈안이었다. 그러던 양준이 기어코 가남풍의 측근들에게도 손을 대니, 사마충의 부인 가남풍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팔왕의난은 가남풍이 움직인 것으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음, 사마유가 있었더라면 ...)


여남왕 사마량. 사마의의 5남[동양 중국 역사] 여남왕 사마량. 사마의의 5남


양준에게 모함을 받던 사마량은 집안싸움을 피하고자 임지인 허창으로 서둘러 떠났고, 양준은 자신의 신망이 낮은 것을 잘 알기에 작위와 상을 마구 나눠주었으나, 이런 헤픈 행동 때문에 되려 조정의 신망까지 깎아 먹기에 이른다. 양준은 생질 단광, 심복 장소에게 군국 기밀과 황실 금군을 주관토록 명하며 중대한 조명은 자신과 양태후의 재가를 거치도록 하였다. 이에 가남풍은 여남왕 사마량, 초왕 사마위와 은밀히 연락하며 양준 제거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사마량은 황후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사마위는 단번에 승낙하고 양준을 제거하기 위해 황제의 알현을 이유로 경성에 입성한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개막한 팔왕의난이 시작되려 한다.


ps. 노포는 전신론에서 서진 말기의 세태를 비꼬며 이렇게 말했다.


"돈이 매사에 위주가 되니 마치 형제처럼 친하다. 자字는 동전의 가운데에 사각형 구멍이 뚫린 까닭에 공방孔方이라고 했다. 덕이 없는데도 존귀하고, 세력이 없어도 따르는 자가 많다. 금으로 만든 문을 밀치고 궁 안으로 들어가니 위험한 것도 안전하게 하고, 죽은 것도 살려낸다. 귀한 것도 천하게 만들고, 살아 있는 것도 죽게 만들 수 있다.


어떤 분쟁도 돈으로 되지 않는 게 없고, 막힌 것도 돈이면 뚫리지 않는 게 없고, 원한도 돈이면 해결되지 않는 게 없다. 지금 듣건대 돈이 아니면 되는 게 없다고 한다. 요즘 사람에게는 오직 돈만 있을 뿐이다."


갑자기 어머니 덕에 인생 하이패스를 살다가 중졸이 된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생각나네요. "귀한 것도 천하게 만들고, 살아 있는 것도 죽게 만들 수 있다."


위진남북조02. 팔왕의난을 유발한 서진 황제 사마충 [사마유 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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