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경의난 - 성공한 위진남북조 시대 쿠데타 : 양무제 아사 [88화]

고립된 양나라 황제 무제고립된 양나라 황제 무제 [후경의난]


상황이 무르익은 태청 3년(549) 3월, 후경이 격문을 발표하며 총공격에 나선다. 이를 위진남북조 시대 후경의난이라 한다.

"폐하가 미덥지 않은 것을 높이면서 선비들을 배척하니 이는 전한 말기 신나라를 세운 왕망의 법입니다.

철로 화폐를 주조하면서 그 무게가 수시로 변하니 이는 후한 초기 촉나라에 점거했던 공손술의 제도입니다.

함부로 관직을 남발한 것은 갱시제와 조왕 사마륜의 행위입니다.


뇌물이 성행하고, 환관이 발호하고, 승려들이 배를 불리고, 황태자는 주옥과 주색을 탐하고, 상동왕 소역은 방종합니다.

남강왕 소회리와 정양왕 소기 등은 목후이관(목욕한 원숭이가 갓을 씀, 멍청하다고 놀리는 뜻)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누가 근왕에 나서고자 하겠습니까? 오늘의 거사가 어찌 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뒤통수 맞았다는 표현조차 아까운 양무제 소연뒤통수 맞았다는 표현조차 아까운 양무제 소연


남강왕 소회리, 양아인, 조백초 등은 후경이 점거한 동부를 급습하기로 했으나 양아인의 군사는 움직이지 않았기에 후경의 장수 송자선에게 각개격파 당한다. 3월, 태양문을 지키던 소릉왕의 세자 소견은 편파적이고 용렬했기에 휘하의 아전 두 명이 후경과 내통하여 서북루에서 밧줄을 늘어뜨려 후경 군사의 입성을 도왔다.


소견과 동생 소확은 곧 목이 떨어졌고 양무제는 침궁에서 이 소식을 듣는다.

"성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싸울 수 있는가?"

"불가합니다!"

"내가 얻고, 내가 잃었다. 또다시 무슨 한이 있겠는가!"

얼마 되지 않아 후경의 책사 왕위가 문덕전에서 양무제를 알현했다.


그리고 후경의난으로 유명한 그 대화를 나눈다.

"애초 그대가 장강을 넘을 때 사람이 얼마나 되었소?"

"1천 명이었습니다."

"대성을 포위했을 때는 얼마나 되었소?"

"10만 명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많소?"

"폐하가 다스리는 곳 어디에도 제 무리가 아닌 이가 없습니다!"

알현이 끝난 뒤 후경은 이미 오랜 시간 포위를 당해 폐허나 다름없던 건강성을 약탈했고, 스스로 대독중외대군사, 녹상서사가 되었다.


그리곤, 소정덕의 태자인 소견리의 아들 소대관이 양무제의 명을 빌려 근왕군을 해산시킨다. 그때까지도 병사의 수는 여전히 근왕군이 많았다. 그런데도 유중례 등은 영채의 문을 열고 후경에게 항복하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벌인다. 위진남북조 전쟁사를 통틀어도 이런 어이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건 후경의난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후경은 유중례의 동생 유경례와 양아인을 머물게 하고 그를 사주로 보낸다. 왕승변은 경릉으로 갔고 제후왕의 병사는 모두 해산됐다. 어리석은 군주가 어리석은 장수를 발탁하면 많은 병사가 적은 병사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후경은 양무제를 황궁에 가두고 뭐든 마음대로 처리하고 싶었으나, 양무제는 후경이 보내온 관원 임명 문서에 어새 날인을 거부했다. 이에 후경은 화가 나 공급하는 음식의 양을 줄였다.


양무제 태청 3년(549) 5월, 관원 임명 문서에 어새 날인을 거부하던 양무제가 아사한다. 후경의난 , 성공한 쿠데타.

"하! 하!"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사망하자 태자 소강이 보위를 오르니 그가 간문제이며, 잠시나마 황제가 되었던 소정덕은 후경이 목을 졸라 죽인다.



충심이 강했던 소확은 짐짓 굴복하는 척을 하다 함께 사냥을 떠났을 때 활로 후경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너무 세게 활을 당긴 바람에 활이 부러졌고 그 자리에서 후경의 종자들에게 살해된다. 이렇게 후경은 어리석은 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강남의 일인자가 된다.


후경은 북위 회삭진 출신으로 갈족이다. 6진의 난 당시 고환과 함께 이주영에게 귀부했고 고환이 이주씨와 대적할 땐 하남 일대에서 이를 관망했다. 고환이 마침내 이주씨를 몰아내자 다시 고환에게 귀부했으나, 고환은 후경을 진심으로 믿지 못했고 이는 후경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러 고환이 죽자 장남 고징은 후경의 반란을 의식해 발상을 미룬 채 후경에게 입조를 명한다.


후경의 모사 왕위는 이에 반대하며 대신 서신을 작성해 보낸다. 고징은 후경을 입경시킨 뒤 군권을 박탈하려 했으나, 이를 간파한 후경이 먼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후경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자립하여 마침내 소연을 몰아내고 강남의 일인자가 되었다.



후경의 난에 동원됐던 근왕군 장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전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던 제후왕들은 거의 온전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후경이 조정을 장악하니, 제후왕들끼리의 다툼이 벌어진다.


당시 주요 세력을 언급하자면 이렇다.

소릉왕 소륜(양무제 6남) - 무창

상동왕 소역(양무제 7남) - 강릉

무릉왕 소기(양무제 8남) - 성도

하동왕 소예(소명태자 2남) - 장사

악양왕 소절(소명태자 3남) - 양양

그러나 탐욕만 앞섰던 이들은 반동탁연맹이나 다름 없었다. 건강이 포위되기 전부터 이들은 골육상잔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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