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 왕돈 반란 성공, 허수아비 황제 사마예 [28화]

동진 왕돈 반란 성공, 허수아비 황제 사마예 [28화]


진원제 대흥 4년(321), 사마승을 상주자사로 삼았다.


  • 대연에겐 사주, 연주, 예주, 병주, 옹주, 기주 6개 주의 군사를 총괄케 했고,
  • 유외는 진북장군 겸 청주, 서주, 유주, 평주의 군사를 총괄케 했다.


동진 원제는 후조의 석륵을 서와 북에서 막는다는 취지로 임명했으나, 실질적으론 왕돈 반란을 미리 방비하려 한 것이다.

진원제 영창 원년(326), 왕돈이 마침내 유외를 주살한다는 명목으로 건강을 향해 진군한다. 왕돈은 상주자사 사마승을 설복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비슷한 시기 사마예는 유외와 대연에게 건강을 지킬 것을 명한다.


당시 건강의 대신들은 왕돈이 결코 그럴 리 없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주의 등은 그가 반란을 일으킬 인물이라며 조정의 대책을 촉구하였다.


"오늘날, 천자라 하더라도 요순은 아닌즉 어찌 잘못이 없을 수 있겠소?


또 어찌 신하된 자가 군사를 이끌고 조정을 칠 수가 있겠소? 그러나 왕돈은 반항심이 무서울 정도로 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오."


이때, 동진 왕도는 사촌 형 왕돈이 거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일 왕수와 왕빈, 왕간 등 조정에서 일하는 일족 20여 명을 이끌고 궁문 밖에서 소복을 입고 대죄했다.



중국 동진 왕돈[위진남북조 시대] 중국 동진 왕돈



유외는 왕씨 일가를 도륙할 것을 권했으나 사마예는 왕도의 충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거부한다. 같은 해 4월, 왕도를 전봉대도독, 대연을 거기장군으로 삼은 뒤 왕돈 토벌을 명한다.




사마예 본인도 갑옷으로 무장한 채 친히 순시하며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왕돈이 이끄는 대군이 석두성에 다가서자 원한을 품고 병사한 주기의 동생 주례는 별다른 저항 없이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 주작교를 지키던 온교는 술과 안주를 찾으며 방비를 게을리했다.


왕도, 주의, 곽일 등의 문신들이 대적하나 왕돈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동진의 군대는 크게 패해 사방으로 흩어지고야 만다. 유외와 조협은 황제를 알현하고 곧 대책을 세운 뒤 출성하나, 조협은 평소에 덕을 베풀지 않은 까닭에 종자들이 목을 베어 왕돈에게 바쳤고, 유외는 밤낮으로 달려 석륵이 있는 후조로 망명하니 왕돈은 너무 쉽게 반란에 성공했다.

원제 입장에선 너무나도 허무하게 패배했다. 애초부터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원제는 비겁하고 교만한 유외와 조협을 너무 신뢰했던 것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원제는 조복으로 갈아입은 후 반란을 일으킨 왕돈에게 이같이 전했다.


"공이 진나라를 잊지 않았다면 천하는 아직 평안할 가능성이 있소. 그렇지 않다면 짐은 응당 낭야로 돌아가는 게 현명할 듯하오. (사마예는 보위에 오르기 전에 낭야왕이었음)"


이런 상황에서도 왕도는 끝까지 원제의 보위를 지키려 노력했다.



중국 석두성 유적지1[위진남북조 시대] 중국 석두성 유적지1


중국 석두성 유적지2[위진남북조 시대] 중국 석두성 유적지2



왕돈 역시 동진 정권을 장악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회수 일대의 군벌들을 제압하지 못했기에 군사 행동을 멈췄다. 지방 군벌들과 원제, 태자 사마소 등을 모두 제압할 여력이 부족하다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후 찬위의 뜻을 내비쳤던 것으로 보아 왕돈은 군사를 일으킨 것이 본인의 야욕과 맞물렸던 것으로도 보인다.


그 이전에 왕돈은 태자(사마예 아들 사마소)의 인품이 궁금하여 동궁솔을 지내다 왕돈의 사마로 있었던 온교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태자의 인품은 어떠한고?"


"소인은 군자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태자는 어떤 점에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심원함을 연구하고 원대함을 구하는 것은 대게 천박한 식견으로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禮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가히 효성스럽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국 동진 반란. 왕돈의난[위진남북조 시대] 중국 동진 반란. 왕돈의난



왕돈은 대권을 장악하자


  • 왕도 -> 상서령
  • 왕서 -> 형주자사
  • 왕빈 -> 강주자사
  • 왕수 -> 서주자사


에 임명했으니 모두 그의 사촌 동생들이었다.


이어 친형 왕함을 위장군, 도독양주강서제군사에 임명했고, 동진 조정 백관과 군진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해 쫓겨난 자가 백여 명에 달했다. 반란 이전, 왕돈과 각을 세우던 초왕 사마승은 왕돈에 의해 피살된다.




중국 황제. 동진 원제 사마예[위진남북조 시대] 중국 황제. 동진 원제 사마예



이때, 왕돈이 죽인 주의와 친분이 있던 왕빈(사촌 동생)은 왕돈과 흥미로운 일화를 남겼다.


"좀 전에 주백인(주의)을 조상했는데 그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주백인은 스스로 형벌을 불러들인 것이야. 너는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하느냐?"


"주백인은 훌륭하고 명예가 있는 사나이입니다. 무슨 죄가 있단 말입니까? 형님은 반기를 들어 주상을 범하고 충량한 선비들을 살육했습니다."


왕돈은 매우 화를 내며 왕빈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 명령을 내린다.


"다리가 아픕니다. 아까 천자를 뵈었을 때조차도 배례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무릎을 꿇을 수가 있겠습니까?"


왕돈은 크게 화를 내며 죽이려 했으나 친족임을 고려해 죽이지는 않았다.


동진 왕돈 반란 성공, 허수아비 황제 사마예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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