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의난 종결, 동진 군벌 해체, 위진남북조 성한 [32화]

조약의난 종결, 동진 군벌 해체, 위진남북조 성한 [32화]


동진 군벌 반란, 소준의난, 조약의난[위진남북조] 동진 군벌 반란, 소준의난, 조약의난


10월 중엔 왕도가 변심한 소준의 심복 노영의 안내로 유량이 주둔하고 있는 백석으로 달아나는 등 전황은 소준에게 불리해지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실전 경험이 풍부한 소준의 병사들은 동진의 군대에 계속 승리를 거뒀다.


당시 온교는 군량이 떨어져 도간에게 빌리기도 하는 등 전황은 되려 포위한 쪽이 수비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소준은 계속된 승리에 고무되어 건강 주변의 포위군 영채를 공격했다. 온교와 도간 등은 보병전에 익숙지 않으니 석두성을 치는 것이 좋겠다 판단하여 보병 1만여 명을 이끌고 높은 곳으로 올라 진을 펼쳤으나 소준의 아들 소석과 용장 광효의 수십 기에 대패했다.

수십 기가 1만여 명의 보병을 낮은 곳에서 위로 향하며 격파한 것이다. 큰 승리에 취한 소준은 온교의 소부대를 향해 돌진했으나 동진 군사들이 긴 창을 이용해 전진을 막자 뒤로 후퇴한다.


동진의 아문장 몇몇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 위에서 취한 모습으로 있던 소준을 단번에 말 아래로 끌어내려 도륙했다.


소준의 사마 임양은 소준의 동생 소일을 추대했으나 소준의 명으로 군사 활동을 벌이던 장수들은 소준의 사망 소식에 분분히 철수했고, 조약 역시 관군장군 조윤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곤 후조로 투항한다.


이렇게 소준의난, 조약의난 또는 소준과 조약의 난이라 불리는 동진 초기 군벌들의 반란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내전 중에 후조에게 많은 영토를 잃었고, 전쟁터에서 경험을 쌓은 노련한 병사들을 많이 잃게된다. 동진을 약화한 건 바로 동진 내부의 군벌들이었다.



환온의 아들 환현, 환초[위진남북조] 환온의 아들 환현, 환초




함화 4년(329) 3월, 동진의 군사들이 석두성을 향해 총공격을 가해 성공한다. 소준의 아들 소석과 한황 등은 도주하다 동진의 군사에 참살됐다.


오랜 내전으로 건강은 이미 폐허가 되었고 궁전은 이미 소실된 까닭에 황제와 군신들은 황실 화원 중 하나였던 건평원 내의 작은 건물에서 정사를 처리야만 했다. 이후,


  • 도간 시중, 태위, 장사군공
  • 치감 시중, 사공, 남창현공
  • 온교 표기장군, 시안군공이 되었다.


겁쟁이 유량은 드디어 반성했는지 상주하여 죄를 청했다. 그러나 조정에선 예주자사로 봉하며 무호를 지키게 했다.

이때, 폐허가 된 건강을 뒤로하고 수도 이전의 논의가 있었다. 조정 관원들과 삼오三吳의 호족들은 회계, 온교는 예장을 주장했으나 왕도는 이렇게 말하며 반대했다.


"천도하지 말아야 하오. 건업은 옛날의 말릉이었는데 예로부터 이미 제왕의 도읍으로서 표징이 있었던 곳이오. 또 손중모(손권)와 유현덕(유비) 등도 모두 이 땅이 왕택王宅이라고 생각했었소.


지금은 황폐되었지만 백성들을 위로하고, 돌아와서 생활을 안정시킬 방법을 모색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해야 하오. 그렇게 하여 주거住居가 완성된다면 어찌 부흥되지 않는 것을 걱정하리까."


이렇게 수도 이전 논의는 중단되었다.


당초 왕돈, 소준, 조약이 이끄는 3개의 군대는 동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이때 이르러 3개 군대는 모두 궤멸하고야 말았다. 이는, 동진의 군사력이 약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나 환온 같은 야심가에겐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잠시 눈을 서쪽으로 돌려보자.



위진남북조 성한 동진 후조 전량 영역[위진남북조] 성한 동진 후조 전량 영역



팔왕의 난으로 중원이 혼란스러울 시기, 촉 땅에는 성한成漢(성나라와 한나라를 합쳐서 성한)이 있었다.


진혜제 사마충의 원강 연간 8년에 저족의 추장 이특, 이상, 이류 형제가 각종 자연재해로 살 곳을 잃은 저족들을 이끌고 촉에 들어가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 후 익주자사 조흠은 친척인 가남풍 일파가 축출되자 촉 땅을 근거지로 독립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이미 촉에서 세력을 이루고 있던 이씨 형제 중 이상을 사소한 일로 죽여 자신의 힘을 공고히 하고자 했으나 역효과가 나는 바람에 자신이 죽고 서진 조정은 양주자사 나상을 촉으로 보낸다. 나상은 이특이 이끄는 저족 유민들에게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명한다.


이에 이특은 6개 군에 정착한 유민들을 이끌고 스스로 진북대장군을 칭하며 본격적으로 서진 정권에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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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 혜제 영녕 2년(302), 서진의 장수 장미를 격파한다.
  • 혜제 태안 2년(303), 나상과 촉군 태수 서검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마침내 세력을 공고히 하나 싶었다.
  • 태안 3년(304) 9월, 나상이 이특을 급습해 이특과 이보 형제가 전사한다.


이특이 죽자 동생 이류가 익주목을 칭하면서 저항하나 형제 이탕과 이웅이 연달아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탕은 붙잡혀 목이 베이자 투항을 논의한다. 다른 형제들과 조카들이 반대하며 없던 일이 되고 권력은 다른 형제인 이웅이 물려받는다.

 

얼마 뒤, 이류가 병사하자 304년 11월 스스로 성도왕을 칭했고 이듬해인 305년엔 황제를 자칭하며 국호를 대성成으로 결정한다.


이웅은 원래 범장생이라고 하는 현자를 숭배하여 그를 군주로 세우려 했으나 범장생이 굳이 사양하여 본인이 제위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장생長生이란 이름은 불사不死를 구하여 수행하는 도교와 관계가 있고, 이웅은 오두미도 장로의 왕국과 비슷한 일종의 이상국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상적인 도교 사상은 당대 강남 지방에서도 유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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