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 공손찬, 용주, 역경루, 계교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上

삼국지 인물 공손찬, 용주, 역경루, 계교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上


삼국지 인물 공손찬 원소[삼국지 인물 공손찬] 삼국전 vs 원소


병력을 일으켜 원소를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기주의 여러 성이 차례로 모반하여 공손찬에 가담하였다. 원소는 공손찬을 두려워하여, 발해태수의 인장을 그곳에 머물고 있던 공손찬의 종제 공손범에게 주어 발해군에 봉임하여, 이로써 공손범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공손범은 즉각 원소에 반기를 들고 발해의 군병을 손에 넣자마자 공손찬을 지원했다. 공손찬은 휘하 무장들을 청주, 기주, 연주의 자사로 임명하고, 태수나 현령을 이곳저곳에 배치하여, 계교전투에서 원소와의 대결전을 행했다.

공손찬은 전투에 패해 계로 퇴각하였다.


- 후한서 공손찬전 -


1라운드는 계교전투입니다.


공손찬과 원소의 대표전투이기도 한데요, 위에 대 결전을 준비했다는데 그것을 원소가 그것을 씹어먹는 거죠.


유우劉虞는 공손찬이 변고를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공손찬을 습격했다.


- 위서 공손찬전 -



공손찬 원소 삼국지 전투[삼국지 인물 공손찬] 삼국전 vs 원소



그 사이에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합니다.


유우가 거용居庸(상곡군 거용현)으로 달아났다. 공손찬이 거용을 공격해 함락하고 유우를 사로잡고는 유우를 압송해 계로 돌아왔다. (계교전투에서 승리함)


- 위서 공손찬전 -


물론 결과는 패배.



역경루 공손찬 계교[삼국지 인물 공손찬] 삼국전 vs 원소



때마침 동탁이 죽자 천자가 사자 단훈段訓을 보내 유우의 봉읍을 늘려주고 6주州를 감독하게 하고, 공손찬은 전장군前將軍으로 올리고 역후易侯에 봉했다. 공손찬은 유우가 존호尊號를 칭하려 했다고 무함하고 단훈을 위협해 유우를 참斬하게 했다.


- 위서 공손찬전 -




그로인해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던 유우는?

이승에서 작별하게 됩니다. (위에 보면 동탁이 죽자 라고 나와있는데, 이는 동탁이 죽고 나서 바로 사신을 보냈으나, 이제 도착했다 라는 것 같습니다)


3년, 공손찬이 또 병사를 보내 용주에 이르러 도전하자 원소는 다시 이를 공격하여 깨트렸다. 공손찬은 마침내 유주幽州로 돌아가 감히 다시는 나오지 못하였다. (계교전투에서 지고 또 패배함)


- 후한서 원소전 -





[삼국지 인물 공손찬] 삼국전 vs 원소[삼국지 인물 공손찬] 삼국전 vs 원소



다음은 공손찬의 재도전이 있는 용주전투입니다.


하지만 용주에서 깨부수고, 유우의 땅으로 복귀합니다.


이 해, 공손찬은 유우를 격파하고 그를 포로로 잡아, 유주의 영토를 차례로 점령, 타오르는 야심은 점점 커져갔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연땅 남쪽의 끝, 조땅 북쪽 가장자리. 중앙이 합하지 않고 큰 지석과 같구나.

그 중앙만은 세상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공손찬은 역 땅이 노래에서 말하는 곳이라 여겨 둔소를 그곳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성루를 수축하였는데, 망루를 수십 기 세우고, 역하에 면하여 발해까지 이어지게 하였다.


- 후한서 공손찬전 -


그리고 유우를 격파한 그 다음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엄청난 성을 쌓는데, 이게 전설의 역경루 입니다.



삼국지 인물 공손찬, 용주, 역경루, 계교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上[삼국지 인물 공손찬] 삼국전 vs 원소


계교전투의 여파가 이어진 셈이죠.




네이버에서는 공손찬 누각으로 불리더군요. 역경루의 설명은 위서 공손찬 전에 나와있습니다.


계교 주위에 10중의 참호를 파고 참호 안쪽에 경京(언덕)을 쌓아 (각기) 모두 높이가 5-6장이었고 그 위에 루樓를 세웠다. 중앙의 참호(안쪽)에 있는 경京은 특별히 높이가 10장으로 (공손찬) 자신이 그곳에 거주하며 곡식 3백만 곡斛을 쌓아두었다.



삼국지 인물 공손찬[삼국지 인물 공손찬] 삼국전 vs 원소



영웅기 - 공손찬의 제장諸將들 집집이 각기 높은 루樓를 만드니 루樓의 숫자가 천千으로써 헤아릴 정도였다. (수천이라는 말) 공손찬이 철문鐵門을 만들고 루樓 위에 거주하며 좌우를 물리치고 비첩婢妾(계집종과 첩)들이 곁에서 시중들며 문서文書는 밧줄로 끌어올렸다.


공손찬이 말했다.


“예전에는 천하의 일은 가히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평정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 보건대 이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군대를 쉬게 하며 밭일에 힘써 곡식을 쌓아두느니만 못하다.


병법에 이르길 ‘백 개의 루樓는 공격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제 내가 루로樓櫓(높은 망루, 고루)를 천중千重으로 세워 두었으니

쌓아둔) 이 곡식을 다 먹을 즈음에는 족히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위서 공손찬전 -


말 한번 참 잘하네요.


엄청난 대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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