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 공손찬 고안, 제, 노북, 포구 역경 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中

삼국지 인물 공손찬 고안, 제, 노북, 포구 역경 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中


삼국지 인물 공손찬 고안, 제, 노북, 포구 역경 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中[삼국지 전투, 인물 공손찬 원소] 기병 전쟁


원소는 장수 최거업에게 군세 수만을 통솔케 하여 고안을 포위하게 하였으나, (혜동은 말한다. 고안은 현의 이름으로, 탁군에 속한다) 함락지 못하고 군세를 돌려 남쪽으로 귀환하였다.


공손찬은 보병과 기병 30,000을 이끌고 추격, 거마 수에서 그 군세를 대파, 적 7~8,000을 죽였다.


- 후한서 공손찬전 -


두 번째 전투는 고안전투입니다.



최거업이란 장수는 위서 공손찬 전에 나와 있는데요.


원소는 최거업崔巨業으로 하여금 별과 해를 살피게 하고 재화財貨를 주며 더불어 먹고 마시며 기일을 정해 회합하여 군현郡縣을 공격해 노략질하니 이것이 어찌 대신大臣으로서 의당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이것이 원소의 여섯 번째 죄입니다. 


- 위서 공손찬전 찬표소죄상 -


그 뒤에는 공손찬느님이 말 타고 달려와서 7~8천 명을 죽여버립니다.


승리에 틈타 남진, 각 군현을 공략하면서 평원까지 이르렀고, 이후 청주자사 전개를 파견하여 제 땅을 점거시켰다. 원소는 다시금 군세 수만을 보내어 전개와 2년에 걸쳐 전투를 벌였으나, 군량이 다하여 사졸은 지쳤으며, 서로 백성을 약탈하였으므로 들이 황폐해져 풀 한 포기 남지 않았다.


- 후한서 공손찬전 -


3라운드는 제전투입니다.



_공손찬 vs 원소 전투 2 고안, 제, 노북, 포구, 역경야전[삼국지 전투, 인물 공손찬 원소] 기병 전쟁





공손찬의 연승입니다. 


전개를 파견하여 수성을 명했는데요, 원소의 수만 병력을 막았다고 합니다.


원소는 이후 자식 원담을 청주자사로 삼아 파견하였으나, 전개는 그와 싸워 패하여 귀환하였다.


-  후한서 공손찬전 -


4라운드는 제2차 제전



원담의 군재가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죠.


염유는 호족, 한족 수만 인을 모아, 공손찬이 배치한 어양태수 추단과 노 북쪽에서 싸웠는데, 추단을 비롯하여 4,000여 수급을 얻었다.


- 후한서 공손찬전 -


염유의 공손찬 공격이죠.




노북전투라고 부르는 전투인데, 4천 명이 죽었답니다.



공손찬 삼국지 원담 국의[삼국지 전투, 인물 공손찬 원소] 기병 전쟁



이 기록은 위서에도 나와 있는데,


유우의 종사從事였던 어양漁陽 사람 선우보鮮于輔, 제주齊周, 기도위騎都尉 선우은鮮于銀이 유주州의 군대를 이끌고 공손찬에게 보복하려 하였는데, 연국燕國 사람인 염유閻柔가 평소 은혜로움과 신의가 있었으므로 함께 염유를 추천해 오환사마烏丸司馬(호오환교위의 사마)로 삼았다.


염유가 오환烏丸, 선비鮮卑를 초유招誘해 호胡와 한인漢人 군사 수만 명을 얻고는 공손찬이 임명한 어양태수漁陽太守 추단鄒丹과 노현潞縣(어양군 노현) 북쪽에서 싸워 대파하고 추단을 참斬했다.


원소는 또한 국의麴義와 유우의 아들 유화劉和를 보내 군대를 거느리게 하니 선우보鮮于輔와 합쳐 공손찬을 공격했다. 


공손찬군이 수차례 패하자 이에 달아나 역경易京(기주 하간국 역현으로 기주, 유주의 접경지점)으로 돌아가 굳게 지켰다.


- 위서 공손찬전 -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환의 초왕은 유우의 은덕을 기억하고 있어, 동족 및 선비족 7,000여 기를 이끌고 선우보와 함께 유우의 아들 유화를 맞아들여, 원소의 장수 국의와 합류, 군세 십만이 일제히 공손찬을 공격하였다.


흥평2년(195) 공손찬을 포구에서 격파하였다.


20,000여 기의 수급을 취하였다.


- 후한서 공손찬전 -


그다음은 포구전투 입니다.



공손찬 원소 전투 백마 기병[삼국지 전투, 인물 공손찬 원소] 기병 전쟁





2만여 기의 수급을 챙겼다는 말은 무시할 수 없는 전투였다는 말이죠


공손찬은 역경에 농성, 둔전을 시작,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치하기를 1년여, 국의의 군량이 다하여 사졸이 굶주림에 고통을 겪었고, 남은 병력 중 수천기가 도망하였다. 공손찬은 이를 우회 공격, 치중을 차례로 손에 넣었다.


- 후한서 공손찬전 -


그다음은 역경야전 입니다.




후한서 공손찬 폐개루 국의 기병[삼국지 전투, 인물 공손찬 원소] 기병 전쟁



1년 동안 국의가 전투를 하였으나, 굶주려서 수천 기가 도망쳤답니다.


여기서는 수천기가 도망쳤다는 말을 주의해서 살펴야 하는데, 이는 국의가 이끈 군대가 최소 1만 이상이라는 말입니다.


건안 3년, 원소가 다시금 공손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공손찬은 아들 공손속을 파견하여 흑산적 두령들에게 원병을 요청하고,(왕보가 말한다. [흑산의 두령들은 장연 등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은 돌기병을 이끌고 출진, 서산연에서 원소군의 배후를 차단하려 하였다(통감 호주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역경 서측에는 고안, 염향 이서의 산들이 상당한데, 중산국 경계와 인접해 있는 산들은 모두 높고 깊어, 흑산적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장사 관정이 간언하였다.


"지금 장군의 장병 가운데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은 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대열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부모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장군을 주인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간 수비를 굳게 하면 원소군을 퇴각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이런 방법을 버리고 출격한다면 후방의 지원이 없어져 역경이 위험해질 것입니다."


- 후한서 공손찬전 -


그 이후에는 관정의 선방이 보이는데, 저걸 시도했으면 완전히 탈출 했거나, 바로 패망이었을 것입니다.


삼국지 인물 공손찬 고안, 제, 노북, 포구 역경 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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