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전연의 황제 모용위는 모용수에게 영격을 맡기는 한편, 전진 부견에 호뢰 이서의 땅을 베어주는 조건으로 원군을 요청했다. 전진의 대다수 중신이 반대하는 와중에 왕맹만은 원군 파병을 부견에게 강력히 주장한다. "전연(연나라)이 비록 강하다고는 하나 환온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 환온이 패주한 후 전연(연나라)의 원기가 크게 상해 있을 때 기회를 틈타 연나라를 도모할 만합니다." 전진 황제 부견은 이를 받아들여 2만 병사로 전연과 모용수의 군대를 돕는다. 당시 환온은 우물쭈물하며 사태를 관망했는데 그는 북벌을 나왔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계속 동진 조정의 내부 동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황위를 찬탈할 생각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령관이 이러니 동진의 북벌군이 제대로 ..
환온은 파촉의 성한 평정의 공으로 정서대장군, 개부, 임하군공에 봉해졌다. 촉을 평정하자 환온의 위명이 천하를 진동시켰고 조정을 장악하던 회계왕 사마욱은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양주자사 은호를 심복으로 삼아 조정 대사에 참여시킨다. 이런 조치로 동진 조정은 환온의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리게 된다. 이런 일은 이후 벌어질 환온과 은호의 북벌, 양쪽 모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은호의 강족 불신은 동진 북벌 군대에 악영향을 미친다. 동진 목제 영화 5년(349), 동진으로선 북벌하기 좋은 시기였다. 후조의 석호가 병사하며 석씨 종친 간 내분이 일어나자, 환온이 북벌의 상주문을 올렸다. 그러나 사마욱을 위시한 동진 조정은 환온이 더 많은 공을 세우는 게 탐탁지 않았다. 환온 대신 저태후의 부친인 저부에..
환온의 측근인 치초 일가 중 일부가 오두미도 도교를 신봉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훗날 손은의 난이 발생했을 때, 성문을 열고 손은을 받아들인 사씨 일가도 있었다. 이를 보면, 도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파촉과 동진 일대에 넓게 퍼져있었다. 관련 일화를 하나 살펴보면, 동진 치초 일가 중 한 사람인 치음은 도교를 독실하게 믿었는데, 배탈이 오래 지속되자 우법개란 유명 의원을 찾아간다. "군후께서 앓고 있는 병은 바로 정진精進을 너무 지나치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탕약 한 제를 받아 마셨더니 곧바로 설사가 나왔고, 주먹 크기만 한 종이 뭉치가 몇 개 나왔는데, 이전에 삼켰던 도교 부적들이었다. 또, 지위가 높았던 왕헌지는 자신의 병이 위독해지자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훗날 사중랑 사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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