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의난 3단계, 당나라 절도사 안녹산, 당현종, 양귀비의 운명

당나라 안녹산 안사의난 3단계, 당현종과 양귀비의 운명


안록산이 일으킨 '안사의난安史之亂'은 8년 동안 지속했는데 대체로 3단계로 나뉘며 당나라 3대 황제가 온 힘을 다해 가까스로 평정했다.



당나라 현종 피난 안사의난촉 땅으로 피난가는 당나라 황제 이융기


안사의난 제1단계


1단계는 군대를 일으키고 장안과 낙양을 점령하기까지의 약 반년이 넘는 기간이다. 안녹산의 반란 소식이 장안에 알려지자 당현종과 양귀비는 처음에 헛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안록산의 반란이 사실임이 밝혀지자 당현종을 비롯한 문무대신들 모두가 대경실색했다.


그러나 양국충만은 이미 안사의난을 예견했다고 떠들어대며 반란군 내부에 반드시 내란이 일어나 열흘이 안 되어 안녹산이 부하에게 피살될 거라고 단언했다.

현종과 문무백관은 매우 놀란 중에도 요행을 바랐지만, 안녹산은 예상과는 달리 단숨에 성을 함락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영창靈昌(지금의 하남성 활현 서남)에서 황하를 건넜다. 당현종도 황급히 군사를 움직였다.


안서절도사 봉상청은 명을 받아 낙양에서 군사를 모아 저항했고, 장안에서 5만의 군사를 모은 고선지는 섬주를 지켰다. 삭방절도사로 임명된 곽자의는 황하 이남을 수비했다.


얼마 되지 않아 봉상청과 고선지는 모두 안록산에게 패하고 동도 낙양이 함락되었으며 두 장군은 동관潼關에서 철수했다. 당현종은 환관 변령성의 중상모략에 넘어가 두 장군을 처형하고, 가서한을 병마부원수로 삼아 동관을 지키게 했다.



당나라 안녹산 안사의난[안록산의 반란]



이때 반란군(안사의난을 일으킨 군대) 후방에서 평원平原(지금의 산동성 덕현) 태수 안진경과 상산태수 안고경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하북의 17군이 이에 호응해 다시 당나라에 투항했다. 안녹산은 하북에 여섯 개 군만이 남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동관 공격을 중단했다.


  • 하남 남양태수 노령
  • 수양태수 허원
  • 진원령 장순

등도 군사를 일으켜 맞서 반란군의 남하를 막았다.


황제 자리를 탐내던 안녹산은 천보 15년(756년) 정월 낙양에서 스스로 대연황제大燕라 칭하고 성무聖武로 개원했다. 이후 당나라 군이 하북에서 반격하여 승리하자 안녹산과 사사명은 주력을 오랜 근거지인 하남에서 범양에 이르는 퇴각로에 배치했다.

양군이 동관에서 대치하고 가서한이 동관을 지키고 있을 때, 현종은 양국충의 말을 듣고 가서한을 압박해 안록산의 섬군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가서한은 하는 수 없이 출병했지만 반란군의 매복에 걸려 군대가 전멸하고 본인도 포로가 되었다.


이해 6월 8일, 반란군은 동관을 점령하고 장안을 향해 진격했다. 당현종은 양국충과 양귀비 등을 데리고 황급히 도주했고 서경 장안은 함락되었다. 안녹산과 사사명은 반란을 일으킨 지 불과 반년 만에 당나라의 두 수도인 장안과 낙양을 함락했고 이로써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양귀비 포의재상 이필[안록산의 반란] 양귀비, 양옥환의 죽음




안사의난 제2단계

2단계는 숙종의 즉위 때부터 곽자의가 두 수도를 수복하는 약 1년여의 기간이다. 태자 이형은 현종을 따라 도주하는 길에 백성의 만류로 영하 영무로 북상했다.


