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 막내 아들 사마륜과 가밀 사마휼의 대결, 강통의 사융론 [5화]

사마의 막내 아들 사마륜과 가밀 사마휼의 대결, 강통의 사융론 


궁중 암투로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강통은 사융론을 올리며 5호(흉노, 선비, 저족, 갈족, 강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괴이한 기풍으로 극도로 탐욕스럽기 그지없고, 흉포하고 사나운 데다 인정도 없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힘이 약하면 우리를 두려워하며 복종하나 강하면 곧바로 침략하며 반기를 듭니다...

...

지금 화하의 사서士庶가 저들을 업신여기자 그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반드시 틈을 보아 흉포한 성정을 드러낼 터이니 지금 저들이 피폐하고 우리의 무력이 성한 때를 이용해 저들을 원래 살던 곳으로 쫓아내느니만 못합니다."


사마의가 살아있었더라면 강통의 사융론을 받아들였을까?



동진16국 시대의 지도동진16국 시대의 지도

(특이하게 동진 16국 시대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훗날, 전진의 왕맹이 부견에게 건의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왕조의 중심부에 너무 많은 이주 세력이 존재하는 건 분명 큰 문제였기에 강통이 이를 지적하며 타파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수도 낙양과 가까운 평양에서 흉노의 한나라가 세워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분노를 꾹꾹 눌러왔던 『5호는 화북 일대에서 발호한다.

그들의 발호와 팔왕의 난은 아주 밀접한 관계로 이어지니, 누굴 탓하랴. 그들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 세웠던 것을.




그리고, 10여 년간 별일 없었던 서진 왕조에 다시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사마량과 사마위가 축출된 이후 조왕 사마륜(사마의의 9남, 막내아들)과 손수가 입조했기 때문이다.



조왕 사마륜(사마의의 9남, 막내아들)조왕 사마륜(사마의의 9남, 막내아들)



진혜제 원강 6년(296), 조왕 사마륜의 총애를 받은 손수는 서북의 옹주자사 해계와 반목하다 서로 투서를 올려 난을 일으킨 경위를 설명했다. 당연히 서로 난을 일으킨 정황도 없었을뿐더러 조정에서도 거짓 투서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 둘의 반목을 이유로 사마륜을 입조시켜 거기장군에 책봉하고 양왕 사마동을 옹주로 보낸다.


이렇게 일단락될 것 같았던 이 일은 해계의 동생 해결이 사공 장화에게 손수와 강족의 난을 설명하면서 다시금 시작된다.


장화는 해계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사마륜에게 손수를 주살』토록 명했으나 손수는 친구 신염을 시켜 진귀한 보물로 사마륜(사마의 막내 아들)을 구워삶았다.


사마륜은 이 보물들을 이용해 가황후의 친족과 결탁했고 사마륜은 되려 손수에게 녹상서사의 자리를 구해줬다. 이때 장화와 배위가 반대하자 손수는 원한을 품게 되었고, 훗날 손수는 ..... 이런 시기에 서진 조정에선 큰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8왕의 임지. 그러나 그들은 죄다 낙양 인근에 있었다. 임지로 떠난 사람은 없었음8왕의 임지. 그러나 그들은 죄다 낙양 인근에 있었다. 임지로 떠난 사람은 없었음



가황후를 위시한 가씨 집단이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자 가황후의 족형인 가모와 사촌 오빠 배위는 집안 전체로 화가 미칠까 두려워 방책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다. 배위는 음탕한 가황후를 폐하고 황태자의 생모인 사숙비를 황후로 삼는 방안을 제시한다.

"황제 자신이 황후를 폐위할 뜻을 밝히지 않았는데 우리가 앞장서면 황제가 찬동하지 않을까 두렵소."


장화와 가모는 배위의 의견에 반대했다.


"두 사람은 황후의 친척으로 큰 신임을 받고 있소. 황후에게 계속 간하여 나라를 잘 이끌도록 권해 주기 바라오. 설령 아무런 변화가 없을지라도 천하에 어떤 대란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니 이같이 하면 우리는 능히 집에서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소."


배위는 다시금 자기 뜻을 피력했으나 역시 장화와 가모는 반대했다. 동상이몽이던 세 사람이 만났으니 제대로 된 의견을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모는 가모 나름대로 자신의 앞날을 다지기 시작한다. 태자인 사마휼(사마의 증손자)이 장성하여 황제가 되어야 가씨 집안도 안전하다 생각했기에 가황후나 가씨 집안에 태자를 잘 대우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던 것이다.



태자 사마휼태자 사마휼



가씨 집안과 친하게 지내던 곽괴도 이에 동조해 자주 가황후에게 『태자의 칭찬』도 많이 했으나, 가황후는 자신의 친자를 황제로 올릴 생각에 태자 사마휼을 천대했었다.


이런 가황후는 생각이 정반대인 가모와 곽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사마휼도 어린 시절의 영특함은 사라지고 나이가 들수록 사치와 향락에 빠졌는데 가황후의 은밀한 명을 받은 태감들이 태자를 꼬드긴 것도 큰 영향을 미친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인물이 있다. 가밀이란 존재다. 가밀은 가씨 집안에서도 태도가 거만했던 인물로 어린 시절 태자 사마휼과 바둑을 두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다가 성도왕 사마영에게 질책을 받았으며, 아름다웠던 왕연의 큰딸이 가밀과 혼인하고 왕연의 둘째 딸이 사마휼과 혼인하자 둘 사이는 알게 모르게 악화한 것이다.



가남풍 가황후 서진 황후가남풍 가황후 서진 혜제의 황후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으나 어쨌든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 사이는 점점 더 악화하였고, 황태자 사마휼이 가밀에게 대놓고 망신을 준 적도 있었다. 가밀이 만나러 오면 방에 홀로 놓아둔 채 놀러 나가기도 했으니 둘 사이를 짐작할 만하다. 이런 와중에 『가밀은 해선 안 될 짓』을 하고야 만다. 황태자가 양황후의 사례를 거론하며 가황후를 비롯한 가씨 일족을 멸족시키려 한다 모함한 것이다. 





조왕 사마륜 사마의 막내아들[대군사 사마의] 조왕 사마륜, 사마의 막내아들



당시 (개판오분전의)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손수와 사마륜의 입조.
  2. 가모, 장화, 배위의 황후 폐위 모의.
  3. 가밀과 황태자 사마휼의 반목.
  4. 여기에 더해 진작부터 사마휼을 폐위시켜 죽이려던 가황후.


가황후에게 가밀의 모함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마휼을 내쫓을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다.


 사마의 막내 아들 사마륜과 가밀 사마휼의 대결, 강통의 사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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