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 왕자의 난, 석수 석도 석세 석준, 흉노 유씨 후예 [22화]

후조 왕자의 난, 석수 석도 석세 석준, 흉노 유씨 후예 [22화]


후조 건무 14년(348) 9월, 하루는 석호가 석선이 마음에 안 들어 석도를 태자로 세우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는 말을 했다. 이에 석도는 기뻐한 나머지 자신의 태위부에 선광전을 지으며 자축했다.



석준 일러스트석준, 위진남북조 시대 후조 황자



석선은 이 소식을 듣고 몰래 선광전을 둘러보던 중 선광전의 이 눈에 띄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다. 이에 선광전을 지은 장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선광전 마저 불살랐다. 얼마 후, 몰래 양배, 모성, 조생 등을 보내 동생 석도를 죽였다.


이들이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석선이 황제가 되면 석도의 봉지를 넘겨주겠다는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석호도 석선과 석도의 반목을 모르진 않았다. 석호는 이를 그냥 넘기려 했는지 눈에 띄는 후계자가 있으면 석선도 마저 죽이려 했는진 알 수 없다. 그러나 석선이 업성에 있는 석도의 시체를 보고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가 석호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석선도 죽게 되었다.

설마 황태자가 친동생이자 자신의 친아들을 죽였을리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잔인하게 석선을 죽인 것이다. 양배와 모성은 고문 중 도주했고 조생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황태자 석호 석선 석도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한 황태자 석선



석호는 석선의 뺨을 뚫어 쇠고리를 끼우고, 산채로 눈을 파냈다. 석선의 머리털을 생으로 뽑고 혀뿌리도 잘랐으며 팔과 다리도 썰어냈다. 마지막으로 복부를 갈라 내장을 뽑아 밖으로 던진 뒤 석선의 처자식 9명의 머리를 베어 불더미 속에 집어넣었다.


이같은 과정은 석도가 총애했던 『학치와 유패』가 맡았었다.


당시 석선의 막내아들은 대여섯 살로 영특하여 석호의 총애를 받으며 궁중에서 자랐다.


이 막내아들은 살려달라 애원했고 석호도 살리려 했으나 이전부터 기분에 따라 형벌을 남발했던 석호의 중지 명령을 태감들이 들을 리 없었다. 당연히 이 아이도 죽었고 석호는 이를 계기로 큰 병을 얻게 된다.



석호 손자 석선 막내 아들석선 막내 아들 아끼던 석호, 위진남북조 시대



석호는 태자 석선을 죽인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동궁의 태감 50명과 관원 3백 명을 모두 거열형에 처한 뒤 조각난 시신들을 장수에 내던져 고기밥으로 만들었다. 석도와 석선의 생모인 두씨는 폐서인이 되었다. 석호는 장시의 진언을 받아들여 흉노족 유씨의 소생인 10세의 석세를 황태자로 삼는다.


석수, 석선의 모친이 천한 창기 출신이나 유씨는 전조 유요의 딸이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진언한 장시가 바로 유씨를 바친 당사자다. 얼마 뒤, 양독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전 황태자 석선의 동궁 병사들이 이에 호응하여 무리가 10만 명이 넘어선다.


동궁 병사들은 석호가 양주로 보내 수자리를 서게 했는데 그 숫자가 『10만』에 달했었다. 이들은 양독이 군사를 일으키자 모두 환호했다.



양독 일러스트양독, 위진남북조 시대 반란군


악평왕 석포가 장안의 군대로 영격에 나섰으나 단 한 번의 싸움으로 궤멸했다. 석호는 이농과 석민에게 10만 병사를 맡겼으나 신안, 낙양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다시 석빈을 대도독으로 삼고 강족 출신의 요익중과 거기장군 포홍을 보내 양독을 공격해 제압했다. 그러나 형양에서 승리를 거둘 당시 석호의 병세는 다시 깊어져 혼수상태였다.


그러자 황궁을 장악한 황태후 유씨에게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유씨는 무지몽매한 장시를 의지하나 무능한 두 사람은 곧 폐출된다.


이전에, 저 둘은 석세에게 위협이 될만한 연왕 석빈을 수도에 연금한 뒤 죽였다. 석호는 애초의 의지완 다르게 죽을 날이 가까워져 오자 어린 석세보단 문무를 겸비하고 인망이 높던 석빈에게 황위를 넘겨주려 했던 것이었다.



석세 황제 후조위진남북조 시대, 5호16국 왕자의 난




태녕 원년(349) 4월, 어쨌든 석호가 죽기 바로 전, 석빈은 살해됐고 석호도 사망한다.


유씨와 장시는 석빈 만큼이나 권력에 걸림돌이었던 사공 이농마저 죽이려 했으나 부친이 사망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석준이 되려 금군 3만을 이끌고 업성을 공격한다.


당초 석준은 하내의 걸활군을 치려고 했으나 아버지 석호의 사망 소식을 듣곤 진군을 멈췄다. 공교롭게도 그때 양독을 격파하고 개선하는 요익중, 포홍, 석민 등과 회동한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그에게 보위를 이을 것을 권했다.


"전하는 장자이고 현명합니다. 선제도 전하를 후사로 생각했으나 만년에 장시 등의 꾐에 빠졌습니다.


지금 여주인이 조정에 임하고, 간신이 정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상백의 교전』으로 인해 경성이 텅 비어 있습니다. 전하가 장시의 죄명을 열거한 뒤 북을 치며 진군하면 업성의 그 누가 창을 거꾸로 들고 문을 열어 영접하지 않겠습니까?"


크게 기뻐한 석준은 공개적으로 거병한 뒤 업성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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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주자사 유국 등이 이에 호응하자 9만에 달하는 장병들이 탕음에 군영을 차리게 되었다. 장시는 석준을 막아서려 했으나 업성 내 갈족의 장령들이 이를 반대한다.


"천자의 아들이 분상하러 오는데 우리가 응당 문을 열고 맞아야 한다. 장시를 위해 성을 지킬 수는 없다."


장시가 수십 명의 목을 쳤으나 이를 막을 순 없었다. 장시의 부하 장리 조차도 금군 최정예 부대인 용등군 2천 명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석준을 영접했다.


유씨와 장시는 석준에게 많은 봉지와 직책을 내리며 회유하려 했으나 석준은 장시와 유씨 일족을 도륙하고 황위를 잇는다. 석준은 석호의 처음 황태자 『석수의 동복동생』으로 당시로선 황위 계승자 1순위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 그러나 석준도 석수, 석선, 석도 보다 나은 게 없는 인물이었다.


후조 황태자 석선 석도위진남북조 시대 근준 석호 흉노족





태녕 원년(349) 5월, 석준은 보위에 오른 지 33일밖에 안되는 석세를 초왕으로 삼은 그 날, 그를 죽였다. 근준과 석호의 흉노족 유씨의 도륙 이후 석세 마저도 죽임을 당하니 흉노 유씨의 후손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전으로 국력을 크게 소모한 후조의 멸망도 머지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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