수행하던 대신들이 이형을 옹립하여 천보 15년(756년) 7월에 황제에 추대하니 바로 숙종이다. 이때 곽자의는 정예병 5만을 거느리고 영무에 도착했고, 숙종의 가까운 친구이자 '포의재상布衣宰相'이라 불리던 이필이 요청을 받고 영무에 와서 그를 보좌했다. (당현종은 당시 폭사)



안녹산 안사의난 양국충[안록산의 반란] 양국충


숙종은 이필의 제의를 받아들여 장남 이숙을 천하병마원수로 임명하고 회흘로부터 군사를 빌리고 연합해 안록산의 반란군을 상대로 역공을 퍼부었다. 이 무렵 안녹산의 내부에는 갈등이 빚어져 지덕 2년(757년) 정월, 안녹산은 아들인 안경서에게 피살되고, 사사명은 안경서에게 불복하는 등 반란군 내부가 시끄러웠다.


장순과 허원 및 남제운 등 당나라 장군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식량이 떨어지자 쥐를 먹고 쥐가 떨어지자 죽은 사람을 먹으며 수양을 10개월 동안 사수했다. 성이 함락되자 그들은 용감하게 정의를 위해 죽었다.



안녹산 장안 함락 동관[안록산의 반란] 안녹산



그들이 1만의 병력으로 20만 반란군의 남하를 저지하고 당군의 물자보급로를 확보한 덕에 곽자의 등 당군이 반격을 위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지덕 2년(757년) 9월, 곽자의 등 장군들은 충분한 준비를 거쳐 단숨에 장안을 수복했다.


10월에는 승리의 기세를 몰아 동도 낙양까지 수복했다. 이해 12월 숙종은 장안의 궁으로 돌아오고 반란군 장군 사사명은 투항하여 귀의왕, 범양절도사에 임명되었다. 두 수도의 수복을 계기로 당나라 군대는 단계적으로 중대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사사명은 숙종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계획을 눈치채고 이듬해 다시 반란을 일으킨다.



안사의난 당현종 피난양옥환, 양귀비의 죽음




안사의난 제3단계

3단계는 절도사 9명이 안녹산의 아들 안경서 토벌에 나서고 사조의가 패해 죽을 때까지 대략 6년이다. 지덕 2년(757년) 9월, 장안을 되찾은 숙종(당현종 아들)곽자의 등 아홉 절도사에게 안경서를 토벌하라고 명하고, 환관 어조은을 관군용사로 임명해 절도사들을 감독하게 했다.



당나라 숙종 연나라 업성[안록산의 반란] 당나라 숙종


이때 안경서는 업성에서 자리를 양보한다는 대가를 내걸고 당에 귀순했다가 다시 반란을 일으킨 사사명에게 원조를 청했다. 그러나 어조은의 잘못된 판단과 지휘 때문에 당나라 군대는 실패하고 아홉 절도사는 하북의 전장에서 퇴출당하였다.


▶ 퇴출당한 절도사 9명


삭방 곽자의

 회서 노령

 흥평 이환

 활주 허숙익

 진서 북정 이사업

 정채 계광종

 하남 최광원

 하동 이광필

 관내 왕사예



사사명 안경서 대연황제 연나라[연나라 황제 사사명] 대연황제




사사명은 안경서를 죽이고 자신의 아들 사조의에게 업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범양으로 가서 대연황제가 되었다.

 

이 무렵 당나라군과 사사명군은 교전 중에 있었다. 상원 2년(761년) 3월, 사조의는 아버지 사사명을 죽이고 스스로 대연황제를 차지했다.



당현종 피난 낙양 성무[안록산의 반란] 모든 것을 잃은 당나라 현종 이융기



보응 원년(762년), 숙종이 죽고 대종 이예가 즉위했다. 이해 10월, 대종은 옹왕 이적을 병마대원수로 임명하고, 복고회은 및 곽영인 등과 회동한 뒤 회흘군대와 연합하여 총반격에 나섰다.


이듬해, 즉 광덕 원년(762년) 정월에 범양 반란군의 장군 이회선이 투항하자 사조의는 북상하여 거란에 의지하려 했다. 그러나 이회선에게 추격을 당하는 등 궁지에 몰리자 숲에서 목을 맸다. 8년에 거친 안사의난은 이로써 끝을 맺는다.


천추흥망 수당나라, 따뜻한손, 거지엔슝, 쑹창빈, 이지연, 244p~248p

 당나라 안녹산 안사의난 3단계, 당현종과 양귀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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