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역사, 선사 백제 서원경 고려 조선 시대 문화, 백제 박물관

청주의 역사, 선사 백제 서원경 고려 조선 시대 문화, 백제 박물관


청주 백제 역사 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청주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고대로부터 중요한 위치에 있던 도시입니다.


백제의 중심부를 대표하는 도시였으며 현재도 충청도를 대표하는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선사 시대 부터 조선 시대 까지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청주의 선사 문화

신봉동, 개신동, 명암동 등지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청주의 신석기 유적은 봉명동의 기원전 2,500년경 움집터와 상당산성 남문 앞, 그리고 청원 쌍청리에서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문화는 우리나라 각 지방의 다양한 유형이 같이 나타나고 있으며, 기원전 8~7세기 때의 유적이 봉명동, 용암동, 내곡동, 향정동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비하동 유적은 세형동검 등 초기 한국식 동검문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빗살무늬 토기, 청주 쌍철리, 신석기 시대빗살무늬 토기, 청주 쌍철리, 신석기 시대



민무늬토기, 청주 봉명동, 청동기 시대민무늬토기, 청주 봉명동, 청동기 시대



청주의 백제문화

청주는 마한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한 시대에는 철기가 널리 만들어져 사용되었으며, 새로이 굴 가마에서 구운 회색 토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제철, 농업 기술의 발달과 집단 간의 교역, 전쟁이 활발해지면서 점차 고대국가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서 발견되는 초기 삼국시대의 유적은 다음과 같다.


  • 진천 송두리 무덤
  • 청주 송절동-봉명동 무덤
  • 신봉동 움집터
  • 청원 송대리 무덤
  • 진천 산수리 가마터 등


3세기 중엽 이후 우리 지역은 점차 백제의 영역으로 통합되어 갔는데, 청주 신봉동, 명암동의 집터와 무덤 유적을 포함하여 주변의 진천 석장리 철 생산 유적, 청원 주성리 무덤 등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입 큰 단지, 청주 신봉동, 백제 - 바리 모양 토기, 청주 신봉동, 백제입 큰 단지, 청주 신봉동, 백제 - 바리 모양 토기, 청주 신봉동, 백제



바리 모양 토기, 청주 신봉동, 백제 - 세발토기, 충남, 백제 시대바리 모양 토기, 청주 신봉동, 백제 - 세발토기, 충남, 백제 시대



백제의 중심부는 충청도였습니다. 오랜 시간 백제에 속한 도시였으므로 백제 유물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청주의 서원경 문화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85년 청주에 서원경을 설치하고, 689년에 성을 축조하여 지방통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청주 지역에서는 많은 불교 유적이 보이는데, 운천동 사적비와 동종, 용암사 불상, 성화동 금동불, 탑동 석탑 등과 신봉동, 명암동, 용담동, 금천동 등지에서 통일신라 시대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일본에서 발견된 촌락문서는 서원경 부근 4개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주 신라촌락문서청주 신라촌락문서



신라 촌락 문서

일본 정창원에서는 『8~9세기경 서원경의 4개 마을』을 대상으로 작성한 촌락문서가 발견되어 청주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문서에 의하면, 일반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고 마을에 할당된 공유지를 공동 경작하였다. 또 국가에서는 3년 단위로 촌락의 둘레와 면접, 집-사람, 가축, 토지, 과일나무(뽕, 잣, 호도나무) 등의 변동 내용을 자세히 파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력 동원을 위해 사람은 남녀와 연령별로 구분한 후 노비는 따로 파악하고, 집은 사람의 숫자를 기준으로 9등급으로 나누었다.



신라촌락문서, 일본 정창원, 통일신라 - 사량부 새긴 기와, 청주 산성동, 통일신라신라촌락문서, 일본 정창원, 통일신라 - 사량부 새긴 기와, 청주 산성동, 통일신라



'사량부속장지일沙梁部屬長池馹' 새김기와조각

685년(신문왕 5) 옛 백제 지역은 금강 유역에 대한 감시와 통치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청주에 설치된 서원경西原京』과 관련된 기와조각으로 상당산성 남문 밖에서 출토되었다.


우암산 주변에서도 탁부啄部가 발견되어 서원경도 왕경王京처럼 6부部가 존재하는 행정시의 면모를 갖추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또한, 이를 반영하듯 청주에서는 아래와 같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운천동 사적비와 동종

 용암사불상

 성화동(농촌동) 금동불

 탑동석탑

 명암동-용담동-금천동 통일 신라 무덤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고 당나라와 꾸준히 전쟁을 벌였습니다. 황해도 일대의 거점을 차지하기 위해 청주를 비롯한 충청도 일대에 많은 병사들이 주둔했을 겁니다.


또한, 평양을 되찾고 압록강 건너 고구려 유민과 말갈을 돕기도 했습니다. 신라의 북방 진출을 위한 거점이었으므로 많은 신라 유물이 나오는 것이겠죠.




청주의 고려, 조선 시대

청주는 고려 초기부터 지방의 중심으로 크게 주목되는 곳이었는데, 『용두사지철당간』은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와 함께 뛰어난 불교 예술이 꽃피웠는데, 청주 흥덕사지, 운천동사지, 사뇌사지 등은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흥덕사지는 1377년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직지를 찍어낸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의 청주는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 청주읍성에 충청도 병마 절도사영이 있었으며, 남쪽 방어의 요충지로 수축한 상당산성이 잘 남아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직지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직지



고려 시대 세발 토기고려 시대 세발 토기



청주 한월동 가옥 망새기와청주 한월동 가옥 망새기와



한월동가옥 망새기와

  • 청주 방서동, 1702년 (숙종 28)
  • 청주 한월동 가옥(충청북도 문화재자료 37호)현재 청주 지역에 남아있는 민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기와는 2005년 이 가옥을 보수하면서 발견된 것이다. 이 기와의 명문을 통해 가옥을 만든 연대를 알 수 있는데, 가옥의 상량문에는 『'숭정후사경신(崇禎後四庚申, 1860년)'이라 하여 기와의 연대와 차이를 보인다.


망와는 용마루의 끝을 장식하는 기와로 장식미와 함께 상서로운 문양을 새기는 특징을 보인다. 한월동 가옥 망와에는 기와의 제작 연대를 음각으로 표시하였다. 기와에 새겨진 '강희임오康熙壬午'는 1702년(숙종 28)이다.


청주 또는 충청도 여행을 하신다면 청주 백제역사 박물관을 들러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출처 - 청주 백제역사박물관

청주의 역사, 선사 백제 서원경 고려 조선 시대 문화, 백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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