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족 석륵 조나라(후조) 건국, 남북조 시대 성군 등장 [18화]

갈족 석륵 조나라(후조) 건국, 남북조 시대 성군 등장 [18화]


이즈음, 진나라 유곤은 석륵의 모친과 조카 석호를 얻는다(저족이 하도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어 살다 보니 이 둘이 어찌어찌 그리하여 유곤의 손아귀에 붙잡힌 것으로 예측됨).


그리곤 이 둘을 송환하면서 장문의 서신을 보내 항복을 권했다.


"장군은 예주와 연주를 석권한 뒤, 강회 일대를 횡행하고 한면(한수와 면수)을 위협하니 .... 유총을 배반하는 것은 화를 제거하는 것이고 진나라를 좇는 것은 복을 불러들이는 것이오."


당연히 석륵은 무시하고 갈피에서 큰 배를 건조해 장차 『건업을 도모』할 뜻을 비쳤다.


갈족 석륵 조나라 황제5호 16국 시대, 갈족 후조 황제 석륵




예전 조조가 그러했듯 석륵에게도 불운이 찾아온다. 회수 일대에서 석 달간 장대비가 연이어 내리면서 북방의 기후에 익숙한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렸고 퇴로가 없는 사마예 등은 수춘에 집결해 결사항쟁을 마음먹은 것이다.

당시 손장과 지웅 등 석륵을 따른 지 오래된 장수들이 야음을 틈타 기습할 것을 권했지만 장빈은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한다.


"지금 폭우로 인해 수백 리에 걸쳐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습니다. 업성은 험구한 데다 서쪽으로 평양과 접해 있으니 응당 회군하여 이 성을 점거해야 합니다."


당시 석륵은 조카 석호에게 수춘성에서 시위만 하다 돌아올 것을 명했지만 호기가 넘친 석호는 함부로 강변으로 진격했다 5백여 명의 병사만 잃고 후퇴한다. 그런데도 겁에 질린 사마예 군대는 석륵의 군을 추격하지 않았다.


  • 석륵의 군대는 약하거나 병든 자들을 식량으로 삼고, 장빈의 계책으로 진나라 군의 배를 탈취해가며 마침내 업성에 다다른다.


석륵 갈족 전투력5호 16국 시대, 갈족 후조 황제 석륵


유곤의 조카 유연이 지키는 업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장빈의 계책을 받아들여 양국을 재차 함락시킨 후 근거지로 삼아 드디어 장구한 계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동시에 한나라와는 독립적인 군사적 행동도 계속 진행한다.


거록, 상산, 기주 등을 함락시켰으며, 진양 일대의 유곤과 임시 우호를 맺고 유주 일대의 왕준을 장빈의 계략으로 멸망시킨다. 왕준을 도모하기 전에 장빈은 이런 말을 한다.


"왕준은 진나라 신하이나 내심 자립을 꾀하고 있습니다. 대왕이 겸손한 말과 두터운 예를 보여야만 그가 대왕을 신뢰토록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진민제 건흥 원년(313), 교만한 왕준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석호가 업성을 함락』시켰으며 진나라 장수 유연과 온교, 반란군 왕춘 등을 제압했다.


석륵 조나라 위치 장빈5호 16국 시대, 갈족 후조 황제 석륵


진민제 건흥 2년(314) 4월, 계성의 왕준을 사로잡아 양국으로 보내 그곳에서 목을 베었다. 당시 진나라 조정은 유곤에게 병주, 기주, 유주의 군사를 감독도록 했으나 이미 그곳은 석륵의 영역이었다. 허봉에 불과한 관직밖에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서진은 초라한 상황이었다.


진민제 건흥 4년(316), 광목 부근에서 유곤이 탁발선비 부족에서 선발해 온 진나라 군사 수만 명을 대파하자 병주 일대에 남아있던 진나라 장령들마저도 석륵에게 항복하니 바야흐로 노예 출신의 왕이 세운 조나라가 천하의 맹주로 떠오르게 된다.

당시 후조는 하서 회랑지대를 중심으로 전량을 제외하면 화북 전역에 이르러, 파촉의 성한과 회수 이남의 동진을 포함한 양자강 유역에 대해 남북으로 크게 대치하는 형세를 보이게 된다. 이런 정복 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조카 석호 때문이었다.


흉노족 한나라 인가 3년(318) 6월, 유총이 병사했다. 유찬은 두 달 만인 9월에 근준에게 살해되고 석륵과 유요는 각각 장병을 이끌고 평양으로 향한다. 근준의 사촌 동생 근명은 가까이 있는 석륵을 뒤로한 채 유요에게 항복을 청한다.


석륵은 노한 나머지 평양성을 불태우고 공개적으로 유요와 결별한다. 유요는 살해당한 유찬의 뒤를 이어 한나라의 황제를 이었으며 국호를 조로 바꿨다. 이를 전조前趙라한다. 이에 석륵은 왕수를 사자로 보내 축하했으나 조평락이 석륵은 곧 침범해 올 것이라 간했고 유요는 대로 해 왕수의 목을 베고야 말았다.


조나라 황제 갈족 석륵5호 16국 시대, 갈족 후조 황제 석륵




이미 공개적으로 결별한 두 사람이지만 이를 계기로 결별을 넘어서 원수가 돼버린 것이다. 당연히 석륵도 대로 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유씨를 봉대하며 신하의 도리를 다했다. 이번에 내가 낙양을 함몰시켜 근준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그가 어찌 남면하여 칭제할 수 있었겠는가?"


낙양이 오류인지 근준이 오류인진 잘 모르겠음. 낙양이 틀렸다면 평양이고, 근준이 틀렸다면 진나라 황제 두 명을 의미.


그러나 낙양을 오늘날 "미국의 서울은 어디요?"라는 것처럼 일반 명사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음. 그렇다면 한나라의 낙양이니 그곳은 평양을 의미함


갈족 후조 영역 위진남북조 시대5호 16국 시대, 갈족 후조 황제 석륵


석륵 휘하의 문무관들이 왕호를 칭할 것을 건의했고 진원제 태흥 2년(319), 조왕을 칭하면서 연호를 조왕 원년으로 바꾸었다. (후조의 시작) 


석륵은 5호 16국 시대엔 드문 성군의 모습을 보였는데 병사들이 사족들을 모욕하는 것을 엄금했으며, 도성인 양국 내에 소학 10여 곳을 세웠고, 국인國人이 된 갈족을 위하여 비하하는 의미의 호胡로 부르는 것을 금했다.


갈족 석륵 조나라(후조) 건국, 남북조 시대 성군 등장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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