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월 진회제 민제 최후(영가의난) 한나라 유총 타락 [14화]

사마월 진회제 민제 최후, 한나라 유총 사치향락 빠지다 [14화]


"지금 호로胡虜들이 낙양 근교까지 다가왔는데 모두 지킬 뜻이 없소. 조정은 모두 그대만을 믿고 있는데 어찌 지금 군사를 이끌고 멀리 출정하겠다는 것이오? 낙양을 포기하려는 것이오?"



사마월 진회제 민제 최후, 한나라 유총 사치향락 빠지다



진회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마월은 석륵을 토벌해 조정의 권위를 다시 세우겠다며 기어코 출병한다. 누가 봐도 임지인 동해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며 낙양은 버리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낙양의 수비병』은 거의 없어지고 기근은 더욱 심각해졌다.


사마월이 남긴 장수들은 공경들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공주들을 능욕하기까지 한다. 진회제는 참을 수 없어 구희에게 사마월 토벌을 명하는 밀조를 내렸고 그나마 사마월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서진의 마지막 숨통은 그의 폭사와 함께 끝이 난다.


사마월이 진회제가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에 격분해 폭사한 것이다.



유총 한나라 흉노 황제




이후 영가의 난이 벌어져 서진의 황실 종친들이 피살당하고 20여 만의 한족들이 불에 탄 뒤 식량으로 쓰였다. 진회제도 더이상 버틸 수 없다 판단해 낙양을 떠나 창원으로 도읍을 옮기려 했으나 난민으로 구성된 도적 집단이나 이미 불타버린 낙수가의 배를 보고 나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유총의 대장 호연안은 이런 낙양으로 입성하기가 너무나도 쉬웠다.


뒤를 이어 시안왕 유요, 한족 장군 왕미도 입성했고 대대적인 약탈이 자행됐다. 태자 사마전, 오왕 사마안, 우복야 조복, 예장왕 사마단, 대신 구희 등 사민 3만여 가 죽었으며 궁녀들은 겁탈당하고 황실의 보물까지 모조리 약탈당했다.



흉노 황제 위진남북조



이때 진나라의 전국 옥새는 평양으로 옮겨졌고 유총이 크게 기뻐하며 사마치의 황후 양시를 유요에게 하사했다. 이러자 황제 유총도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5호 16국 시절의 여느 왕들처럼... 그리 특이한 건 아닌데 거의 처음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니 특별하다고 할까..... ㅡㅡ;;


낙양을 함락시키고 사실상 서진 왕조를 멸망시킨 이후의 유총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 황태제 유예에게 보위를 넘길 생각이 없었고,
  • 집안의 형인 유공을 시기해 살해하고,
  • 선태후를 흠모해 강간했으며,
  • 유씨 여인들이 총명하다 생각해 짧은 시기에 6명의 여인을 후궁으로 삼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거기에 더해


  • 생선과 게를 사랑한 그는 수라상에 그 반찬이 없다는 이유로 대신을 죽이거나,
  • 밤새도록 사냥을 하거나,
  • 한밤중에도 환하게 밝혀놓고 후궁들과 질탕하게 놀았다.



진민제 사마업진민제 사마업



이런 와중에 장안과 진양의 한나라 군세는 패전을 거듭했다. 진양을 지키는 유곤이 내부 반란으로 부모가 피살되는 와중에도 선비족 탁발의려에게 도망쳐 선비족의 병사를 이끌고 다시 돌아와 한나라 유요의 군사를 대파한 것이다.

유요는 몸에 6개의 화살을 맞고 진중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탁발의려는 유요를 도우러 온 유찬마저도 대파했고 유곤은 한숨을 돌리자 패잔병들을 수습해 양곡에 주둔할 수 있었다.


이즈음은, 조금씩 외부 이민족들이 중원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당시, 평양으로 끌려온 서진의 진회제와 조정 대신들의 상황이 급변한다.


가평 3년(313), 유총이 광극전에서 진회에게 노예복을 입힌 채 술을 따르게 하자 유민과 왕준 등이 통곡을 했고, 유요와 유총 등이 대패한데 이어, 장안의 사마업 등이 진회제와 몰래 연락한다는 말을 듣자 연회에 참석한 10여 명의 서진 대신과 진회제를 살해한 것이다. 장안의 사마업은 회제의 피살 소식을 듣자 바로 보위를 잇는다.


그가 서진 마지막 황제인 민제이다.





진민제 사마업 서진 황제진민제 사마업 서진 황제



민제에게도 여러 차례 기회는 있었다. 한나라 병력을 격퇴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망국의 길을 차근차근 밟는 왕조에게 큰 이변이 있겠으랴.


사마업이 장안에서 보위에 오르자 유총은 대대적인 공세를 가한다. 『대도독 국윤』이 초반에 대패했으나 위예의 유요, 신풍의 조염 등을 효과적으로 잘 막아냈다.


여러 차례 공세에도 전황이 나아지질 않자 한나라는 진양의 유곤을 먼저 깨뜨린 후 양곡을 차지한 뒤 그곳을 통해 장안을 공격하려 했다. 장안엔 병사가 적어 대도독 국윤과 상서복야 색침은 다른 계책을 마련해야했고 한나라 군대가 잠시 물러나 시간도 생겼다.



진민제 사마업 낙양진민제 사마업 낙양에서



그러나 내분으로 호기를 놓치고 만다. 국윤은 남양왕 사마보가 있는 곳으로 가려 했지만 색침은 사마보와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이를 반대한다.


"사마보는 천자가 될 생각으로 반드시 그 사욕을 드러낼 것이다." 


딱히 어떤 계책이 없으면서도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워 그나마 나온 타개책마저 없애버리던 것이 당시 장안의 사마업 정권이었다. 이후 장안이 포위된 지도 3년이 흐른다.



간신배 색침간신배 색침



건흥 4년인 316년 12월, 기아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하자 진민제가 국윤을 향해 호소한다.


"재앙과 불운이 이와 같으니, 지금처럼 외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없으면 치욕을 참고 출성해 사민들을 살려야 하는 게 아니오!"


진민제는 시중 종창을 내보내 유요에게 항복 문서를 전하고자 했으나 색침은 종창을 억류하고 자기 아들을 유요에게 보낸다.


"지금 장안성 안에는 1년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소. 결코, 쉽게 공략하지 못할 것이오. 만일 색침을 만호군공으로 삼는 것으로 응답하면 장안성을 들어 투항토록 하겠소."


유요는 칼을 뽑아 색침의 아들을 죽였고, 장안성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당시 장안성 안은 쌀 한 말이 황금 두 냥에 거래될 정도로 양식이 부족하였다. 이로써, 진민제는 더는 버틸 수가 없어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 항복한다. "국윤과 색침이 짐을 오도했다." 진민제는 회안후에 봉해지고 국윤은 자살했으며 색침은 목이 베어져 저자에 걸렸다. 유총은 국윤이 충신이라 하여 절민후에 봉했다.


사마월 진회제 민제 최후, 한나라 유총 사치향락 빠지다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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