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태(문제) 고환(효정제) 3차 하교지전 [81화]

서위 우문태는 사원대첩 후, 사기가 올라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일거에 하동의 포판과 낙양의 금용성을 확보했다. 기세를 몰아 우문귀가 영천까지 공격하여 의주, 양주, 예주, 광주, 형주 일대를 서위 영토로 만든다. (당시 동위는 효정제, 서위는 문제 시기)



동위 효정제 원상 원년(538), 동위 고환의 장수 후경이 낙양 금용성을 탈취한 뒤 약탈을 감행한다. (3차 회전 하교지전, 이 글을 주로 참고)

후경은 낙양 내외의 많은 민가와 관청을 불살랐다.


위진남북조 시대 대회전 - 하교지전위진남북조 시대 대회전 - 하교지전


서위의 문제 원보거와 승상 우문태는 원래 낙양을 점령한 후 선제의 능원에 제사 지내고자 하였는데, 후경이 금용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우문태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가서 지원했다. 전군이 곡성(谷城, 하남 신안현 동쪽)에 이르렀을 때, 고환의 동위 선봉 막다루대문을 죽였다.


후경은 서위의 대군이 지원을 오자, 포위를 뚫고 물러났다. 우문태는 경기부대를 몰고 하상까지 추격했다. 후경은 북으로 하교(河橋, 하남성 맹현 서남)를 두고, 남으로 망산(邙山, 하남 낙양시 북쪽)에 의지하여 진세를 펼쳐, 우문태와 대적했다. (하교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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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와 북망산을 사이에 두고 병력을 수습한 후경이 우문태의 대군과 교전한다. 두 군대가 대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문태가 탄 말이 화살을 맞아서 놀라서 날뛰었다. 도독인 이목은 우문태의 곁에서 보호하고 있었다. 우문태가 말에서 떨어지자, 좌우가 모두 흩어졌다. 동위의 병마가 추격해 왔다. 이때 우문태의 말이 유시를 맞자 이내 땅으로 떨어졌고 동위의 군사가 몰려왔다. 서위의 도독 이목은 말채찍으로 우문태를 때리면서 욕을 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너희들의 왕이 어디로 도주했기에 너는 여기에 있는 것인가?"

동위의 병사들은 이 말을 듣고, 우문태가 신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이목이 말을 우문태에게 주어, 우문태는 병영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고환의 장수 후경은 초기에 승리를 거두자, 서위의 군대가 물러갔고,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위의 구원병이 도착하자 후경은 다시 진을 펼칠 새도 없이 서위군에게 패배했고, 병사들이 흩어졌다. 후경 자신도 말을 타고 도망쳐야 했다.


당시 고오조만이 용감하게 우문태와 격전을 벌이다가 겨우겨우 포위망을 뚫고 나와서 단기필마로 하양남성으로 갔다. 하양남성의 수비 장군인 고영락은 고오조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성문을 닫고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고오조는 다리 아래에 숨어 있다가, 서위의 추격병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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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위 군대를 대파했고 동위의 명장 고오조는 고환의 당숙 고영락의 외면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고환은 고오조를 태사, 대사마, 태위에 추증하고 고영락에겐 2백 대의 곤장 형을 내렸다.


고오조는 동위의 군사(軍司), 대도독이며, 통칠십육도독이며, 동위의 군대내에서 고환에 다음가는 지위에 있는 유명한 맹장이었다. 그는 한족이며, 당시 선비족의 한족에 대한 태도는 아주 오만했으나, 고오조의 앞에서는 함부로 하지 못했었다. 고환은 부대에 얘기할 때는 선비족의 말로 하는데, 고오조가 있으면 한어로 바꾸어 말하곤 했다.


이번에 동위군은 대패를 했고, 물에 빠지거나 죽은 자가 만에 달하였고, 15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고환은 하교지전에서 후경이 패배했다는 말과 고오조가 피살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친히 군대를 이끌고 낙양을 빼앗으러 갔다. 쌍방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이날은 안개가 가득 끼었고 전선이 너무 길어서 앞과 뒤는 거리가 멀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웠는데 수십합을 겨루었지만, 쌍방은 교착상태였고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서위의 좌우익인 독고신, 조귀는 전투에서 불리하고, 주사령관이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자, 두서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패배한 줄 알고 군대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군 이호, 염현등도 따라서 도망쳤다.


서위의 전선이 어지러워지자, 우문태는 할 수 없이 군영에 불을 질러 태운 후에, 장손자언을 남겨 금용을 지키게 하고, 장안으로 되돌아갔다. 회군하는 도중에 우문태는 항농성을 다시 공격했다. 이번 전투에서는 쌍방이 비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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