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혼후 소보권 즉위, 잇따른 남조 신하들 반란 [69화]
- 한중일 역사/위진남북조 100화
- 2020. 4. 11.
498년 12월, 암군 동혼후 소보권이 남제의 보위를 잇는다. 제명제 소란은 죽기 전에 서효사를 상서령, 심문계를 좌복야, 강우를 우복야, 유훤을 위위, 진현달에겐 군정, 시안왕 소요광에겐 안팎의 정사를 맡겼지만 동혼후의 전횡을 막을 순 없었다. 소보권은 즉위하자마자 부황의 영구가 태극전에 안치된 모습이 눈에 거슬려 속히 매장케 했다.
곡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책을 읽거나 글 쓰는 것을 싫어했고 태감들과 함께 굴을 파 쥐를 잡는 쥐잡기 놀이를 밤새도록 했다.
말을 더듬는 버릇도 있어서 신료들과 정사를 논하는 것도 꺼려, 태감과 무뢰배 소년들과 어울리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옹주자사로 있던 종친 소연은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해 군비를 강화하고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지금 6명의 대신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다투고 있습니다. 주상은 동궁 때부터 아무런 명성이 없으니 장차 커다란 살육이 일어날 것입니다."
소연(훗날 위진남북조 시대 양나라 무제)은 친형 소의에게도 익주를 기반으로 때를 기다릴 것을 주문했다.
소보권의 고종사촌은 강석과 강사는 몇 명의 보정대신과 폐립 문제를 상의했으나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와중에 외척 유훤은 소요광이 정변을 일으켜 보위에 오를 경우 권세를 잃을까 두려워 소보권에게 밀모를 고했고 소보권은 강석, 강사 형제와 친척들을 모조리 도륙한다.
이에 시안왕 소요광은 유훤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기병했으나 건강 인근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금위군에게 목이 달아난다.
그러나 유훤도 여법진 등과 직합장군 서세표의 말을 들은 동혼후에 의해 목이 달아난다.
"명제(소란)는 바로 무제(소색)의 사촌이며, 은총과 예우가 이와 같았는데도 오히려 무제의 후사를 없앴는데, 외삼촌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남조의 막장 황제답게 이 말을 들은 소보권은 유훤을 바로 죽인다.
영원 원년(499) 10월, 소보권이 서효사, 심문계, 심소략을 죽이자 11월, 진현달이 심양에서 기병해 건강을 엄습했지만 이내 패주해 오방촌에서 피살됐다.
영원 2년(500) 1월, 동혼후 소보권은 사냥을 나간 후 20여 일 가까이 환궁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한번은 심공성에 이르렀을 때 임신부의 배를 가르며 남아인지 여아인지를 알아맞히는 놀이를 했다. 정림사에 이르렀을 때는 늙은 화상이 병이 나 미처 피하지 못해 풀숲에 몸을 숨겼다. 소보권은 시위에게 명해 활을 쏘아 죽였다.
꿩을 활로 쏘아 잡는 놀이도 즐겨 성곽 주위에 무려 296개소에 달하는 꿩 사냥소도 만들었다. 소보권은 한 달에 20여 번은 꼬박 출궁했는데 경성 일대엔 동혼후이 거느린 무뢰배들에 의해 황폐해졌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비슷한 황제로 유송 전폐제 후폐제가 있다)
소보권은 후한의 장형이 쓴 서경부에서 한나라 궁실의 성대한 모습에 대한 묘사를 듣자 장인들을 시켜 장식물로 재현케 했다. 땅에 연화 무늬의 순금제 포석을 깔게 해 총애하던 반귀비를 그 위에서 걷게 했고, 신선, 영수, 옥수 등 3개의 궁전을 지어주기도 했다.
소보권은 그녀를 보며 이렇게 상찬했다.
"걸음걸이마다 연화가 피어나는구나!"
이런 느낌?
반귀비는 이런 느낌?
놀다 지치기 일쑤였던 동혼후 소보권
소보권이 보위를 잇고 전횡을 일삼으며 대신들을 주살하자, 예주자사 배숙야는 수양성을 들어 북위에 투항했다.
위진남북조 시대 중기 국경선
최혜경이 이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하자 동혼후의 세 번째 동생인 강하왕 소보현은 최혜경에게 모반을 부추긴다.
"조정이 소인배들을 끌어들여 충량한 신하들을 크게 해치고 있소. 그대는 공을 세워도 죽고, 세우지 못해도 죽게 되어 있소. 군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일어나 대공을 세우느니만 못하오."
최혜경은 경구를 공격하기 위해 북진하던 중 병사를 돌려 동부, 석두, 백하, 신정을 함몰시킨 뒤 건강성을 포위했지만 양무제 소연의 형 소의는 충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기에 곧장 구원병을 보내 최혜경을 대파하고 목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