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륜 황제 - 제왕 경, 성도왕 영, 하간왕 옹의 분열 [7화]

사마륜의 짧은 집권기, 제왕 경, 성도왕 영, 하간왕 옹의 분열 [7화] 


당시 황궁의 진혜제에게 진준이란 자가 고했다.


"응당 사람을 시켜 백호번(싸움을 독려한다는 뜻)을 들고 밖으로 나가 싸움을 말려야 합니다."


상국부에 있던 태자좌솔 진휘의 형인 진준은 동생처럼 회남왕 사마윤을 지지하던 자였다. 당시엔 싸움을 말리는 추우번을 들고 가라 말했어야 했는데 우매한 진혜제는 이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백호번. 싸움을 독려백호번. 싸움을 독려


진준은 일부러 거꾸로 말을 해 상국부를 포위한 사마윤의 군대에 힘을 보태려는 심산이었다. 사마도호 복윤은 곧 백호번을 들고 상국부로 향했다.


이때 사마륜의 아들 여음왕 사마건이 복윤에게 애원했다.


"장차 부귀를 그대와 함께하겠소!"

복윤은 이 말을 믿고 사마윤에게 찾아가 황제의 조서를 받으라 명했다. 사마윤은 자신을 지지하는 조서일 것이라 생각해 기쁜 마음으로 복윤을 만났다.


그러나 땅에 엎드린 사마윤에게 복윤은 칼을 휘둘러 목을 베었고, 이것이 곧 황제의 뜻이라며 사마윤의 군대에게 사마윤의 아들을 죽이라 명한다. 이 명으로 사마윤의 세 아들과 수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추우번. 싸움을 말리는 용도추우번. 싸움을 말리는 용도


이렇게 사마륜에게 눈에 가시와도 같았던 회남왕 사마윤이 사라졌다. 사마륜은 찬양을 위한 과정을 착착 밟아나가기 시작한다. 우선, 구석이 더해져 위망이 높아졌고 아들들이 금군을 장악했으며 손수도 시중, 보국장군, 상국사마 등으로 승진한 뒤 진혜제의 딸 하동공주를 아들 손회와 혼인시킨다.


진혜제 영녕 원년(301) 봄, 혜제의 당숙인 의양왕 사마위를 보내 선양을 압박했다.


사마위가 진혜제의 손가락을 강제로 꺾어가며 옥새를 강제로 빼앗은 뒤 그를 금용성으로 옮기고 태상황으로 높였다. 이어 사마륜은 사마휼의 남은 아들들을 밀실에서 살해하고 손수, 장림, 사마위 등의 관작을 올려 공경이나 장수로 임명했다.


종실과 민심을 안정시킬 의도로 제왕 사마경,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에게 대장군을 제수하며 측근을 보내 세 왕을 감시토록 했다.


팔왕의난 사마륜 성도왕[서진 팔왕의난, 위진남북조 시대]


이 당시, 사마륜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짜 황제는 손수』나 다름없었다. 사마륜의 조령도 손수가 손수 고쳐 다시 내보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 손수도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역신 손수가 조왕을 미혹시키고 있으니 응당 함께 토벌해야 한다. 명을 좇지 않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다!"


제왕 사마경,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상산왕 사마예, 신야현공 사마흠 등이 각지에 격문을 보내 기병했다. 사마륜은 장홍, 사의, 허초, 손회 등에게 금군을 이끌고 이들을 영격케 했다.


장홍

 영음

 사마경

 손회와 사의

 황교

 사마영


장홍은 영음에서 사마경을, 손회와 사의는 황교에서 사마영에게 승리를 거둬 수만명의 수급을 얻었으나 병사의 수가 부족했기에 뒤로 물러난다.


팔왕의난 동해왕 사마월[서진 팔왕의난, 위진남북조 시대]


손수는 황급히 대책을 논의했으나 금군의 좌위장군 왕여가 배반하여 병사 7백으로 손수, 허초, 사의 등을 공격해 죽이고 8명의 대신을 불러들여 사마륜에게 조서를 발표토록 강압했다.


