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족 한나라 건국, 유총에게 포위당한 서진 진혜제 [13화]

흉노족 한나라 건국, 유총에게 포위당한 서진 진혜제 [13화]


유연으로선 제후왕들의 난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거사를 일으키기 좋다는 판단을 했다.


"지금 우리는 강병 10만 명이 있으니 모두 일당십의 용사들이오. 북을 울리며 진나라를 멸합시다. 잘되면 한고조의 대업을 이루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지라도 조조의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한나라는 오랫동안 천하를 다스리면서 은덕을 베풀었소. 명분으로 말하면 나는 한실의 생질에 해당하오. 형이 패망한 상황에서 동생이 뒤를 잇는 게 정리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오."


이렇게 5호의 첫 국가 한漢나라가 건국된다.




흉노 유연은 진혜제 영흥 원년(304), 좌국성에서 한왕을 칭하며 한나라 제도를 좇아 백관의 제도를 정했다. 16국 중 첫 왕조의 건국이었다.


한나라의 후신을 자처했기에 촉한의 유선을 효회황제, 한고조 이하 3조 5종을 선주로 삼았다. 이로써 지방 9급 공무원 출신의 한족이 세운 한漢나라를 흉노족 유연이 다시금 세우게 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산시성 뤼량시(산서성 여양시의 좌국성 유적지1)산시성 뤼량시(산서성 여양시의 좌국성 유적지1)



산시성 뤼량시(산서성 여양시의 좌국성 유적지2)산시성 뤼량시(산서성 여양시의 좌국성 유적지2)


이후 동영공 사마등의 장군 섭현, 동영공 사마등, 사마유 등의 공격을 막아내고 되려 태원, 둔류, 장자, 중도, 진양 등을 점령했다. 일거에 서진의 수도 낙양을 북쪽에서 크게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진도 나름대로 방책을 세워 병주자사 유곤이 일시, 진양을 탈환했으나 곧 빼앗기고 포판, 평양 등지까지 내주고야 말았다. 이때쯤, 선비족, 왕미, 갈족의 석륵 등이 유연에게 의탁했다. 기세등등한 유연의 한나라였다.


진회제 영가 2년(308), 황제를 칭하고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얼마 후 진혜제가 피살되고 진회제가 새로이 황제가 되었으며 영가의 난이 벌어졌다. 이에 유연은 대대적으로 서진의 수도 낙양에 대한 공세를 감행했다.



흉노족 한나라 건국, 유총에게 포위당한 서진 진혜제 [13화]진혜제 위진남북조 서진 황제



아들 유총과 왕미를 선봉으로 삼고 유요를 지원군으로 삼아 서진의 사마월, 사마모의 대군을 격파했고 낙양성을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한족 군사를 이끌던 호연호, 호연랑 대장군들이 피살되면서 점을 잘 치는 선우수의 말을 듣고 평양으로 회군시킨다.


회군 이후엔 대사령을 내리고 종친들을 왕으로 봉하는 한편 아들 유화를 황태자로 삼았다.


영가 4년(310)에 유연이 사망하자 황태자 유화가 뒤를 이어 한나라 2대 황제가 되었다.


유연은 혼란스러운 서진 시기에 처음으로 독립하여 국가를 세우는 큰일을 감행했지만 평양성 이외의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되려 석륵 등의 이탈을 막지 못하는 정치적 한계를 보여줬다.


또한, 점령지의 한족들을 자신의 국가로 감싸 안지 못하고 도주토록 만들었으며 후한의 옛 제도와 흉노의 제도를 적절히 융화시키지 못해 호한분치가 지속하여 결국 왕국의 생명을 단축하는 배경을 만들고야 말았다.



315년 형세도. 전조의 영토와 왕미, 석륵의 활동지315년 형세도. 전조의 영토와 왕미, 석륵의 활동지

(315년 형세도, 전조의 알짜배기 영토는 왕미와 석륵이 각각 점유. 유씨 황제들은 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약했음)

(노란색 영역은 유연의 영향력이 미치던 지역)

(석륵은 회수 일대의 동진 영토를 적극적으로 약탈해 이후엔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돼버림)



그래도 유연의 최대 실책은 시기심 많은 황태자 유화를 남겨둔 것이라고 해야 할까?

5호 16국 시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우매한 인물을 황태자로 삼은 건 그 당시 흔한 일이니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유화는 아버지 유연처럼 어려서부터 한족의 경서, 병법서, 사서를 읽으며 자랐다. 그렇지만 시기심도 많고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여 대군을 이끄는 동생 초왕 유총, 북해왕 유예 등을 죽이려 하였다.

자신의 의도대로 처음엔


  1. 안창왕 유성
  2. 안읍왕 유흠
  3. 영안왕 유안국
  4. 제왕 유유
  5. 노왕 유융


등을 죽였지만 유총은 되려 대군으로 궁궐을 점령한 뒤 형인 유화를 죽이고 유화의 부인 선씨의 황태후 소생인 14세의 북해왕 유예를 옹립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Show에 불과했으니, 여러 공경들이 눈물을 흘리며 유총에게 보위를 잇도록 권했다.


"동생 유예(친동생)를 비롯해 대신들이 사해가 아직 평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를 추대코자 하니 이는 내가 연장자인 까닭일 것이다. 국가 대사를 내가 감히 좇지 않을 수 없다. 유예(유화의 부인 선씨가 낳은 북해왕 유예)가 성년이 될 때 보위를 넘겨주도록 하겠다."


유총은 황제가 된 뒤, 유찬, 왕미, 유요 등을 사방으로 보내어 영토를 확장하려 시도했다.



흉노족 유연 유총 진혜제진혜제 위진남북조 서진 황제





특히 하남에선 서진의 군사 3만 명을 베고 낙양을 재차 포위했다. 당시로선 마지막 남은 용장인 유곤의 활약으로 흉노의 유호와 선비족 북부 일족의 군대가 대파되는 등 일이 순조롭게만 진행되진 않았으나 당시 사마월은 정적인 구희 등을 견제한 나머지 유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유곤은 할 수 없이 선비족 탁발의려에게 형북 5개 현(낙양 동북쪽, 산시성과 허난성 경계 일대)을 내주며 구원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서진은 망국의 길을 계속 밟고 있었다. 사마월의 삽질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사마륜 시절처럼 낙양과 황제만 얻는다면 모든 걸 할 수 있었다고 착각했던 것일까.


그는 여전히 정세가 자신에게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유곤. 서진의 마지막 희망유곤. 서진의 마지막 희망

(진나라 유곤. 충성심과 의협심이 뛰어났지만, 사마월은 그를 제거하려 했음)



두 차례에 걸친 한의 낙양 포위. 10여 년간 이어진 제후왕들의 난. 낙양은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척박한 곳으로 변했다.


옛 영광의 시절은 가고 조정의 권위마저 바닥으로 떨어진 시기였다. 당시 태부였던 동해왕 사마월은 황제의 명으로 병사들을 징발해 낙양을 보위케 했으나 응하는 제후들도 없었고 그나마 정남장군 산간과 형주자사 왕지의 구원병마저 흉노군의 기습을 받아 패주했다.


이러자 사마월은 서진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행위를 벌였다. 


흉노족 한나라 건국, 유총에게 포위당한 서진 진혜제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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