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16국 시대 통일한 북위 태무제: 북연 북량 남량 [64화]

5호16국 시대 종결한 선비족 북위 태무제 탁발도5호16국 시대 종결한 선비족 북위 태무제 탁발도


북연이 혼란스러운 위진남북조 시기, 탁발도는 북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가해 10여 개 큰 군을 먼저 손에 얻는다. 풍홍은 송나라에 칭신했으나 송나라도 별수가 없었다.


북위 연화 2년(433), 풍홍은 용성 아래에 북위군이 진을 치자 몰래 고구려로 도망쳤으며 북위군은 용성을 불태운다. 풍홍은 이후에 송나라로 도망치려 하거나 황제 노릇을 하려 했기에 고구려 장수왕에게 일족과 함께 주살 당한다(437년). 이전에 동생 탁발고를 인질로 잡아 두었다가 살해한 정동과 부고패의 5족도 도살했다. 이후 등장할 유명한 북위의 풍태후는 풍홍의 손녀이기도 하다.

2번째 5호16국 시대 시작하게 만든 풍태후


탁발도의 북방 통일을 위해 남은 건 북량 정벌뿐이다. 북량은 옛 전진의 신하 여광이 세운 후량의 후신으로 여광의 부하 저거몽손은 여광을 배신하고 단업을 양왕凉으로 옹립했었다. 이내 친형인 저거남성의 목숨을 빼앗도록 유도한 뒤 복수의 기치를 내걸고 단업을 살해하고 보위에 오르니 401년 5월의 일이다.


흉노 일파인 저거몽손은 중원의 국가에 칭신을 반복하다가 북량 현시 9년(420) 서량의 도성 주천을 공략해 함락시키고 양주 일대를 판도에 넣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서량은 한족인 이고가 400년에 양공凉公을 자처하며 독립한 나라이다. 이후 아들 저거목건이 뒤를 이었고 북위에게 양왕, 송의 유의륭에게 하서왕에 임명된다.



애초 탁발도는 여동생 무위공주를 시집보내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저거목건이 형사취수로 얻은 과부인 형수 이씨를 총애해 무위공주를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무위공주는 북위로 도망쳤고 탁발도는 분노했다. 탁발도의 북량 정벌에 대해 대다수 신하는 반대했지만 최호만은 찬성했다(..??? 어째 반복되는 이 느낌).


"양주의 축산은 천하를 풍요롭게 할 만합니다. 물과 풀이 없다면 어떻게 축생이 생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진위장군 이향발도 진언했다.


"양주에 물과 풀이 없다면 저거씨가 어떻게 건국을 했겠습니까? 여러 얘기가 나왔지만, 응당 최호의 얘기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태연 5년(439) 6월, 탁발도가 친정에 나선다. 5호16국 시대 종결할 최후의 전투였다.


이때, 남량 독발욕단의 아들 독발원하가 향도로 나섰고, 8월엔 북위군이 북량군을 패퇴시키자 저거목건의 조카 저거조성이 북위에 투항했다. 독발원하가 고장성 인근의 선비족 부족을 설득해 투항시키자 저거목건은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


이로써 북방 통일이 완료되고 5호16국 시대 는 막을 내린다.


5호16국 시대 통일 후 북방 지도5호16국 시대 통일 후 북방 지도


남북조 시대가 시작됐다. 이즈음 전승을 기원하는 연회에서 태무제는 최호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너희는, 이 사람을 잘 보라. 나긋나긋하고 매우 가냘프다. 활도 쏠 줄 모르고 방패도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 속 세 치에는 대병단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 감추어져 있다. 내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사람이 나를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정복 군주 북위 태무제는 북방 통일을 이룬 뒤에도 친정을 멈추지 않았다.


태평진군 4년(443), 태무제는 낙안왕 탁발범, 건녕왕 탁발숭, 낙평왕 탁발비, 중산왕 탁발진의 종친과 수십 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알근하에서 유연의 가한 오제를 격파한다.


태평진군 6년(445), 북방의 노수호 부족을 토벌한다.

태평진군 7년(446), 연주, 청주, 기주를 공략한다.

태평진군 10년(449), 유연의 가한 오제가 죽고, 아들 토하진이 즉위한 틈을 타 공략한다. 당시 위나라의 명성이 서역으로 멀리 퍼지게 되어 구자, 소륵, 오손, 열반, 갈반타, 선선, 언기, 거사, 속특 등 여러 나라 왕들이 사신을 보내 헌물을 바쳤다.

그리고 태평진군 11년(450) 9월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위진남북조 시대 남방 국가인 송나라 공격을 감행한다. 송나라의 설안도, 증방평, 유강조 등이 맞섰으나 연거푸 패배하며 전선은 점차 남으로 이동한다. 당시 건강성 내의 백성들은 북위군이 도강할 것이란 소문이 돌자 봇짐을 쌌다. 그러나 군량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곧, 우기가 찾아오는 시기라 장강 일대에서 시위한 뒤 천천히 철군한다.


태평진군 12년(451) 봄, 철군 도중 우이에 도착한다. 태무제 탁발도가 꼭 우이를 얻은 뒤 철군할 생각이었는진 확실치 않지만 탁발도는 이곳을 거의 한 달간이나 공략한다.


"당신이 난병에게 피살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포로가 된 후 저자로 끌려가 참수당한다는 얘기다. 지금 봄비가 내리면서 사방에서 군사가 모여들고 있으니 당신은 안심하고 성을 공격하라.


만일 식량이 모자라면 우리가 보내 주겠다. 당신이 나에게 예물로 보내준 도검은 당신 몸을 가를 때 사용토록 하겠다."



강남의 미주를 즐기던 탁발도는 우이를 지키던 장질의 서신을 받곤 격분하여 우이를 공격한다.


시체가 성벽 높이만큼 쌓였으나 장질은 계속 버텼고, 우기에 전염병까지 겹친 북위군은 남정군의 절반을 잃으며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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