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건국 시조 위진남북조 흉노 유연, 사마영 실수 [12화]

한나라 건국 시조 위진남북조 흉노 유연, 사마영 실수 [12화]


후한 건안 21년(216), 조조가 흉노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좌, 우, 남, 북, 중앙의 5부로 나눠 부마다 1명의 도위를 두고 중앙에선 사마를 파견해 이들을 감독했다. 


  • 1만여 부락민을 거느린 좌부는 부씨현(산서성 임분현)에 거주.
  • 6천여 부락민을 거느린 우부는 기현(산서성 기현)에 거주.
  • 6천여 부락의 중부는 대릉현(산서성 문수현)에 거주.


이로써 분수 일대는 남흉노 3만여 부락이 사살싱 점령한 셈이 되었다.


262년경, 빨간색 일대에 흉노가 넓게 퍼져있었음262년경, 빨간색 일대에 흉노가 넓게 퍼져있었음


중원으로 들어온 흉노 19개 부족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도각, 강서, 노수호 부족이 있었다. 이중 도각부는 한고조 시절부터 흉노로 공주들을 시집보냈기에 귀족들이 유劉를 성으로 삼았다. 그리고 중원에서 오래 살았던 탓에 한화가 많이 진행되어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기도 했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연이 바로 도각부 출신이다.


진서 - "(유연은) 형법을 명확히 하고 간사한 것을 금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베풀기를 좋아하며,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접했으므로 5부의 뛰어난 인물이 모두 그에게 마음을 의지하였다."


유연은 흉노 모돈 선우의 직계후손으로 흉노 좌현왕 유표의 아들이자 어부라 선우의 손자이고 호주천(어부라 동생) 선우의 조카가 된다. 어려서부터 시경, 주역, 춘추좌전, 손자병법, 사기, 한서 등 책을 두루 읽었던 탓에 한족 동문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한나라 건국 시조 위진남북조 흉노 유연, 사마영 실수 [12화]위진남북조 시대 - 흉노 유연 한나라



태원의 호족 왕혼은 유연이 크게 될 것으로 생각해 아들 왕제를 시켜 배견케 했을 정도였다.


왕혼, 왕제로 인해 조정에 천거되고선 진무제의 허락을 받아 입조할 수 있었으나 공순과 양요 등이 오랑캐란 이유로 반대해 관직 수여는 없던 일이 되었으며, 독발수기능의 반란을 제압할 장수로도 천거되었으나 역시 공순과 양요가 오랑캐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해 역시 없던 일이 되었다.


이로써 유연은 서진 정권에 크게 실망하고 다른 마음을 품게 되었다.


유연은 아버지 유표 사후 흉노 좌부 통수와 북부도위에 임명됐다. 덕을 베풀고 법 집행을 공정히 하자 5부의 수뇌부들과 유주, 기주 일대의 인재들이 유연을 칭송했다.


 진무제 사마염 이후

 외척 양준이 전횡

 제후왕들이 난

 유연은 북방의 왕미처럼

 시세를 관망하며 점차 독립적은 세력을 구축


성도왕 사마영은 정권을 장악한 이후 유연을 업성으로 불러 행영삭장군, 감5부군사에 임명했는데 이는 유연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한나라 흉노족 유연위진남북조 시대 - 흉노 유연 한나라




유연이 업성에 머물던 중, 진나라 황실의 관직과 당시 최고 권력자인 사마영의 신망에 흉노 5부의 인심을 등에 업은 유연의 작은 할아버지 유선은 은밀히 거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흉노 선인들과 한조는 형제의 맹약으로 영욕을 같이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조가 망하고 위진의 시대가 되면서 우리에게는 땅이 수여되지 않고 있다.


왕족세가의 호칭만 있을 뿐 서민과 하등 차이가 없다. 지금 사마씨가 골육상잔하며 사해가 들끓고 있으니 우리가 대업을 이룰 호기다. 유연은 자세와 그릇이 뛰어난 초세의 인걸로 장차 대업을 이룰 최고의 인물이다."


5부의 귀족들이 비밀리에 맹세하고 유연을 대선우로 선출했다. 몰래 호연유를 업성에 보내 이 사실을 알렸고 사마영에게 상사喪事가 있다는 핑계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게 된다. 당시 사마영은 제후왕들 간에 전쟁이 한창이라 유연이 필요했다.



흉노 유연 한나라 시조5호16국 이민족 국가



그렇기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유연이 흉노 5부의 군사를 이끌고 합류한다는 조건으로 풀어준 것이었다. 당연히 패착이었다.




당시엔 사마영이 낙양을 점령하고 황태제가 되었으나 사마월, 사마등, 왕준 등과 대적하는 상태였기에 흉노 5부의 원군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흉노 유연 사마영 부하5호16국 이민족 국가



당시 유연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10여만 명의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이곳 숙위군 병사로 저들을 막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전하가 윤허하시면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 흉노 5부의 병사를 이끌고 가 대적고자 합니다."


"흉노 5부의 군사를 과연 동원할 수 있겠소?

설령 그럴지라도 왕준 등이 이끄는 선비족과 오환족의 병사들은 빠르기가 풍운과 같은데 과연 그들을 대적할 수 있겠소?

나는 황제를 호위해 낙양을 돌아가 적들의 예봉을 피한 뒤 천하에 격문을 보낼 생각이오. 장군은 이를 어찌 생각하오?"

"전하는 무제의 자제로 황실에 큰 공을 세워 사해 모두 흠모하고 있습니다. 전하의 명이 내려지면 5부는 곧 움직일 것입니다. 하물며 왕준은 어린애에 불과하고, 동영공은 황통에서 먼 종족일 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어찌 전하와 다툴 수 있겠습니까?


전하는 절대 업성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병마가 한번 움직이면 이는 사람들에게 약함을 보이는 것이고, 또 어찌 능히 낙양에 무사히 이를 수 있겠습니까?"


사마영이 크게 기뻐했으나 유연이 좌국성에 돌아가자 유선 등 5부 귀족들은 유연에게 대선우의 존해를 올리고 이석에 도읍을 정했다.



서진남북조 - 흉노 유연의 한나라 수도 이석과 평양山西省 吕梁市, 山西省 临汾市서진남북조 - 흉노 유연의 한나라 수도 이석과 평양山西省 吕梁市, 山西省 临汾市

(서진남북조 - 흉노 유연의 한나라 수도 이석과 평양)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뤼량시吕梁市와 린펀시临汾市)



한漢나라의 황제 유연劉淵한漢나라의 황제 유연劉淵



이전에 유연은 나름대로 사마영이 세력을 보존할 수 있는 방책을 내주었으나 왕준이 업성에 이르자 사마영은 영격에 나섰다가 대패하고 곧 낙양으로 도망쳤다. 유연은 이 소식을 듣고 욕을 하는 한편 그를 도왔다(?).


"사마영이 내 말을 듣지 않고는 단 한 번의 싸움에서 궤멸했다. 참으로 용렬한 자이다. 그와 약속한 바가 있으니 돕지 않을 수 없다." 


2만여 기를 동원해 도우려 했으나 작은할아버지 유선이 만류했다.


"(진나라는)우리 흉노 5부를 부려 왔습니다. 하늘이 기회를 내리는데도 받지 않으면 오히려 그 허물을 입게 되니 대선우는 재삼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유연은 생각이 달랐다.


 한나라 건국 시조 위진남북조 흉노 유연, 사마영 실수 [12화]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