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위 멸망, 선비족 모용준 연나라 건국, 강남의 사마예 [25화]

염위 멸망, 선비족 모용준 연나라 건국, 강남의 사마예 [25화]


당초 유현 또한 독립할 의지가 있었던 인물인 것으로 추측된다. 


유현은 곧 업성과 양국의 거리가 먼 것을 이용해 왕을 칭한 뒤 염민의 영토 중 하나인 상산을 공격한다. 그러나 유현이 큰 인물은 아니었다. 염민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상산의 구원에 나서자 유현의 군대는 도망치기 바빴고 양국을 지키지도 못했다. 결국 『유현과 공경 1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양국 또한 초토화되었다.



염위 영흥 3년(352) 4월, 시기를 조율하던 모용준이 마침내 움직인다. 동생 모용각과 모용패에게 대군을 주어 염위를 비롯한 후조와 인근 군벌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염민은 잇따른 승리에 도취해 친히 영격에 나섰으나 모용각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염민의 군사는 가볍고 재빠르다. 게다가 병력이 적은 까닭에 결사적으로 대항하고 있다. 내가 중군을 이끌고 저들과 대적하는 사이 경들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협공을 가하도록 하라. 그러면 꼭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전투를 준비하는 염민전투를 준비하는 염민



염민은 대장 모용각을 제압하려 중군의 깃발이 흔들리는 곳으로 전군을 몰아 공격을 감행한다. 그러나 모용각의 생각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수가 적은 염민의 군대는 점차 그 수와 기세가 줄어들었다.


반나절의 시간이 지나자 중과부적이었던 염민의 군사는 힘이 다해 거의 몰살을 당했다. 염민은 이 와중에도 몇 겹의 포위망을 뚫고 사지를 빠져나온다. 급하게 동쪽으로 20여 리를 달리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때 그가 타고 있던 말이 돌연 땅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 그의 뒤를 쫓아온 『선비족 기병』들이 땅에 고꾸라진 그를 생포해 계성으로 압송했다. 계성의 모용준은 염민을 질책했다.


"너는 그릇이 작은 주제에 어찌 감히 망령되게 황제를 칭한 것인가?"


염민이 대꾸했다.


"천하 대란이 일어나자 너희 오랑캐야말로 인면수심으로 찬역을 꾀했다. 나는 중원의 영웅인데 어찌하여 제왕을 칭할 수 없다는 말인가?"



392년 후연의 염위 공격로392년 후연의 염위 공격로



대로한 모용준이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목을 치게 했다. 얼마 후 연나라에 큰 가뭄과 메뚜기 재해가 일어났다. 미신을 믿는 선비족은 염민이 죽은 뒤 조화를 부른 것으로 생각해 도무천왕으로 추시하고 제사를 올려 주었다.


모용 선비가 남하하여 업성을 포위하자 대장군 장간은 무숭과 유의를 동진으로 보내 전국새를 바치며 귀순의 뜻을 밝혔다. 동진은 장사 3백 여를 보내며 이에 호응했으나 선비족 기병과 싸우는 족족 패배하며 위급한 상황에 내몰린다.


마침내 업성이 함락되고 염민의 황후 동씨와 태자 염지 등은 모두 포로가 되어 계성으로 압송되었다.

인근 한족들은 동진의 정북대도독 저부를 따라 남하를 시도했으나 선비족 기병들의 추격이 두려웠던 저부는 이들을 외면한 채 장병들만을 데리고 급히 회군했다. 황하를 건너지 못했던 20여 만의 한족은 살육당한다.



염위를 멸망시킨 전연의 영토염위를 멸망시킨 전연의 영토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을 얻어낸 모용 선비의 모용준은 황제를 칭하며 중산을 수도로 삼아 국호를 대연大燕이라 선언한다.




6년 후인 358년엔 수도를 업으로 옮기며 한인과 사대부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자 모용부의 한화는 급속도로 촉진되었다. 이후 건국될 전진의 말기와 비슷하게 후조란 강력한 제국이 사라지자 옛 후조 영토에선 군웅들이 할거하고 서로를 공격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그 외곽의 모용 선비였다.



동진 원제 사마예동진 원제 사마예



동진은 사마의의 증손이지만 황통과는 거리가 멀었던 낭야왕 사마예가 건립했다. 영가의 난으로 황통과 가까운 황족들이 몰살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칭제를 두고 정통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사마예는 젊은 시절 목숨의 위협을 받아가며 강동으로 이주해 나라를 세운다.




진혜제 영흥 원년(304), 정권을 장악했던 성도왕 사마영은 사마예의 숙부인 동안왕 사마요를 죽인다. 진혜제에게 진심으로 신하의 예를 다할 것을 충고한 것이 거슬렸던 것이다. 이에 사마예도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밤새 쉬지 않고 달려 도주했으니, 사마요와 가까운 사람들을 찾아내 죽였던 『사마영은 사마예』까지 죽이는 것엔 실패한다.



사마의 사마씨 진나라 동진5호16국 시대 사마씨


곧장 사마영은 제후왕이나 사마씨 황족과 대신들의 관문 출입을 엄히 단속했다. 얼마 후 사마예가 황하강 변을 건너려 했으나 순시병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이에 사마예의 수종인 송전이 뒤에서 달려오며 말채찍으로 사마예가 타고 있던 말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관부에서 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어찌해서 당신 같은 사람도 이처럼 붙잡혀 있는 것이오?"


송전이 태연히 이런 행동을 하자 순시병은 보통 사람 복장의 일반인인 줄 알고 사마예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염위 멸망, 선비족 모용준 연나라 건국, 강남의 사마예위진남북조 시대 초중기 영역 사건



영흥 2년(305), 새로 정권을 잡은 동해왕 사마월은 사마예에게 하비를 지키게 하면서 명족 출신인 참군 왕도를 보내 그를 돕게 했다. 당시 강남의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자.


오군吳郡의 『고顧, 육陸, 주朱, 장張씨와 회계군의會稽郡의 우虞, 공孔, 위魏씨』가 토착 씨족이며 당대 강남을 지배하던 호족들이었다. 이들 강남 호족들은 수차례 강남 일대가 위협받자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파촉의 성成을 토벌하려는 서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 호북성의 유민 반란자 중 석빙이라는 자가 세력을 모아 양자강 하류까지 흘러내려 온 적이 있었다. 강남 호족들은 서로 힘을 합쳐 석빙을 토벌했다. 


염위 멸망, 선비족 모용준 연나라 건국, 강남의 사마예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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