"나는 손수에게 잘못 이끌려 세 왕을 노하게 했다. 지금 이미 손수가 죽었으니 태상황을 맞아들여 복위시키고, 나는 귀향하고자 한다."


세왕은 입성한 후 사마륜의 네 아들을 죽이고 손수의 무리도 모두 잡아 죽였다.


사마륜에겐 독이 탄 술을 마시게 해 살해했으니, 고작 두 달여 간의 짧은 황제 생활도 끝이 나게 되었다.


진혜제가 복위하자 제왕 사마경은 대사마, 구석, 성도왕 사마영은 장군, 구석, 하간왕 사마옹은 태위, 삼석, 상산왕 사마예는 장사왕으로 개봉되고 무군대장군에 제수됐다. 이전에 옥새를 빼앗기 위해 진혜제의 손가락을 꺾었던 사마위의 집안도 안전하지 못했다.


사마염 사마빙. 개그[서진 팔왕의난, 위진남북조 시대]

(어느 중국 블로거의 유머. 사마염이 팔왕의 난을 직접 목격했다면 사마빙이 되었을지도)


  • 제왕 사마경 - 무제 사마염의 동생인 사마유의 아들 (혜제의 사촌 형)
  • 성도왕 사마영 - 무제 사마염의 여섯째 아들 (혜제의 이복동생)
  • 하간왕 사마옹 - 선제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부의 손자 (혜제의 당숙)

이후 몇 명의 왕들이 무제 사마염의 능을 참배하며 『제왕 사마경을 경계하는 취지』로 사마염의 직계가 후사를 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지금 경성에 남아봐야 얻을 게 없으니 제왕을 견제하며 훗날을 위해 한 발짝 물러난다는 뜻이었다.


성도왕 사마영의 책사 노지도 태비(성도왕의 생모)에게 병이 있다는 이유로 임지인 업성으로 돌아갈 권을 권했다. 조정이 제왕에게 집중되고 구석을 사양하자 권력을 놓은 사마영의 명성이 더 높아졌다.


사마경, 사마영, 사마옹까지 7명의 왕이 난을 펼치는 와중에 진혜제와 황태자 사마휼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후사가 완전히 끊기게 된다. 이는 3왕이 다시 반목하여 진왕조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다.


서진 팔왕의난 왕 이름[서진 팔왕의난, 위진남북조 시대]

(출처 : 일본인 트위터)


당시, 대장군 사마영이 황태제가 될만했으나 사마경은 이를 꺼려 혜제의 조카인 여덟 살의 사마담을 태자로 삼을 것을 주청하며 스스로 태자태부가 되었다. 이어 자신과 가까운 동해왕 사마월(사마의 동생인 사마규의 아들인 사마태의 차남)을 사공과 영중서감으로 삼았다.


낙양에 남은 제왕 사마경이 이내 교만하고 사치스러워지자 이듬해인 영녕 2년(302) 하간왕 사마옹이 거병한다.


사마륜의 짧은 집권기, 제왕 경, 성도왕 영, 하간왕 옹의 분열 [7화][서진 팔왕의난, 위진남북조 시대]


부장 이함과 장방을 선봉으로 낙양으로 진격하며 업에 주둔중인 성도왕 사마영에게 함께 할 것을 촉구했다. 이전에 사마옹의 장사 이함은 이런 말을 했다.


"성도왕 사마영은 황제의 지친입니다.


제왕 사마경은 이보다 먼 친척인데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조야가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 『격문을 장사왕 사마예』에게 보내 제왕을 공격토록 하면 제왕은 필히 먼저 장사왕을 쓰러뜨릴 것입니다. 그러면 이를 구실로 제왕을 쓰러드리면 됩니다. 성도왕을 옹립해 입성하는 것으로 사직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어부지리를 얻고자하는 계책이었으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사마륜의 짧은 집권기, 제왕 경, 성도왕 영, 하간왕 옹의 분열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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