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배와 곽도, 원소의 책사로 삼국지 군사 전문가 (feat 관도대전)
- 한중일 역사
- 2019. 1. 8.
원소가 신임했으나 패배한 삼국지 지략가 심배와 곽도
심배와 곽도, 원소가 신임한 책사
1. 사실 삼국지 시대에서 문관과 무관을 딱 부러지게 나누기 어렵습니다. 왕랑, 장소, 동소 등 흔히 문관으로 알려진 인물들도 장군직을 역임한 경력이 있으며 제갈량, 사마의, 김부식 등 역사적으로 문관이 군사 지휘권을 쥐고 군공을 세운 경우도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심배, 후한 말기 관료]
2. 원소(원소, 자는 본초)군의 경우 심배, 곽도, 봉기 등 비(非) 기주파 호족들은 전풍, 저수 등 기주파 호족들에 비해 어떤 관직에 역임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며 있더라도 계급이나 권한이나 기주 호족보다 많이 모자랍니다. 이것은 이들이 정권 초기에 (책사) 능력 보유 여부에야 어쨌든 잘 대접 받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삼국지 곽도, 중국 후한 말기 관료] 원소 책사
- 심배 : 원본초가 이에 전풍을 별가(別駕)로 삼고 심배를 치중(治中)으로 삼아 심히 신임하였다. 원소는 기주를 점령하고 심배에게 속마음을 맡기며 신임하였다.
- 곽도 : 이에 감군을 나눠 삼도독으로 삼고, 저수 및 곽도와 순우경에게 각각 1군을 맡도록 하고, 마침내 합쳐서 남으로 향했다.
- 봉기 : 원소는 봉기가 총명하고[聰達] 지모가 있었으므로[計策]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호군(護軍)인 봉기 역시 심배와 불목했는데, (생략)
이게 위에 나오는 3명의 관직 목록인데, 위 중 삼국지 초반에 해당하는 부분은 표시해 놨습니다.
심배는 보다시피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봉기의 경우도 옛날부터 원소를 따라 다니면서 신임 받았죠. 특히 곽도는 봉기와 함께 원본초를 따라다니며 쌓은 총애가 거의 심배급이었죠.
[조조에게 붙잡혀 목숨 잃은 전략가]
심배와 곽도, 군사 전문가는 아니었다?
1. 실제로 전풍과 저수에 대한 원소의 애정이 식어갈 무렵, 기주 외 호족들이 전풍과 저수가 역임했던 관직을 대신 차지하거나, 권한을 나눠 가지거나 하는 일이 왕왕 일어납니다. 기주파가 가지고 있던 권력이 반대편 사람들에게 조금씩 이양되고 있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우유부단한 사세삼공 자제 원소]
그의 병사는 수십만이고, 책사 심배(審配), 봉기(逢紀)에게 군사를 통괄하게 하고, 전풍, 순담(荀譚), 허유(許攸)를 모주(謀主)를 삼고, 안량(顔良)과 문추(文醜)에겐 군사를 거느리게 하고, 정예군사 10만과 기병 1만 필을 선별해, 장차 허도를 공격하려 했다.
저수야 감옥에서 머리 식히고 있었겟지만 전풍의 경우는 아니죠.
2. 원소군은 워낙에 기록이 부족해서, 사실 삼국지 관직 정보만으로 심배와 곽도를 평론하기 난감합니다만, 「어쩌면 이 두 사람은 군사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조에 맞서지만 원담과 목숨을 잃음]
3. 관도대전 당시 심배와 곽도의 직책
|
심배 |
곽도 |
직책 |
정권 초기에 치중 |
계리 |
직책 설명 |
주(州)의 내정을 담당하는 수속 보좌관 |
주(州)의 회계를 담당 |
심배가 치중을 맡앗을 때 기주목이 원본초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보좌관으로 있는 치중이라면 원소의 모든 일에 관여하며 도울 수 있고, 실제로 심배가 받은 총애는 그에게 정치만을 담당하게 하지는 않았겠죠.
[오소 공격 시 조조 본진 급습을 요구했던 곽도]
관도대전에서 깨진 원소와 저수 관계, 그리고 심배
6. 이랬던 인물들이 아무런 군공(軍功) 없이, 군사에 관여하기 시작하더니 관도대전에서 저수와 충돌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정무수석과 경제부 차관이 포스타에게 "아, 뭐 전쟁을 이런 식으로 해?" 하고 호통을 친 격.
이때 원본초는 감군(총사령관)에 있던 저수의 권한과 병력을 삼분하여 순우경과 곽도를 그 공석에 배치하고 심배를 참모로 발탁했습니다. 사실 파격적이라면 굉장히 파격적인 승진입니다.
[원상 보단 원담을 선택한 곽도]
7. 어제까지 경제를 담당했던 관료를 오늘 사령관에 올리고 어제까지 내정을 담당했던 관료를 오늘 참모총장에 올렸는데, 이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관도대전의 패배 원인 1순위는 다른 사람이 아닌 원소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책사 곽도의 선택은 저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심배의 경우는 다릅니다. 〔업성에서 홀로 조조 본대의 공격을 수차례 완벽하게 방어〕해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죽을 때에도 절개를 굽히지 않는 모습까지 보이죠. 게다가 삼국지 당시, 심배가 패한 건 단순히 안에서 일어난 배신 때문이지 심배의 계책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비 배신으로 붙잡히는 심배]
[중국 아마추어 작가가 그린 심배의 업성 공성전]
그리고 관도전에서 사용되었던 인재는 대부분이 A~S급 인재들입니다.
저수, 전풍은 당연하고 장합과 함께 책사 심배도 조조의 공격을 막는 1등 공신이었고, 순우경은 원소, 조조와 같이 서원팔교위 출신, 고간도 관도대전 패배 이후 악진의 공격을 호관구에서 격퇴하는 등 나름의 일가견이 있는 인물입니다.
또 결정적으로 당시 상황을 보면 국력의 차이가 배로 차이나는 상황에서 안 쳐들어가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었죠. 대의명분이 없을 뿐 나머지 상황은 거의 완벽하게 원소에 유리했던 상황에 원본초가 안 쳐들어 간다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었죠.
[순욱 순유완 달리 분열한 영천 인재들]
결론
- 심배는 군사적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 물론 봉기는 아니지만...
- 원소가 안 쳐들어 간 것도 이상한 상황이었고, 관도전의 패배를 단순히 원본초에게 미룰 수는 없습니다.
원소가 신임했으나 패배한 삼국지 지략가 심배와 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